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줄 수 있는 일
1.
“엄마 볼 만져.”
내 아이의 말은 평서문이자 의문문.
‘만지고 싶어요’와 ‘만져도 돼요?’를 동시에 하는 말.
“응, 그래. 만져도 돼.”
나는 허락한다.
아이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환하게 웃는다.
쌍둥이 형에게도 가끔 말하는데 그들은 늘 거부한다. 그래도 아이는 웃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안 된다는 말에도 까르륵 웃는다.
“엄마, 하루는 왜 자꾸 볼을 만지려고 해?”
쌍둥이가 묻는다.
“나도 잘은 몰라. 근데 하루에게는 중요한 일인 것 같아. 내가 싫다고 하면 슬퍼하거든.”
그러니까 나는 알고 있었다.
2.
지난여름에는
“엄마 가슴 만지면 안 돼. 안돼(셀프 강조)”
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내가 이미 거부한 적이 있기에 부정형으로 말했다.
가슴을 만지고 싶어요, 하지만 안 되지요?
“안돼.”
나는 늘 안 된다고 했다. 혹시라도 아이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꺼낼까 봐. 학교 선생님이나 동생, 누나들에게 그런 말을 웃으면서 건넬까 봐.
가슴을 못 만지게 해서일까. 언제부턴가 내 볼을 만지려고 했다. 볼? 잠깐 고민했다. 그래 이건 괜찮을 거야.
“응, 그래. 볼 만져도 돼”
엄마 얼굴만 가능하다고, 다른 사람은 안된다는 말을 늘 두 번 세 번 덧붙이면서.
3.
며칠 전 특수학급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하루가 요즘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에게-형, 누나, 동생 가릴 것 없이, 그리고 선생님에게도-
‘볼 만져’라고 말하고 얼굴로 손을 뻗는다고. 다들 싫다고 말하지만 하루는 까르륵 웃고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고. 처음 있는 일은 아닌데 요즘에 좀 빈도가 늘었다고 말씀하신다.
알지 알지.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
“선생님 가슴 만져.” 이 말도 꺼낸다고 했다.
지난번 상담 때 다행히 그 말은 안 한다고 하셨는데 최근에는 한다고.
하루는 거절당할 것 알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아요. 안된다고 정색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재밌어서요. 그게 하루가 타인과 소통하는 법일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집에서 안된다고 다시 잘 말하겠습니다.
4.
아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말한다.
“엄마 볼 만져.”
나는 고민한다. 이 허락이 잘못된 걸까?
다 안된다고 했어야 됐던 걸까?
“안돼.”
아이는 웃지 않는다. 놀란 눈치다.
“싫어! 엄마 볼 만져.” 엄마의 답변이 싫다는 아이.
“안돼. 엄마 볼 만지는 거 싫어.”
나도 단호하게 말한다. 엄마 볼 만지는 것도 안되고, 학교에서 다른 사람 얼굴 만지는 것도 안돼.
볼을 못 만지게 하면 가슴 만진다는 소리도 꺼내지 못할 거라고. 여기엔 아무런 논리도 인과관계도 없지. 엄마의 허술한 상상에 불과하지.
“싫어. 싫어.”
아이는 웃지 않는다.
5.
잠들기 전 아이는 포기한 얼굴로 말한다.
“엄마 볼 만지면 안 돼.”
안될까요? 만지고 싶어요.
나는 침을 삼킨다.
“볼 만지면 안 돼.”
아이의 슬픈 얼굴.
엄마가 대신 안아주면 되잖아.
아이를 안아주지만 아이는 웃는 않는다.
그날 밤 아이는 잠꼬대를 했다.
“엄마 볼 만지면 안 돼.”
6.
아이는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말한다.
“엄마 볼 만지면 안 돼.”
나는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안돼.”
엄마 볼도 안되고 다른 사람들도 안돼.
그럼 다른 사람들이 무서워해.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 부디 그 말을 하지 않기를 기도했다. 고작 그런 기도를 했다.
7.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나를 보자마자 하는 말.
“엄마 볼 만지면 안 돼.”
안돼? 아직도 안돼?
나는 흔들린다.
“돼. 엄마 볼 만져도 돼.”
“엄마 볼 만져도 돼!”
아이가 웃는다.
이게 뭐라고.
미안해. 미안해.
8.
“하루는 왜 볼을 만지려고 하는 거야?”
쌍둥이가 묻는다.
“나도 잘 몰라. 내가 어떻게 다 알겠니.”
근데 이건 알아. 내가 안 된다고 하면 거부당했다고 여기는 것 같아. 엄마가 자기를 거부했다고.
그래서 슬퍼해. 많이.
9.
사랑해.
더 많은 사랑해가 필요하다.
아이가 나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안돼'가 아니기를.
뭐가 어렵다고.
해줄 수 있는 일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