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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 Feb 14. 2024

SNS -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타인의 일상이 있네요.

 부모님은 내가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분들이었다. 고작 12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내 이모가 대학 시절 PC통신에 빠져 어마어마한 전화요금 고지서를 날아오게 했던 경험 때문일지, 신문과 뉴스에서 수시로 제기하던 인터넷의 유해성과 게임의 폭력성을 우려했기 때문일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랬다. 남들 다 가지고 있다고 하고, 공부에도 필요하다고 하니 집에 컴퓨터를 한 대 들이기는 했지만 아무 때나 자유자재로 만지게 두지는 않았다. 컴퓨터와 얼마나 거리가 먼 유년기를 보냈던지, 나는 아직도 전 국민이 즐겼던 스타크래프트를 제대로 할 줄 모른다.


 컴퓨터를 하려면 부모님의 허락이 있어야 했고 컴퓨터의 위치는 거실과 베란다를 오갔다. 최대한 컴퓨터에 빠지지 않게 하려던 엄마의 노력으로 어느 겨울 베란다에서 얼어버린 프린터 토너 탓에 숙제를 출력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기억도 어렴풋이 남아있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하지 말라는 말은 참 잘 듣던 아이였다. 엄마가 하지 말라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컴퓨터를 하지 않아도 읽을 책도 많고 볼 TV 프로그램도 많았기에 아쉬움이나 부족함을 크게 느끼지도 않았다. 컴퓨터로 무언가를 하는 취미를 들이지 못한 덕에 친구들이 학교를 마치고 몰래 PC방에 갔다가 혼이 날 때, 나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무협지나 만화책을 뒤적이다 집에 가곤 했다.


 컴퓨터가 익숙하지 않았던 만큼, 전 국민이 사용했다는 ‘싸이월드’나 ‘버디버디’도 내겐 낯설었다. 또래 아이들이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자기 자신을 뽐내며 자신만의 세상을 넓혀나갈 때, 나는 폐쇄적인 나만의 세상을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어린 나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였고, 남들이 하는 일에 호기심을 갖기보다는 두려움을 더 많이 느꼈다. 친구들이 부모님께 받은 용돈을 도토리로 바꾸고, 이것을 다시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바꿀 때, 나는 그러다가 소중한 현금이 교환 과정의 어디에선가 사라져 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겁먹은 채 질문을 던졌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아마도)




 인터넷을 통해 하는 무언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다. 2000년대 후반은 걱정의 대상이던 시위가 대중의 문화가 되는 등, 정치·사회적으로 다양한 변곡점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나는 세상에는 성적이나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는 둥의 치기 어린 방황을 하며 야간자율학습(야자) 시간에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현대시와 수필을 필사하곤 했다. 머리가 조금 굵어간답시고 글을 쓰며 스스로를 표현하고자 안간힘을 쓰던 나이었다. 물론 낮은 사회성은 여전했기에 학교에서 또래집단에게 무언가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꺼내지는 못했지만, 표현에 대한 욕구는 일기장과 메모장을 통해 쉬지 않고 분출했다.


 집에서 데스크톱이 아닌 노트북을 쓰면서부터 조금은 더 자유롭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아들이 조금씩 커 간다는 것을 엄마가 깨달았던 덕도 있을 것이다. 화면 한쪽에는 EBS 강의를 틀어두고 다른 한쪽에 띄운 인터넷 창으로 블로그와 카페 등을 기웃거리며 관심 있던 주제의 온갖 정보들을 삼켜댔다. 그즈음 와이파이의 확산과 아이폰을 비롯한 초기 스마트폰의 출시로 새로운 유행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 SNS였다. 내 기억에는 연예인이나 정치인, 작가들이 주로 사용하던 트위터가 먼저 인기를 끌었던 것 같지만, 나는 한정된 글자 수로 짧은 글을 쓰는 트위터보다 비교적 장문을 쓸 수 있는 페이스북에 더 매력을 느꼈다.


 페이스북을 통해 여러 셀럽들을 팔로우하며 받아주지 않을 친구신청을 날렸다. 홍세화나 진중권, 유시민이나 우석훈 같이 한창 심취하던 책의 저자들의 글을 읽는 매력도 있었고, 세상 물정 모르는 고등학생이 쓸 법한 반항심 넘치는 글들을 적는 맛도 있었다. 내가 나의 이름으로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짜릿한 일인지 SNS를 통해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전까지 익숙하지 않던 컴퓨터와도 빠르게 친해졌다. 댓글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때로는 토론하며 현실에서의 내가 느낄 수 없는 사회 속의 자아를 실감할 때도 있었다. 학교에서 형성해야 했을 사회성을 나는 온라인에서 체득했다. 단점도 없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내게는 숨통을 터주는 감사한 일이었다.




