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동미 Jun 06. 2020

가난의 구체를 담은 뜨거운 다큐 <사당동 더하기 33>

조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사당동 더하기 33>


밥은 안 굶고 사는 시대라고 한다. 전쟁 폐허였던 한국은 이제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고 OECD 회원국으로서 손꼽히는 부국이 되었다고 말이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절대 빈곤은 사라지고 상대적 가난만 남은 줄 알았다. 조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사당동 더하기 33>(이하 <사당동 33>)을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큐 <사당동 33>은 사회학자인 조은 전 교수가 달동네 사당동을 연구하면서 만난 한 가족을 86년부터 2019년까지 33년간 좇은 작품이다. 86년 당시 사당동은 북한 이주민과 이촌향도 현상으로 가난한 시골 출신들이 몰려 살던 동네였다. 조은 감독은 철거민 사례 연구를 하러 사당동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정금선 할머니 가족을 만났다. 금선 할머니는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북한 이주민으로 이후 중계동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 살게 된다. <사당동 33>은 영화 초반 금선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여준 뒤 첫째 손자 영주, 둘째 손녀 은주, 막내 손자 덕주를 비춘다. 전작 <사당동 더하기 22>(2009)에서는 금선 할머니와 철거민 이야기가 주였다면, <사당동 33>은 손자 세대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은 감독은 손자 세대를 지켜보며 가난이 뼛속까지 스며들고 핏줄까지 스며들어 대물림되는 현장을 담았다.


첫째 손자 영주는 젊은 시절 성실하고 반듯해 보였다. 전기 기술을 배워 곧잘 일자리를 구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1년 이상 고용을 유지하지 못하는 신세에 처한다.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1년이 되기 전 잘라버리는 영세한 일자리만 전전하던 그는 후에 생활보호대상자가 된다. 작품의 초반, 영주가 목회자의 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오는데, 영주가 교회 연단에 섰을 때 매우 감동적인 설교를 할 줄 알았다. 정규교육을 마치지 못했을지라도 교회에서 삶의 돌파구를 만들어낼 줄 알았다. 일자리이든 개인의 자아 찾기이든 간에 말이다. 하지만 영주의 설교 장면을 보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목회자들이 하는 단어들을 조합하여 말을 하지만 결코 의미 있는 설교였다고 할 수 없는 말만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였다면 분명히 기적이 일어났을 장면에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당동 33>은 극영화였다면 기적이 있어야 할 자리에 기적이 불가능한 인물들을 그대로 담으면서 가난의 구체를 보여준다. 거기에는 눈물도 없고 슬픔 없다. 가난으로 인한 실패의 순간만 건조하게 담있을 뿐이다.


둘째 손녀 은주는 20대 초반 첫째 딸 지현을 낳았다. 그리고 둘째딸 지선, 막내아들 지남을 낳았다. 은주는 자신과 비슷한 가난한 사람과 결혼했고 생활비를 제대로 받지 못해 집에서 여러 가지 부업을 한다. 소위 ‘인형 눈 붙이기’라고 하는 가내공업으로 생활비를 번다. 그런 은주가 어느 날 친구들과 나이트에 놀러가 유흥문화를 접하는데, 그것이 돈벌이가 된다는 걸 알게 된다.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면서 비교적 적게 일하고 돈 버는 법을 알게 된 그는 “이제 절대 노가다(가내공업)는 못한다”고 조은 감독에게 말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냐고 묻자 은주는 순간 경직되더니 후에는 돈 모아서 자기 술집을 차려야 한다고 답한다. 다큐의 마지막 장면에서 은주는 다시 가내공업을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사당동 33>에서 가난섬뜩하게 다가오는 건,  자식 세대에게도 그대로 대물림되기 때문인데, 은주의 딸 지현과 지선도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게 되는 것으로 드러난다. 어린 그들은 그렇게 일을 하겠지만 중년에 접어들게 되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이다.


33년이란 다큐의 시간의 힘이 증명한 바에 따르면, 빈곤 앞에기적은 불가능하고, 개인 노력은 미력한 것이며, 운명은 부모의 가난을 답습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금선 할머니 가족의 가난한 삶에 깊숙이 들어가 4대에 걸쳐 연구를 이어갔던 조은 감독은 작품의 마지막에 “이 가족의 생존에 대한 의지와 강인함은 경계가 없었다. 가난의 무게를 담을 수 없었다.”라고 고백한다. 끝내 그들이 처한 가난의 무게를 다 담을 수 없었다는 사회학자의 뜨겁고 진솔한 고백이다. 그를 보는 관객은 다큐가 끝난 뒤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될 것이다.


덧1. 전작 <사당동 22>를 보고 유지나 평론가는 자장면 배달 노동자들이 마치 덕주와 같이 느껴졌고 그들을 공감하게 됐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 역시 다큐를 보고 난 뒤 그런 깨달음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동네 이웃이었던 한 아주머니네가 떠올랐는데요. 그분에게는 저보다 두어 살 어린 아들과 딸이 있었습니다. 잘 까불거렸고 늘 동네 사람들에게 혼이 났던 아이들이었는데요. 어린 눈에는 크게 잘못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동네 사람들은 유난히 아이들을 나쁜 아이처럼 취급했고 후에는 정말 나쁜 아이가 되어서 아주머니가 학교에 자주 불려갔습니다. 나중에는 아주머니네 가정이 깨졌고 남매 둘은 각자 성인이 되기 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특성들을 모두 개인의 성향인 줄로만 알고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니다. 하지만 <사당동 33>에서 본 가난의 구체적인 모습이 그 아주머니네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가난이 정말 깊숙이 들어서면 가정은 깨어질 수밖에 없고, 누군가는 꿈을 가져보지도 못하고 돈이 흐르는 대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죠. 다큐를 보는 내내 지선이가 마치 그 아주머니네 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덧2. <사당동 33>은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작에 초청됐습니다. 전주에서 조은 감독을 만나서 인터뷰했습니다.(링크를 첨부합니다) 인터뷰 내내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는데요. 좋은 다큐를 가지고, 좋은 이야기를 나눠주신 조은 감독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완화의료 의사가 바라본 죽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