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요즘 매일 시를 만난다.
어떤 시는 내 안으로 들어오고
어떤 시는 암호처럼 나를 비켜간다.
내 안으로 들어온 어떤 시도
내 몸을 통과해 나가는 법이 없다.
잘못 삼킨 돌 쪼가리처럼 목구멍에 걸리거나
사리인 양 명치께 박혀있다.
소화하지 못하니
내 안에 그렇게
자리 하나씩 차지하고 있다.
나를 비껴간 시들은
한 달 후나
수년이 지나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
멍청한 얼굴로 길을 걷는 내 뒤통수로
날아든 돌멩이가 되어
멍청하게 걷다가 기어이 넘어지고 말,
내 걸음을 멈춘 돌부리가 되어
그런데도 계속 멍청하게 살아도 될 것 같은
내 안락함 앞에
버티고 선 태산 같은 바위가 되어
2020년 3월 5일에 읽은 시를 기억해내면
길을 비켜주겠다고 할 것만 같다.
아니 그걸 어떻게 기억해요,
울 것 같은 마음도 잠시
전구가 켜지듯 머릿속이 환해진다,
동봉돼있던 필름 한통이 촤르르 펼쳐지며
먼지 쌓인 시집이 열리고
문장 한 줄 한 줄이 줌인되고
내가 사랑했던 시인의 이름이 입술에서 흘러나온다.
한 시절의 나를,
여전히 내 몸을 빠져나가지 못한
시들이 일제히 열을 내뿜으며
그때의 나를,
오늘의 나를
불러 세운다.
"나희덕, 열대야."
나는 매일 시를 읽는다.
빠져나가지 못한 시를 움켜쥐고
지금의 나도
세상 어딘가에 단단하게 박혀있었으면,
그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