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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큐레이터 Nov 10. 2022

보이지 않는 가치를 증명하는 일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행운

2022년 5월 31일 퇴사를 선언하고 꼬박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손절연구소의 대표로서 손절언니로 활동한 지 6개월이 된 셈이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난생처음 유튜브라는 것을 찍어봤고, 나와 비슷한 1인 사업가들을 만났고, 대형 출판사와 미팅도 했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손절 수강생들을 만났다.


요즘 유행하는 지식창업, 가치 창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 헤매는 사람들이 많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상품을 판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전하려는 가치를 유심히 지켜봐 주는 사람도 생겼고 '손절'이 인생의 핵심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도 생겼다.


하지만 난 조금 불안했던 건지도 모른다. 매달 급여를 받던 월급쟁이 인생에서 당장 수익이 나지 않아도, 이 가치를 장기적으로 바라보며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은 끊임없이 나와 싸우는 일이다.


6개월 동안 혼자 고군분투하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과 나는 혼자일 때 더 우울감에 빠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6개월이라는 시간과 2022년도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은 나를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드는데 한몫했다.


갑자기 집중이 되지 않았고 구직사이트를 드나들며 어딘가 홀린 사람처럼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글도 쓰면 는다고 취준생일 때는 한 문장도 쓰기 힘들었던 자기소개서가 어쩜 그리 술술 잘 써지는지 신기했다.


그러다 유명 보험회사에 면접을 갈 일이 생겼다. 전 직장에서 보험담당 업무를 했기에 나름 자신이 있었고 은행에서 일했던 경험은 경력이 안되는데 보험은 경력직으로 쳐줘서 '아 나도 경력직이 될 수 있구나'라는 안도감도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 1시간 40분 넘게 지하철을 타며 강남 한복판에 도착했을 때 스스로 위축됨을 느꼈다.


'내가 원하던 것은 이게 아닌데. 내가 이러려고 퇴사한 게 아닌데.'


사원증을 목에 걸고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커피 한잔을 들고 업무에 복귀하는 회사원이 부러웠던 걸까?


나는 왜 나를 그토록 초라하게 만드는 걸까?


하지만 손절연구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결국 돈이 필요했고 간간히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터였다. 인사담당자와 이야기하는 내내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이래도 되나'싶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젊은 나이에 노동을 하지 않는 것도 인력 낭비겠거니 생각했고 '그래 어쩌면 영업이 내 체질일 수도?' 라며 

한번 도전해보자 마음먹고 다시 지하철에 앉아 꾸벅꾸벅 졸며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했다. 술이 달았다. 하루가 인상 깊었던 걸까?


면접 아닌 면접을 치른 후, 몇 주 전 대규모 강의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던 동생을 만났다. 아무 생각 없이 1인 사업가들이 모인 특강 자리에 참석했고 당시 내 옆자리에 있던 예쁜 친구가 말을 걸어줬다. 그날 그렇게 소중한 귀인을 얻었다.

여자에게 처음 꽃과 빼빼로를 받아보았다. 사람을 챙길 줄 아는 친구이다. 만날때마다 직접 만든 팔찌도 준다! 

나보다 3살이 어린 친구지만 배울 점이 참 많다. 실행력이 놀랍고 거침이 없다. 이 친구의 10년 후가 기대된다. 나도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저렇게 전투적이었는데 왜 갑자기 의욕을 잃었을까, 뭐가 문제일까 싶었다. 


많은 대화를 나눴고 나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건네주었다. '언니 충분히 잘하고 있잖아요 무슨 걱정이에요!' 이 친구도 프로손절러로 적격인 탓에 내가 전하는 핵심을 잘 파악했고 '손절'이 결국 사람의 인생을 구하는 일이라고 해주었다. 항상 사람들에게 기운을 얻는다. 


어쩌면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빠르게 결과를 내야 한다는 욕심, 크게 성공해야 한다는 욕심. 그렇게 욕심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든다. 욕심을 버리고 묵묵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진심으로 임하면 결과는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있다.


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보험 인사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죄송하지만,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아무래도 업무에 임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내심 나의 어머니는 내가 추가적인 경제활동을 하길 원했지만, 어쩌겠는가.


난 여전히 손절연구소 대표로서 바쁜 하루를 보내야 하고,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


동생을 기다리며 신논현에 위치한 교보문고에 들렀다. 그곳에서 수많은 책들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난 작가로서의 고고함을 유지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고. 이 죽일 놈의 자존심! 작가가 뭐라고. 이미 내 통장 잔액은 서서히 줄어가는데 작가의 자존심과 당장 먹고살아야 한다는 내 욕망이 매일 저울질하고 있다. 둘 중에 누가 이길지는 아마 내가 더 많은 먹이를 주는 친구가 이기겠지.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 끝에 시집 하나를 펼쳐 시 한 구절을 읽으며 눈물을 참아내고, 책을 뒤적이며 냄새를 맡는다. 그렇게 난 잠깐의 시간 동안 책들을 오롯이 느끼며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이렇게 한 글자씩 적어내는 나는 천생 작가인가 싶다. 


나보다 3살이 어리지만 배울 점이 많은 동생과 한강을 한참 걷고, 직장인들과 함께 퇴근하고 돌아와 오늘의 감정을 이곳에 남겨본다. 


그리고 난 이 일이 참 좋다. 매주 만나는 손절 수강생의 표정이 변하였다. 자신감이 없어 보였고 의욕이 없어 보였고 말 꺼내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는데, 한눈에 밝아진 게 보인다. 누군가의 마음에 1cm의 변화라도 생겼다면 나는 이 일을 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요 근래 가장 보람 있었던 하루를 떠올리며 오늘도 손절연구소의 대표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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