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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 Feb 07. 2024

첫 술- 첫 술에 배부르지는 않아도 취하기는 하더군요.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을 두고 첫 숟가락질이 아닌 첫 음주를 가리키는 말이라 잘못 이해한 적이 있다. 나이가 한 자릿수에 불과하던 오래전 일이지만, 내심 ‘술 한 잔은 배에 기별도 가지 않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TV나 영화에는 등장인물이 술을 마시는 장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고, 그들이 주사를 부리거나 혀가 꼬일 정도로 취하는 장면은 빈 소주병이 대여섯 병씩 굴러다니는 모습으로 그려졌으니 말이다.


 술을 마시는 풍경은 어린 시절부터 매우 익숙했다. 주말 저녁, 단골 갈비 집으로 외식만 가더라도 열심히 양념갈비를 집어 먹는 아이들 옆에서 소주를 기울이는 가장들의 모습을 적지 않은 테이블에서 볼 수 있었고, 집 앞 공터에 있던 포장마차는 해가 지면 이런저런 안주에 술잔을 나누는 이들로 가득했다. 초등학교 시절 가깝게 지내던 친구네 집은 학교 앞에 있던 아파트 상가에서 ‘동아리’라는 프랜차이즈 술집을 운영했는데, 가끔 학부모 모임에 나가는 엄마를 따라 우동 한 그릇을 먹으러 갈 때면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그렇게 술 마시는 풍경에 익숙한 것과는 별개로, 우리 집에서는 빈 술병을 볼 일이 거의 없었다. 내 아버지는 정말로 첫 술에 취하는 사람이었다. 소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안방 침대로 향해 코를 골며 잠에 빠지곤 했다. 맞지도 않는 술을 굳이 찾아드실 리 없으니, 당연히 집에서 술을 드시는 일은 거의 없었고, 엄마가 술을 드시는 일은 친구들을 만나거나 동네 모임에 나가실 때나 가끔 볼 수 있었다.


 아주 가끔 얼굴에 멍이 든 채 학교에 오는 친구들이 있기도 했다. 주사가 심한 부모의 손찌검 탓이었다. 가끔 엄마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 때, 근처에서 얼쩡거리면 그 부모들에 대한 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집은 술과 아주 거리가 멀었기에 주정을 부리는 사람을 볼 일도 거의 없었고, 어린 시절 부모를 보며 으레 갖게 되는 술에 대한 로망이나 동경 같은 것도 갖지 않았다. 이따금 드라마나 뉴스에 술로 인한 사고들이 나올 때는 ‘도대체 어른들은 왜 저럴까’ 하며 한심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술을 마셔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너도 한 모금 마셔보라’며 엄마가 주신 맥주를 홀짝거리기도 하고, 한참 방황하던 고등학교 시절 친구네 집에 모여 소주 한 병을 놓고 서너 명이 한 잔씩 홀짝이고는, 쓰다고 난리 치며 서로 먼저 라면을 집어 먹겠다며 투닥거린 기억도 있다. 그렇게 접한 술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소주는 썼다.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에도 울대를 무언가 꽉 막는 듯 한 거부감이 들었다. 안개가 낀 듯 뿌옇게 변하는 머릿속은 불쾌했다. 세상에는 술이 아니더라도 맛있는 것들이 가득하고, 즐길 거리가 넘쳐났기에 굳이 비행 청소년 코스프레를 하며 술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친구들은 수능이 끝나자마자 합법적으로 술을 마시고 다니겠다며 별렀다. 주민등록증을 들고 당당하게 술집에 들어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디데이를 세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술을 마시는 것보다 어딘가에 틀어박혀 무협지를 읽고 영화를 보는 게 더 좋았다.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취함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은 여전했다. 알딸딸한 기분으로 흔들리기보다 명징하게 세상을 보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한 달 넘게 목적 없이 무료하게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더 좋았다. 나는 그 여유를 있는 힘껏 만끽했다. 그리고 그렇게, 성인이 되었다.




 입학식도 하기 전, 본가를 떠나 작은 자취방을 구했다. 전세나 월세가 아닌 연세였다. 보증금 없이 1년 치 임대료를 한 번에 냈다. 성인 네댓 명이 누우면 가득 찰 정도로 작은 방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곳에 살게 되었다. 설렜고 또 낯설었다. 입학 날을 기다리며 혼자 장을 보고 살림을 익혔다. 수험생 카페에서 먼저 알게 된 동기들을 몇 만나기도 했다. 동기들과 만나서 낯을 가리며 밥을 먹었고, 그들에게 신입생환영회나 대면식 같은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내 주변에는 대학 생활에 대해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술을 강권한다거나 장기자랑을 시킨다는 등의 이야기에 괜히 긴장감도 생겼다.


 어떻게 하다 보니 첫 학기가 시작되기도 전, 같은 학번 동기들이 모인 단톡방이 생겼다. 서로가 누군지 모르는, 수십 명이 모인 그 방에서는 처음으로 지금껏 살던 터전을 벗어나게 된 아이들이 자신을 소개했다. 그중 몇 사람은 군기를 잡으려 염탐하는 선배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몇 사람의 바람몰이에 도시괴담 취급을 받으며 사그라들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이 불과 며칠 간의 수다로 친구가 되었고, 청춘을 막 시작하려는 스무 살의 막연한 기대와 설렘은 개인이 아닌 집단의 것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방에 ‘공지’라는 머리말을 단 짧은 글이 올라왔다.


