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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죽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자살을 꿈꾸는 당신에게

by 상담군


’대한민국은 OECD 청소년 자살 1위다.‘라는 문장을 SNS나 미디어 어딘가에서 읽으신 적 있죠? 사실 이 문장은 거짓입니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에서 청소년 자살률이 10위권 밖에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지요. 자살률은 연령과 비례합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자살의 가능성이 높아지구요. 노인 자살률은 우리나라가 OECD 1위가 맞습니다. 심각한 문제죠. 은퇴 후에 나이가 너무 많아 더 이상 일하지 못하게 돼도 그분들이 충분히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복지제도가 더 강화돼야겠죠. 연령을 통합해도 근소한 차이로 우리나라가 자살률 1,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청소년의 자살률이 1위인 것이 아니라,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 것입니다. 청소년 중 교통사고나 질병으로 죽는 인구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인구가 많다는 뜻이죠. 진짜 심각한 문제죠. 청소년기의 죽음은 자의에 의한 것이 타의에 의한 것보다 빈번하다는게 말이에요.


생명체는 태어난 이상 온 힘을 다해 살기 위해 발버둥쳐야 겨우 겨우 목숨을 이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에서 생물의 역사가 시작된 30억년 전부터 이 시간까지 남아 있는 모든 종들은 그 투쟁에서 성공한 이들입니다. 심지어 신체적, 심리적 고통도 생존을 위한 도구입니다. 기아, 외로움, 신체손상, 질병 등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개선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우리를 괴롭게 하고, 결과적으로 해가 되는 상태를 어떻게든 피해서 더 잘 살게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생명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다니요. 고층 빌딩에서 지상을 내려다 볼 때의 공포, 뾰족한 물건을 몸에 대고 누를 때의 통증, 숨을 참을 때의 온 몸을 쥐어짜는 답답한 느낌은 모두 죽지 않고자 생겨난 본능적 장치입니다. 이를 억제하고 끝까지 죽음으로 역주행하는 사람들이 삶에서 느꼈을 고통의 크기는 감히 짐작되지도 않습니다.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이 자살의 원인 중 대표입니다. 실제로 우울증은 심리적 고통 그 자체입니다. 마음의 감기라고도 하지요. 이는 증상이 감기처럼 만만하다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정신질환 중 발병률이 가장 높다는 뜻입니다. 이 병이 주는 괴로움은 ’이 정도로 아픈데 왜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할 정도입니다.


다만 자살원인이 우울증이라는 건 반쪽짜리 설명입니다. 불안이나 분노 정서도 심리적 고통이기 때문에 만성적으로 느끼면 우울증세가 나타납니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도, 주변의 중요한 사람과 사별해도 기분이 가라앉고, 매사에 흥미가 없어지고, 무기력해집니다. 가정에서 학대를 당하거나 왕따,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도 겉으로 보면 우울증이 생긴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울증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도 그건 단편적인 해석인 거죠.


자살은 징후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증세는 죽고싶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자살하고자 하는 사람은 고통을 마음속에 담아놓고 끙끙 앓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현실에서는 “이 세상을 떠나면 어떤 느낌일까?”, “죽으면 누가 알아줄까?”처럼 자살을 직접적으로 언급합니다. 엄살로 생각하고 흘려들으면 위험하지요. 위생과 꾸밈에 갑자기 무관심해지거나, 무기력하고 힘이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징후 중 하나이구요. 자기 물건을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고 주변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주변에 교육이나 상담을 공부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단 한 명이라도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있는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약간 과장이 있는 것 같지만, 자살 문제에 있어서는 의사소통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친구나 지인이 자살 징후가 있는 것 같을 때는 대화를 시도해 보세요. “너 죽고싶다는 생각 하고 있어?”라고 직접적으로 묻는 것이 좋습니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상담센터나 병원으로 갈 수 있도록 설득해 주세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자살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죠. 정말 죽고싶다는 생각이 강하다면, 반드시 누군가에게 알리세요. 꼭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이렇게 말해도 아마 ’그래서 무슨 소용이 있어?‘, ’내 문제를 해결하는게 아니라 자살행동을 억지로 틀어막는 거잖아.‘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냥 이대로 숨만 쉬게 해 주는게 아닙니다. 훈련받은 전문가는 결국 나를 자살생각까지 밀어올린 마음의 짐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세상에 진심으로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 그 자체는 목적이 아니거든요. 자살하고자 하는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첫째,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둘째, 주변 사람들에게 심한 정신적 상처를 줘서 앙갚음하고자. 죽음은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특히 청소년에게는 자살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터널시야‘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터널에 들어가면 앞만 보이고, 옆은 다 벽으로 막혀 있죠. 인생 문제의 해결에 관한 시야가 좁아져서 자살 말고는 해답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죠. 자신을 둘러싼 환경도, 마음 상태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게 됩니다. 터널 시야 현상 때문에 현실을 실제보다 더 완고한 곳으로 보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생각도 정서도 바뀝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상담실에서 선생님과 얘기하면 고통의 크기가 줄어들고 상념의 내용도 달라집니다. 자기 상태가 지금 이대로일 거라고 믿기 때문에 목숨을 끊을 생각만 하게 되는 거거든요. 아까 인지치료 이야기하면서 마음이 밝아지는 과정을 설명했죠? 환경이 바뀌지 않아도 마음의 통증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현재 상태로 버티라는 게 아니라 도움을 받아 바꾸라는 거에요. 힘이 될 사람들이 여러분 주변에는 정말정말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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