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두부, 달걀, 아삭아삭 콩나물~’ 하는 귀여운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어쩜 올 때마다 이렇게 한참을 고민하게 되는지, ‘이게 도대체 뭐 별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결정을 내리는 게 쉽지 않다. 내 앞에는 네모반듯한 계란판들이 정갈히 줄을 지어 놓여있고 나는 그중에서 무엇을 살지 몇 분이나 고민했다. 10구에 3천 원짜리 저렴한 달걀과 아주 건강하고 깨끗하다는 10구에 6천 원짜리 동물복지 친환경 달걀은 어느 하나를 쉽게 고르기 어려운 선택지다. 이런 게 킬러문항인가.
어렵게 달걀 한 판을, 그것도 소비기한이 가장 많이 남은 한 판을 골라 쇼핑카트에 담았다. 당연히 난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냉동실에 얼려둘 찌개 겸 카레용 고기와 4kg짜리 쌀 한 포대를 고를 때도 한참을 고민했고, 만 원짜리 귤 한 팩은 과일 매대 앞을 몇 차례 왕복하다가 눈을 질끈 감고 집어 들었다. 손을 들어 시계를 보니 몇 가지 되지도 않는 물건들을 고르는데 두 시간이나 흘렀다. 최저시급으로 치면 귤 두 팩 어치의 시간이다.
요즘은 대형마트마다 셀프계산대가 갖춰져 있어 계산을 위해 줄을 서는 시간이 짧아졌다. 각기 다른 물건을 카트에 담은 사람들이 웨스 엔더슨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알아서 척척 줄을 서고 컨베이어벨트처럼 흘러간다. 안내하는 직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아니더라도 아무렇지 않을 것처럼 익숙한 걸음들이 이어진다. 나도 자연스레 컨베이어벨트에 올린 부품 하나가 되어 휴대폰을 보고, 옆 카트에 담긴 물건을 힐끔대며 곁눈질하다가 순서가 되어 계산대 옆에 카트를 얌전히 주차하고 물건을 하나씩 꺼내 바코드에 찍기 시작했다.
‘띡’ 소리에 더 가까운 듯한 ‘삑-’ 소리가 울릴 때마다 화면에 적힌 총액이 조금씩 커진다. 몇 번째 물건을 찍었을까, 머릿속으로 가늠하던 수를 넘기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입이 마르고 긴장하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마트 가지 말고 시장 다니랬지?’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떠올랐지만, ‘시장에서 사면 같은 값에 양은 더 많이 주겠지만, 조금씩 살 수가 없다고요’라며 마음속으로 독거가구의 가장으로서 변명 아닌 변명을 떠올렸다. 얼마 사지도 않았는데 10만 원이나 나왔다며 투덜거리며 장바구니를 꺼내 물건을 담았다. 쌀 포대가 들어 묵직한 장바구니의 무게감을 느끼며 터벅거리며 마트를 나올 때 나도 모르게 탄식이 튀어나왔다. “거 참, 먹고살기 힘드네.”
먹고산다는 것을 우습게 보던 때도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돈이나 물질적 가치 모두를 싸잡아 낮춰보았다. 밴드 체리필터의 노래 가사처럼 ‘스무 살쯤엔 요절할 천재일 줄만 알던’ 교복 입은 어린 시절에는 언젠가 성인이 되어 세상을 누비고 다닐 내가 돈이나 자리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아름답고 자유로운 청춘일 거라 상상했다. 그 뒤로 십 수년이 흘렀고, 슬픈 건지 당연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내가 속물이라 손가락질할 만큼 ‘돈타령’을 수도 없이 하는 아주 평범한 서른 즈음이 되었다.
카페에 앉아있다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주식 이야기에 귀를 쫑긋거리고, 가진 건 빚 밖에 없는 주제에 포털사이트의 부동산 페이지를 둘러보며 어느 동네의 아파트가 얼마쯤 나가는지 기웃거린다. 직장 사람들과 식사 후에는 노란 간판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저렴한 대용량 아메리카노를 사 들고 하루 종일 홀짝이고, 장을 보러 가서는 카트를 끌며 A마트 가성비 상품을 검색한다. 잔뜩 술에 취한 밤에도 택시비가 아까워 패딩 앞섶을 여미며 버스정류장을 찾아 비틀비틀 걸어가곤 한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이따금씩 혼잣말로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뱉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먹고사는 삶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이따금씩(사실은 자주) 찾아와 비참한 기분을 들게 하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돈이나 집 같은 물질적인 것에 연관되어서가 아니라 나의 삶을 단단히 얽어 메고 구속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어도 가진 것이 없으면 모험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나는 의지를 가진 독립개체의 삶을 살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대부분의 행동과 선택을 정해진 틀 안에서 해야 하는 자본의 종속개체다.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내 머릿속을 들여다봤다면 ‘이 자본주의의 노예!’라며 어느 늙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같은 말을 했겠지.