 그로부터 15년가량 지났다. 온라인 환경도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고, 인터넷을 활용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렇다. 40명 넘는 한 반에 두세 명이 겨우 갖고 있던 스마트폰은 전 국민의 것이 되었고, 전 세계 SNS 사용자는 2023년 기준으로 30억 명에 이른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주도하던 SNS 생태계도 조금은 달라졌다. 플랫폼의 종류도 다양해졌고, 글보다는 사진이나 영상 콘텐츠 기반이 더욱 인기를 끌게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마주하면 사진부터 찍고, 유행하는 챌린지에 동참하는 것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SNS를 열심히 이용한다. 출퇴근길 버스에서는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한 손으로는 휴대전화를 잡고 쉴 새 없이 스크롤을 하고, 별다른 할 일이 없을 때도 무의식적으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켜서 보게 된다. 엄지손가락만 까딱이며 열심히 화면을 내리다 보면 딱히 한 일도 없는데 시간이 금방 흐른다. 알고리즘은 또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인스타그램 쇼츠를 넘기다 보면 요리 레시피에 캠핑에 귀여운 강아지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연달아 등장해 시선을 끈다. ‘조금만 더 보다가 자야지’ 하며 누워있다가 몇 시간이 흘러 잠에 들 타이밍을 놓치고는 다음날 출근길에 힘들어하는 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그러나 처음 SNS를 접하고 열렬히 매달리던 때와 달리 그 시간이 공허하게 느껴질 때가 더 많아졌다. SNS 속 사람들의 모습은 대부분 행복해 보인다. 손바닥 만한 작은 액정 속에서 사람들은 비싼 레스토랑에서 파인 다이닝을 즐기고 바다가 보이는 휴양지에서 환하게 웃는다. 미모와 몸매를 자랑하고 새로 산 차와 시계와 집을 뽐낸다. 그런 모습을 보며 축하한다는 둥 부럽다는 둥의 댓글을 달지만 사실은 만원 버스에 몸을 욱여넣은 내 모습과 비교하며 우울해지고는 한다. 그들의 삶 역시 나름의 고단함이 있음을, 그들이 올리는 사진도 고단함 속에 아주 가끔 빛나는 순간이기에 포착한 것임을 머리로는 잘 안다. 그러나 내가 내 삶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큰 만큼 타인의 행복이 부러워 고개를 드는 삐딱함이 큰 것은 어쩔 수 없다.


 타인의 행복이 내게도 행복일 수 있으려면 얼마나 더 욕망에서 자유로워야 할까. 나의 갈망이 얼마나 더 충족되어야 할까. SNS에 캠핑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고는 좋아요가 몇 개나 눌리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모습에 약간의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내가 어느 한적한 곳에서 캠핑을 즐기고 있을 때 가족과 함께 다낭에서 한가로이 휴가를 즐기는 친구의 사진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면서도, SNS를 들여다보지 말고 그 순간의 감정과 감각을 만끽해야 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면서도 나는 휴대폰을 들어 타인의 삶을 엿본다. 우울만 부르는 관음을 이어가며 아무런 정서적 충족도 얻지 못한 채 매일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다니. 어쩜 이렇게 구질구질한 루틴인지.




 무언가를 갈망한다는 것은 지금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행복을 갈망한다. 늘 그래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SNS는 나의 행복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바삐 놀리는 손가락으로 넘나드는 수백 명의 일상과 내 삶을 비교하는데 현실에 대한 만족이 충분할 리 없다. 자아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기에 꾸준히 지쳤고 꾸준히 우울했다. 좋아요와 슬퍼요를 번갈아 클릭하는 동안 감정의 기복은 널을 뛰었고, 어느 한 정서에도 제대로 공감하지 못한 채 또다시 손가락을 움직여 화면을 아래로 내릴 뿐이었다. 타인의 감정을 스쳐 보낸 만큼 나의 감정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반복할수록 행복에서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내 삶이 단숨에 나아질 수 없으니 의식해서라도 SNS를 멀리하겠다고 결심했다. 잠깐씩 시간이 붕 뜰 때 손가락이 근질거리지만, 일부러 주변을 보고, 일부러 더 크게 숨을 쉬었다. SNS를 조금 덜 들여다보았더니, 더 행복해지지는 않아도 덜 불행할 수는 있었다. 사회적 자아를 길러준 SNS를 멀리하니, 현실에 발 디딘 내면적 자아가 흔들리지 않았다. SNS에 산재한 수백의 사람보다 일상에서 내가 마주하는 열 명 안팎의 사람들에게 집중하니 더 많은 경험과 더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무수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도 충분했다.


 물론 SNS를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못할 것 같다. 요즘은 안 하는 사람이 없다거나 주변 사람들의 근황을 알 수 있다던가 하는 핑계는 댈 필요도 없다. 나는 내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이따금씩 여행 사진도 올리고 일상이나 이슈에 대해 글을 쓸 거고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의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불만을 SNS에 투영하지는 않으려 노력하려 한다. 현실의 문제는 현실에서 극복하면 된다. 누군가의 행복을 나의 불행으로 받아들이는 미련한 짓은 그만할 때가 됐다. 누군가 내게 날리는 좋아요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주는 좋아요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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