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으로서의 진로
진로(進路)를 한자를 뜻풀이 하면 ‘나아갈 길’이라고 해요. 혹시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뭐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주제로 상담을 하면 우리가 진로상담을 한다고 하잖아요. 왜 앞날에 관한 상담을 할 때 ‘직업상담’ 혹은 ‘직업선택상담’이라고 하지 않고 ‘진로상담’이라고 할까요? ‘진로’라는 단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지만 뜻풀이 하면 좀 낯설죠?
진로상담이란 직업을 골라주는 상담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실제로 ‘직업상담’이라고 해서 어른들이 하는 일자리 찾기 상담도 있습니다. 그러나 청소년에게는 일자리를 하나를 찝어서 정해 놓는 것보다 나아갈 길을 닦기를 돕는 게 더 도움이 됩니다. 특정 직업을 목표삼으면 우리는 한 점 만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나무 대신 숲을 보고 인생의 방향을 정하면 이 점은 한 차원 더 깊어집니다. 하나의 선이 되는 것이죠. 진로상담은 ‘인생 방향 정하기’입니다.
일단 이 페이지를 표시해 놓고 책을 덮어 부세요. 그리고 훗날 여러분 인생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아요. 앞으로 진학할 학교를 생각해 두셨나요? 가정을 꾸린다면 어떤 부모가 되고 싶으세요? 지역사회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이렇게 여러분의 앞날을 입체적으로 그려 보세요. 이제 그 그림 안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직장도 한번 골라 넣어 보세요. Super라는 진로학자는 인생의 진로생애무지개라는 모형에서 인생 역할을 자녀, 학생, 부모, 배우자, 시민, 직장인으로 나누었습니다. 삶에서 맡게 되는 배역 중에 직장인은 여러 역할 중 하나이고 미래 직장을 고를 때 일생이라는 거대한 극 안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죠. 삶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먼저 생각하고, 그 중에서 진로를 생각하면 빡빡한 세부계획은 만들기 어려워도 전반적인 미래의 방향과 뼈대를 만들 순 있겠죠.
이 길을 걷다 보면 중간 중간에 갈래길이 있습니다. 목적이 동일해도 말이죠. ‘나는 미술을 하겠어’라고 마음먹은 중학생이라면 일단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생각할 겁니다. 아니면 인문계 학교를 입학하는 게 미술대학 진학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죠. 특성화고나 전문대를 가서 먼저 돈을 많이 주는 기업에 취직한 뒤에 돈을 모아 미술에 매진할 계획을 하는 학생들도 있을 겁니다. 이 길에는 대학입학시험, 취직과 같은 난이도 높은 언덕도 있구요. 중간중간 목적으로 가기에 더 효율적이다 싶으면 길을 바꾸기도 합니다.
우리는 간호대학은 간호사만 기르는 학교인 걸로 생각하지만, 실제 간호대학 졸업을 하고 고를 수 있는 직업은 백여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진로는 외길이 아닙니다. 간호사가 아닌 다른 일(보건교사, 대학교수 등)을 하기 위해 간호대학을 갈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건강을 돌보는 일을 하기 위해 간호학과가 아닌 다른 대학 학과(물리치료과, 응급구조학과)를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진로설계에서 중요한 건 미래직업 고르기보다 어떤 인생을 살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얼 해서 먹고 살지 모르더라도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 수 있습니다. 의사가 되겠다, 교사가 되겠다, 이런 목표를 정하는 것은 좋지만 되지 못하거나 되어도 성취한 직업이 기대했던 느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반면 미래직업을 고르지 못한 사람도 관련 분야의 연습과 훈련에 매진한다면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진로는 길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그 도로를 밟아가는 전 과정이 진로상담의 의논 주제입니다. 심지어는 진로상담 주제가 일반적인 심리상담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난 뭘 해도 안될 것 같아요’라는 고민을 가진 학생이라면 불안감을 줄여주고 자신감을 심어주는 상담을 해야 하지요. 진로문제 때문에 상담실을 찾았지만 실제로는 심리적인 문제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심리적인 문제 해결부터 흥미와 적성찾기, 직업정보 탐색, 직업능력 기르기, 대학 선택하기처럼 이 길에서 만나는 모든 장애물 극복과 갈래길 선정이 진로상담의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진로계획이 명쾌하지 않아 고민이었던 친구들이 이 절을 읽으면서 마음의 짐을 좀 덜었으면 합니다. 지금 겪고 있는 혼란조차도 이 길의 일부라는 것을 생각하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