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강남의 ‘반포’라는 동네에서 살았다. 강남에 사는 즐거움을 알아가며 절대로 반포를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아버지 덕분에 강남 터미널 옆, 반포에 사는 즐거움을 누렸다.
30대에는 결혼을 하면서 압구정동에서 시부모님의 도움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단지 안에 있는 000 수영장 때문에라도 절대적으로 압구정동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학군수요가 풍부하고 유명 학원이 밀집해 있는 우수한 교육 인프라 때문에라도 강남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직업상의 이유로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닐 무렵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한 동안 강남을 떠나왔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동네에의 적응이 힘들었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 어디든지 정착하면 고향이 된다고 했던가?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살다 보니 이웃사촌도 생기고, 친구도 생기고, 동료들도 많아지면서 이젠 이곳이 내 마음속에서 무지 편하고 살기 좋은 동네로 자리 잡았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흘러내리는 시계'처럼 치즈 덩어리가 늘어져 흘러내리듯 시간은 그렇게 흘러서 아이들은 그사이 성인이 되어버렸다.
어쩌다가 자기들 출생지가 왜 역삼동이냐고 묻는다. 우리 세대의 강남의 젊은 임산부들의 로망은 역삼동에 위치한 난임 전문병원으로 유명한 00 산부인과 병원에서 출산하는 것이 유행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난임도 아니었는데 내 친구들은 유행처럼 모두 역삼동에 위치한 00 산부인과 병원에서 출산을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의 출생지는 역삼동이 되었지만 두 아이는 유년시절을 강남에서 보낸 기억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나는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가지만 아직도 강남에 가서 사는 꿈을 꿔본다. 요즘 TV나 라디오만 틀면 강남의 부동산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애청자들의 귀를 솔깃 거리게 한다.
수년 동안 강남은 불멸의 투자지가 되어 자고 일어나면 1억씩 오르는 노른자위가 되었다. 일반인들은 아니 나는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린다.
학원가와 학교가 밀집되어 있는 학세권, 지하철역 상업 인프라가 몰려있는 역세권 등 이런 단어들이 강남을 불패 부동산 신화 도시로 만들어간다. 고속철도와 고속도로가 인접해 있고, 00 병원, 00 백화점, 예술의 전당, 코엑스 몰 등 문화생활을 누리기가 무척 편리하게 되어 있다. 또한 지하철, 버스, 터미널 등등 이 잘 갖추어져 있어 살기 좋은 도시임에 틀림없다.
특히 TV 프로그램에서는 부를 이룬 몇몇 연예인의 강남의 호화스러운 집을 소개하고, 강남을 선호하는 대기업 총수, 고위직 간부,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 등의 하늘과 맞닿을 거리에 있는 펜트 하우스를 멋스럽게 소개하며 시청률을 높인다. 이런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높은 것을 보면 강남의 부동산 값은 앞으로도 주 욱 천정부지로 솟아오를 것이다.
보유하는 내내 은행에 대출이자 내고, 재산세 내면서 지키느라 무진장 애썼던 부동산, 요즘 매수를 원하는 고객이 있다면서 부동산 투자사무소에서 지금이 강남 입성의 적기라면서 계속 매각하라고 유혹한다. 강남 입성이라는 유혹에 넘어가 살 떨리는 매각을 진행하였다.
도장을 꾹 찍고 보니 시간 대비 매매 차익, 인플레이션을 따라잡지 못한 잘못된 투자였다. 자산을 부동산에 묶어놓고 만져보지도 못하고, 냄새도 맡지 못하고, 써보지도 못한 결국은 건물에 회반죽 된 돈이었다.
단 한 번도 현금 가진 경제적 자유를 누리지 못했으니 오를 대로 오른 부동산 값은 결국 수치상의 돈이 분명하였다.
수치로만 인상된 매매차익은 고스란히 은행 대출금 환급금과 세금으로 지불하고 남은 돈은 강남에서 신축 아파트의 전세도 얻지 못하는 돈이었다. 강남 입성의 꿈은 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