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다.
우리 집에 어린이는 없다.
그러나 어린이날 뭔가 하고 싶었다.
'라이스페이퍼'로 김밥을 싸는 동영상을 우연히 보고, 쿠팡 장바구니에 재료를 가득 담아 주문했다.
김발도 없이 '밥'대신 '라이스페이퍼'와 김을 한 장 깔고 그 위에 야채 한가득 올려 돌돌 말아 만드는 요리였다.
'다이어트 김밥'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요리라곤 라면 물 끓이기도 서툰 똥손 요리사는
오늘도 아침부터 정리하고, 다듬고, 썰고, 볶고, 또 말고 있다.
맛은 모르겠고, 정성만 가득한 김밥이 줄지어 늘어선다.
가끔 브런치스토리에 요리랍시고 만들어서 올리지만 조금은 부끄럽다.
글의 소재가 없다 보니 쥐어짜다가 요리라고 올리는 것들이다.
오늘은 밥 없는 김밥을 싼다.
얼마나 서둘렀는지 주문한 재료를 다 사용하지도 못했다.
자르지 않은 포두부는 냉동상태로 와서 사용하지 못했고, 계란은 구석에 있어서 지단 부치는 것을 잊었다.
채 썬 당근을 볶고, 부추는 씻어서 살짝 볶아냈다.
오이는 채칼로 길게 자르고, 상추를 씻고, 맛살은 반으로 갈라놓고, 단무지는 물기를 빼고, 닭가슴살 소시지는 끓는 물에 데쳤다.
투명한 라이스페이퍼를 찬물에 담가 뺀 후, 라이스페이퍼 네 장을 가지런히 모아 붙이고, 그위로 김밥용 김을 덧댔다.
맑은 라이스페이퍼 위에 상추를 깔고 알록달록 각종 채소를 얹으며,
가수, 자두의 '김밥'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괜찮아, 못 말아도 돼. 말아가는 게 인생이지."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서툰 솜씨로 돌돌 말아냈다.
김밥을 말면서 드는 생각은 여전히
'나는 요리에는 소질이 없다'였다.
당근은 두껍게 썰어지고, 채칼에도 손을 베이고,
라이스페이퍼는 물에 담갔다가 찢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똥손이어도 좋다.
내 손끝에는 다독이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라이스페이퍼 김밥은 맛보다는 ‘만든 마음’이 더 깔끔했다.
재료보다 더 많은 정성과, 맛보다 더 큰 만족감이 담긴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김밥이 어린이날 아침에 탄생했다.
요리를 잘하진 못해도
누군가를 위해 정성을 쏟는다는 것이 행복한 일인 것을 안다.
유일하게 어린이에 가까운 나의 둘째 아들은 한 개 먹어보더니,
"엄마! 밥은 어딨 어요?"라고 하였다.
"라이스페이퍼가 밥 대신이야"
아들은 그저 웃는다.
밥 없는 김밥이라니.......
김밥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역시 뭔가 아쉽다.
먹고 나서야 느꼈다.
그리운 찰진 밥의 향기.
밥이 뜨거울 때 말아야 쫀득하게 달라붙던 그 촉감.
입에 넣자마자 퍼지는 고소한 밥맛.
이건 김밥이 아니라, 그냥 야채말이다.
모양만 따라 한다고 본질이 되는 건 아니다.
사람도, 김밥도 마찬가지다.
속이 알차도, 겉을 감싸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밥'이다.
밥이 있는 김밥은
묘하게 안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