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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작가 Mar 12. 2024

아삭아삭한 무 섞박지

 지인은 며칠 전에 명동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가 유명한 설렁탕 집에서 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고 왔다고 하였다.

그곳에서 먹은 진한 설렁탕이 너무 맛있었는데, 더 맛있었던 것은 '무 섞박지'였다고 한다.

'섞박지'라고도 부르고 혹자는 '석박지'라고도 부르는데 표준어는 '섞박지'라고 사용하는 게 맞는 표현이다.

섞박지는 겨울에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신선한 무로 만든 음식이다.

담그는 방법은 깍두기와 같고, 넣는 속재료도 비슷하게 사용한다.

둘 다 맛은 비슷하지만 차이점이라면 섞박지는 무를 다듬을 때 껍질을 벗기지 않고 깨끗하게 씻어주고, 나박나박 널찍하게 면을 크게 해서 잘라야 한다.

깍두기는 깨끗하게 씻은 후 무 껍질은 벗겨내고, 네모 반듯한 정사각형으로 잘라준다.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이 먹기 좋게 손톱만 하게 잘라서 만든다.

지인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 너무 맛있게 먹은 섞박지를 바로 집에 와서 만들어 보기로 하고, 친구들과 서로 만든 섞박지의 사진을 찍어서 카톡으로 올려보기로 했다고 한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요리하는 모습도 겨루기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즐거운 일상이다.



  그래서 마트에 가서 무를 잔뜩 사다가 섞박지를 담았다고 하면서 나를 주려고 한통 담아놓았으니 가져가라고 했다.

 '오호! 횡재라~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핑계라고 하겠지만 요리도 못하고, 할 시간도 없고, 거의 밀키트 위주로 사 먹는 수준이므로 누군가 음식을 만들어 주면 그렇게 반갑다.

싫은 내색도 없이 넙죽 받아왔다.

대신 김치통은 돌려주기로 약속했다.

며칠 밖에 내놓았다가 김치냉장고에 넣으라는 말은 들었지만, 집에 오자마자 뜨거운 밥에 아직 간도 베지 않은 알싸한 섞박지를 꺼내어 밥 위에 올려 먹어보았다.

신선한 무의 향이 올라온다.

며칠 지나면 정말 맛이 있을 것 같다.

집에 있는 김치통을 꺼내어 옮겨 담으려고 섞박지 한 칸을 덜어내니 그다음에는 파김치가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파김치를 걷어내니 그다음 칸에 다시 섞박지가 놓여있고, 그렇게 김치 통 가득히 예술작품이 담겨있었다.

예쁘게 무지개떡을 만들어 놓듯이 김치도 켜켜이 식재료가 섞이지 않도록 재료별로 김치통에 정성스럽게 담가 놓은 지인의 애정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요리는 과학과 예술의 결합이라더니 딱 들어맞는 말인 것 같다.

섞박지는 여러 가지 재료를 썰어서 젓국으로 간을 하고, 버무려 담가먹는 김치였다.

 옛 문헌을 살펴보면 조선 중기에 음식으로 '섞박지'가 처음 출현하였다.

요즘처럼 담가먹는 섞박지는 <규합총서>라는 책에서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채소를 소금에만 절여서 먹었던 것을 점차로 갖은양념과 채소를 섞어서 버무려 먹었다고 전해진다.

후로 요즘처럼 낙지나 전복 등 해산물을 넣고 생선을 소금에 삭힌 짭조름한 젓갈을 이용했다고 다.

 인류의 삶이 진화하는데 한몫을 담당한 것은 아마도 인간이 먹는 음식일 것이다.

세계 각 나라별로 토양이 다르고, 식재료가 다르고, 조리법도 다르고, 음식도 다르다.

태초부터 인간이 살아온 과정에서 다양한 음식이 만들어졌고, 음식에 대한 취향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민족성, 문화 등이 형성되어 나라만의 독특한 음식특성이라는 것도 생겼을 것이다.


'요리는 정말 과학일까?'

요리 고수들이 말하기를 정확한 레시피가 있어야 제 맛을 낸다고 한다.

'제 맛이라는 게 얼마나 주관적이던가?'

신구할아버지가 TV에서 선전했던 말처럼 "니들이 게 맛을 알아?"

정확한 레시피대로 계량을 하고 맛을 내는 비법이 그만큼 중요해졌다.

신당동 떡볶이의 주재료인 고추장 장인은 며느리에게도 그 비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만큼 오랜 노하우가 축척되어 자신만의 과학적인 방법으로 탄생시킨 요리법일 것이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일반 사람들보다 한 수 위의 창의성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침대만이 과학이 아니라 '요리는 곧 과학'이다.

열전도율과 식재료의 융합, 음식 속 유산균의 활동으로 인한 미생물의 번식, 조리 방법 등은 요리를 할 때 아주 중요한 요소들이다.

과학적인 원리와 식재료와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고, 창의성과 시각적 감각을 통해 요리를 예술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식품의 보관방법 또한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지구상의 인간의 생존을 위한 식량들을 어떻게 생산하면 좋을까?'

'우리의 식생활로 인한 환경오염으로부터 인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과연 건강한 식생활은 어떤 것일까?'

  이처럼 요리는 과학적인 원리를 기반으로 예술적인 창조력을 발휘하는 총체적인 활동인 것이다.


  인간은 지능이 높았고, 두 발로 걸을 수 있었고, 두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기에 동물과는 다르게 '불'을 사용하여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었다.

음식을 데워먹고, 지져먹고, 튀겨먹고, 다양하게 음식을 조리하여 먹게 되면서 각종 전염병으로부터 피해 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식문화를 창조한 인간을 고등동물이라고 한다.

요리가 꼭 과학일  필요는 없지만 식재료를 다듬고, 씻고, 썰고, 만들면서 소근육과 대근육을 끊임없이 사용하면서 골고루 잘 발달된 창의적인 사고의 폭이 분명 넓어지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집에서는 과학수업의 일환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요리교실>이라는 일과를 계획하면서 학습계획 안에 활동으로 넣어주는 것이다.

창의성이 높아지는 일상의 훈련으로 신기한 맛의 세계에서 뛰어들어 놀아보는 일,

'이 얼마나 신박한 일인가?'

다음 달 요리활동 주제는 특별한 준비물이 필요 없는 "무 섞박지"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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