 입학 전 선후배 간의 친목도모를 위해 대면식을 준비했다는, 많은 참석을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지방에 살고 있어 집이 멀더라도 가급적 만나서 인사를 나누자는 문장에는 참석을 강요하는 뉘앙스가 짙게 묻어있었다. 공지를 올린 사람은 그전까지 잡다한 농담을 하며 시시덕거리던 동기였다. 공지 밑에 덧붙여진 그의 이름과 연락처 앞에는 우리보다 한 해 위인 그의 학번이 적혀있었다. 동기인 척하던 선배가 정말로 있었다는 사실에 약간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장난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대면식 날, 자취방에서 3분 거리에 있던 학교 정문으로 가니 패딩을 껴입고 모여 있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채팅방 프로필과 똑같아 괜히 친밀감이 드는 녀석도 있었고, 사진과 달라 헷갈리는 친구도 있었다. 시끌벅적하던 단톡방과 달리 실제로 만난 동기들은 무척 어색했다. 과잠을 입은 선배들은 공지했던 시간을 정확히 맞춰 등장했다. 추위에 움츠리며 늦게 오는 동기 몇을 기다리려는데, 선배들은 본인들이 따로 장소를 알려주겠다며 우리를 이끌었다. 우리는 소풍 가는 유치원생들처럼 한 줄로 서서 그들을 따라갔다. 우리는 유치원생들보다 100배는 덜 귀여운 모습으로 목적지도 모른 채 걸었고 얼마지 않아 통유리창에 하얗게 김이 서린 칼국수 집에 도착했다.


 식당은 미리 예약이 되어있었다. 테이블마다 가운데 버너에 큰 냄비에 담긴 칼국수가 놓여있었고, 두어 가지 되는 반찬 그릇 옆에 초록색 소주병도 네댓 병씩 놓여있었다. 선배들은 테이블마다 본인들이 한 명은 꼭 앉을 수 있도록 비워놓으라 했다. 우리 동기들 중에는 재수를 몇 년 한 형도, 다른 대학을 다니다 온 누나도 있었지만 선배들은 ‘대학은 원래 나이보다 학번’이라며 어른 행세를 했다. 그들은 ‘술은 선배한테 배우는 거’라며 테이블마다 나눠 앉아 술병을 열었다.


 그렇게 몇 잔 받아 마신 술은 참 썼다. 과음이라는 것을 해본 적 없던 나이였는데, 이럴 때 본인의 주량을 파악해야 한다며 잔이 비는 꼴을 보지 않는 선배들 탓에 얼레벌레 소주 열 잔 가량을 연거푸 들이켰다. 안주를 집어먹을 새도 없이 마신 술에 금방 취기가 올랐다. 밥상 앞에 앉아 배는 고픈데, 잔뜩 올라온 취기에 헛구역질과 속 쓰림이 몰려왔다. 조금 늦게 식당으로 바로 도착한 친구에게 선배들은 ‘후래자삼배’를 외치며 맥주잔에 따른 소주를 건넸다. 취기에 붕 뜨는 느낌과 함께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어설프게 만든 영화를 보는 관객이 된 것 같았다. 가볍게 나오는 실소조차 없는 이상한 영화였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다잡으며 화장실에 갔다가 문득 어린 시절 생각했던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말이 떠올랐다. 소변기 위 벽에 머리를 찧으며 나도 모르게 입에서 “씨발” 하고 욕이 튀어나왔다. 첫 술에 배가 부르진 않았지만, 첫 술에 취하기는 했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술자리는 더욱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둥, 압존법을 써야 한다는 둥 젊은 꼰대들의 가르침이 허공을 오갔다. 그런 잔소리를 듣던 동기들의 표정에는 고대하던 대학생활의 모습이 아니라는 데에서 오는 실망감과 앞으로 어떻게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걱정이 느껴졌다. 2차를 가자며 나서는 길에 과하게 취한 척하며 보도블록에 주저앉았다. 이미 몇 사람은 자리를 뜬 듯 보이지 않았다. 주저앉은 나를 두고 다른 이들은 금방 어디론가 향했다. 비척이며 자취방에 돌아가던 길이 무척 추웠던 기억이 선명하다.




 정식으로 입학을 하고, 그렇게 꼰대처럼 굴던 선배들은 금세 마음을 열었다는 듯 살갑게 대하려 했다. 친구들은 그들과 친하게 지내려 노력했고, 실제로 형누나동생하며 친해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이들이 어설프게 잡으려던 군기는 무척 썼다. 깊은 내상을 입은 나는 한 학기만 다니고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했다. 고작 그 작은 사회에 갇혀 있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게 벌써 10년 넘게 지났다. 쓰다고 인상을 쓰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무색하게도 나는 술을 제법 좋아하게 됐다. 술을 마시고 사고도 여러 번 쳤다.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를 걸거나, 함께 술을 마시던 이들과 치고받고 싸우는 정도의 해프닝들이 남았다. 술에 익숙해지고 사회생활을 하며 술을 조절하는 법을 터득했지만, 아직도 취기는 몸에 녹아들지 않는다. 술을 한 잔도 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술잔을 기울이는 나를 보며 “내가 네 나이 때는 술을 궤짝으로 쌓아놓고 마셨어 인마.”라고 말씀하시지만, 사실 신뢰는 가지 않는다.


 어른이 되었다고 술을 마시고, 취하고 비틀비틀 걷다 서른이 되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고단한 삶을 견뎌내는 발걸음은 갈지(之) 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언제쯤 첫 술에도 배가 부르고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다 여기며 있는 그대로의 삶을 긍정할 수 있을까. 혼란하게 살아가는 우리 서른 즈음의 인생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술잔을 채운다.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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