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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피쉬 Mar 06. 2020

시는 돌이 되어

#오늘의 시

난 요즘 매일 시를 만난다.

어떤 시는 내 안으로 들어오고

어떤 시는 암호처럼 나를 비켜간다.


내 안으로  들어온 어떤 시도

내 몸을 통과해 나가는 법이 없.

잘못 삼킨 쪼가리처럼 목구멍에 걸리거나

사리인 양 명치께 박혀다.

소화하지 못하니

내 안에 그렇게

자리 하나씩 차지하고 다.


비껴간 시들은

한 달 후나

수년이 지나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


멍청한 얼굴로 길을 걷는 내 뒤통수로

아든 돌멩이가 되어

멍청하게 걷다가 기어이 넘어지고 말,

내 걸음을 멈춘 돌부리가 되어

그런데도 계속  멍청하게 살아도 될 것 같은

내 안락함 앞에

버티고 선  태산 같은 바위가 되어


2020년 3월 5일에 읽은 시를 기억해내면

길을 비켜주겠다고 할 것만 같다.


아니 그걸 어떻게 기억해요,

울 것 같은  마음도 잠시


전구가 켜지듯 머릿속 환해진다,

동봉돼있던 필름 한통이 촤르르 펼쳐지며

먼지 쌓인 시집이 열리고

문장 한 줄 한 줄이 줌인되고

내가 사랑했던 시인의 이름이 입술에서 흘러나온다.


한 시절의 나를,

여전히 내 몸을 빠져나가지 못한

시들이 일제히 열을 내뿜으며

그때의 나를,

오늘의 나를

불러 세운다.


"나희덕, 열대야."


나는 매일 시를 읽는다.

빠져나가지 못한 시를 움켜쥐고

지금의 나도

세상 어딘가에 단단하게 박혀있었으면,

그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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