대학시절 가깝게 지내던 B형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먹고사니즘이라는 단어 알지? 먹고산다는 행위에 이념을 뜻하는 -ism이 붙은 데에는 이유가 있어. 이제 우리는 이념보다 생존과 생계를 더 중시하는 세상을 살게 된 거야.” 거의 매일 취해 세상의 진보를 노래하던 그 형은 유명 방송사의 직원이 되어 적당한 월급을 받으며 아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 된 삶을 살고 있으며, 그 옆에서 함께 취해 시니컬한 독설을 뱉어대던 나는 은행 대출이자를 계산하며 유독 몰려있는 타인의 경조사에 부조금을 하고도 이자를 낼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고 있다.
먹는 것은 삶을 위해 필수적이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먹다와 산다가 자연스럽게 붙어서 쓰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요즘에는 무엇을 먹느냐가 삶의 질을 좌우하고, 얼마만큼 먹느냐가 삶의 모습을 좌우한다. 먹는 음식의 종류와 가격이 그 사람의 삶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기도 한다. 김치찌개를 먹으며 소주를 곁들이는 사진과 미슐랭에서 3 스타를 받은 파인 다이닝에서 근사한 요리와 와인을 먹는 사진이 SNS에 올라온다면, 두 사진에 보내는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다를 거라 확신한다. 비록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시는 사진을 올려본 적은 없어 사람들의 시선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럴 거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부를 잘하던 누구는 공무원이 되었다 하고, 노는 걸 좋아하던 누구는 영업직으로 성공해서 벌써 외제차를 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으면 그들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 보다 얼마를 벌며 사느냐를 더 먼저 논하는 우리의 모습에 기시감을 느낀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재밌게 본 영화나 즐기는 취미 이야기보다 먹고사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우리는 정말로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직업적 특성 탓에 내게는 종종 소득이 없는 기간이 생기곤 한다. 짧으면 두세 달에서 길면 1년 가까운 기간을 보내면 그전까지 모아두었던 돈을 생활비로 모두 쓰게 된다. 많이나 벌어두었음 모를까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 한 줌 티끌, 바람 불면 날아가는 건 한 순간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계좌 잔고를 확인한다. 다행히도 모바일 뱅킹이 있어 ATM으로 가 통장정리를 하지 않아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가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게임캐릭터의 HP(Health Point) 게이지가 떨어지는 것처럼 매일 통장 잔고는 줄어드는데, 도무지 당장 숨통이 틜 구멍이 보이지 않으면 잔액이 선명히 적힌 휴대폰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큰 한숨 연신 내쉰다.
몇 해 전 그런 내 모습을 본 누군가 물었다. 두 손을 모으고 무얼 하느냐고, 기도라도 하는 거냐고. 시답잖은 소리 하지 말고 저녁이나 사달라고 쏘아붙이며 대꾸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누군가의 삶을 단단히 틀어쥐고 그 삶을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까지 좌우하는 것을 보면, 먹고산다는 것은 이념보다는 종교의 영역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돈이시어. 숭배하고 기도하면 구원을 주시나이까. 생존이 우선인 세상에서 생계란 얼마나 준엄한 것인지.
다행히 요즘 난 직장을 다니고 있다. 물론 첫 월급을 받고, 말도 안 되게 적은 액수에 내상을 입어 고통스러워하고 있지만 당장 어떻게 먹고 살 지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사람이 참 간사한 것이 무의 영역에 티끌만 한 무언가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더 많은 물질에 대한 갈망과 부족한 자본에 대한 아쉬움이 동시에 커진다. 더 웃기는 것은, 이제 좀 굶을 걱정 하지 않는다고 어린 시절에 하던 돈이나 물질에서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는 마음도 슬금슬금 고개를 처 들고 있다는 것이다.
늦은 밤 작은 자취방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자니, 마침 멀찍이 틀어놓은 스피커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신해철의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돈, 큰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그런 것들에는 우리의 행복이 없다고 답을 해야 하는데, 어휴 이것 참. 흔쾌히 그렇다고 말을 할 수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