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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작가 Mar 27. 2024

동이 튼다(sunrise, dawn)

 

 새싹이 돋아날 때 '싹이 튼다'라고 표현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관계를 만드는 것도 '안면을 튼다'라고 표현한다.

아이들의 옹알이를 시작으로 엄마와 아빠를 어눌하게 발음하며 처음으로 말을 시작할 때도

 '말문이 트인다'라고 표현한다.

추운 겨울날, 손이 시려 살갗이 터지는 것도 '살갗이 튼다'라고 표현한다.

입술이 메말라 거칠어져도 '입술이 튼다'라고 표현하고,

임산부의 배가 커져서 뱃가죽이 늘어져도 '살이 튼다'라고 표현한다.

장마철, 논에 물길이 막혀서 물길을 터주는 것도 '물길을 튼다'라고 표현한다.

그 외에도 계좌를 튼다, 거래를 튼다 등 다양하게 '트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막혀있던 것을 치우고 통하게 하다, 갈라지다, 벌어지다, 훤해지다 등의 의미로 쓰인다.


  이른 새벽에 차 한잔을 들고서 커튼을 열고 창밖을 내다보니 동이 트고 있었다.

날이 밝아 동쪽으로 해가 솟아 나와도 우리는 '동이 튼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문득 훤하게 동이 트는 것을 바라보다가 '동이 튼다'는 것은 설렘이었다.

조금의 빛도 없이 깜깜했던 밤시간이 지나고 어슴푸레 날이 밝아 오는 새벽이었다.

새벽이 밤보다 더 어둡다고 했다.

해뜨기 전 가장 어둡다는 말은 빛이 존재하는 것은 어둠이 있기 때문에 빛이 발하는 것처럼,

힘든 일이 지나고 나면 좋은 일이 곧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일 것이다.

끝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이 오는 것처럼 끝과 시작은 어쩌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색채론에서 괴테가 말하기를 색은 '빛의 행위이자 고통'이라고 하였다.

동이 트는 새벽은 빛의 고통으로부터 색을 내어오는 일이었다.

빛은 스팩트럼을 이루면서 붉은빛은 도시의 회색빛 건물들을 성큼 에워싸면서 들어서는데 세상은 왜 이렇게 고요할까?

하늘은 멈추어 구름을 시름에 잠들게 하고, 대자연은 숨죽이면서 아침을 기다렸다.

삶은 저절로 흘러가도록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지구의 대자연은 일출과 일몰의 반복적인 행위로 인간의 건강과 행복을 이끄는 신비로운 풍경을 매일 제공하고 있었다.

동이 트는 것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지배하면서 관여하고 있었다.

365일 대자연의 쳇바퀴는 변하지 않는다.

희망을 가지고 잘 살려고 노력하는 자에게는 동이 트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동이 튼다는 것은 새벽이 밝아 온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것을 모른 채 우리는 여태껏 쿨쿨 잠만 자고 있었다.

갑자기 어린 시절 힘차게 불렀던 동요가 떠올랐다.


노래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노래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노래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노래 불러라.  

다 같이 노래한다.

이른 아침, 동이 튼다. 먼동이 튼다.  

이른 아침, 동이 튼다. 먼동이 튼다.

이른 아침, 동이 튼다. 먼동이 튼다.  

찬란한 해가 뜬다.

불러라. 불러라. 노래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노래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노래 불러라.

 다 같이 노래한다

이른 아침 새가 운다. 산새가 운다.  

이른 아침 새가 운다. 산새가 운다.

이른 아침 새가 운다. 산새가 운다.  

즐겁게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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