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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Jul 27. 2022

사진의 힘을 믿어요.

인터뷰어 또트 / 포토 콩알




* 성균관대학교 포토저널리스트 신웅재 교수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직장인이 일반인의 개념이 된 지 수십 년이 지났다. 이런 흐름 속에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개인으로서 내딛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은 자신과 자신의 상황에 대한 상당한 사유를 필요로 하기에. 어느 곳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포토저널리스트라는 업은 꾸준한 작업으로 끊임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일이기에 어떤 순간들이 모여 이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요즘은 또 어떤 생각을 하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자 하시는지. 한 학기 동안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이런저런 호기심이 생겨났고, 아주 자연스럽게도 매주 쌓인 궁금증은 인터뷰라는 구체적인 물음으로 이어졌다.




 이번 학기 강의에서 나의 문제의식과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방법으로 사진보다 나은 게 있으면 얼마든지 그쪽 분야로 바꿀 수 있다는 얘기를 했어요. 다른 사진가들이 들으면 뭐라고 할 수도 있는 얘기인데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유학 갔을 시절 사진 역사 시간에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사진을 하기로 결심했으니 이제는 여러 방법 중 왜 사진을 하기로 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도구로서 밥 딜런은 기타를 잡은 거고, 헤밍웨이는 펜을 잡은 거고, 사진가들은 카메라를 들은 것이라고. 물론 저는 카메라가 제게 가장 적합한 도구라고 생각했죠.



그러면 교수님께서는 사진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식이어서
사진을 선택하신 걸까요?


 세상과 소통한다기보다는 세상을 직접 목격하고 사유할 수 있는 방식인 것 같아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최근에 느끼는 건데, 사진을 선택한 게 수집하고자 하는 욕망하고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사진은 그 순간을 내가 가지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순간들을 계속 쌓아놓을 수 있다는 게 무언가 모으는 걸 좋아하는 제 성격과 맞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늙는다는 건 교수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탈무드에 그런 얘기가 있더라고요.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그때부터 늙는다.” 굉장히 좋은 말 같아요. 이 말과 연관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늙는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왜라는 질문을 안 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게 틀릴 리 없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지금껏 생각해 온 대로 그냥 또 판단한다는 얘기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왜라는 질문을 안 하면 배우려고도 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부족 사회의 마을 원로처럼 오랜 시간 동안 경험과 데이터가 쌓여 지혜를 가지고 판단을 하는 것과는 다른 얘기예요. 오히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배우려고 하고, 더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꼰대보다 더 위험한 꼰대가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얘기를 했을 때, “그거 아니야.”라고 끝내버린다든지 아니면 “그건 그거지.”라고 판단 자체를 안 하는 거죠. 이러면 거기서 더 나아갈 수가 없는 거예요.



대학시절을 비추어 봤을 때,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실까요?


 정말 안타까운 게 점점 이 대학이라는 공간이 모든 면에서 너무 삭막해져 가는 것 같아요. 대학이라는 거는 그야말로 학문을 배우고 자신의 교양을 넓히고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인식의 폭을 넓혀야 되는 순간인데 요즘은 입학하자마자 학생들이 취업 모드로 들어간다더라고요.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조금이라도 전공 외 다양한 지식과 예술에 대한 경험 및 체험을 넘치도록 흡수하는, 말 그대로 스펀지가 되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학시절의 이런 시간들을 통해 관심사나 취미를 개발하지 못하면 삶이 정말 피폐해지거든요. 좀 슬퍼지는 거죠. 제 동년배들 중에도 취미 없는 사람이 되게 많아요. 이렇게 된 데에는 취미를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부족했던 것도 있지만 개발을 스스로 안 한 이유도 있거든요. 일단 그렇게 되면 영화나 전시 같은 것들을 보러 갈 생각도 잘 안 하게 되고, 보러 가더라도 느끼는 게 그리 크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스펀지가 되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어쨌건 자기가 스스로 판단하지 않으면 나중에 바보가 돼요. 언론사가 하는 얘기가 자기가 스스로 생각한 거라고 착각을 할 수도 있고 요즘엔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이 돼버려서 더 무서워졌어요. 강의 시간에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걸 계속 의심해 봐야 해요. 여러분들이 생각한 게 자기 스스로의 생각이 아닐 수도 있거든요. 내가 어떤 스펀지로써 지식과 경험을 흡수해서 나의 레퍼런스를 쌓지 않으면 그건 어딘가의 데이터베이스로 인해 만들어진 레퍼런스가 돼요. 그런데 그게 내가 직접 쌓은 레퍼런스라고 착각하게 되죠.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것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거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처럼요.


 그리고 일기를 쓸 것을 추천해요.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는 나랑 대화를 하기 위해서예요.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는 사실 알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누구지? 여기는 어딘가?” 이런 소리를 하게 되기도 하죠. (웃음) 일기라는 어떤 글쓰기의 행위를 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어요. 어느 순간에 이 손이 그냥 움직일 때가. 그러면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하고는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그러니까 그런 건 항상 남겨 놓아야 해요. 이렇게 일기를 쓺으로써 스스로와 대화하고 또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깨닫는 지점도 생기니까요.




12년간 서울 도시 풍경에 대한 작업해오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작업이었나요?


 주로 옛날 아파트들 그리고 재개발돼서 허물어지기 시작한 동네들을 쭉 다녔어요. 처음 시작하게 된 건 사진을 막 시작했을 무렵, 용산 참사 1주기 때였어요. 처음이라 쭈뼛쭈뼛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저는 당시 투쟁의 현장보다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 군락에서 보이는 오래된 집들과 이미 철거가 시작된 집들이었어요.


 제가 동부이촌동에서 태어나서 자랐어요. 지금의 이촌역 너머에 판자촌이 있었고, 어른들이 그 근처로는 다니지 말라고 하셨던 어렸을 때의 기억이 있는데, 용산 재개발 지역이 바로 그 판자촌 지역이더라고요. 그래서 그 지역을 보고 난 이후에 남아 있는 것들, 없어졌거나 없어질 것들이 보여주는 것들을 기록하는 작업과 이 서울은 도대체 왜 이렇게 폭력적, 일방적으로 증식을 하는가, 그 원동력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작업 두 개가 동시에 진행됐어요. 그렇게 사진 기록을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12년에 달했네요.


 그런데 9, 10년째 됐을 때부터 내가 이 작업을 왜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점점 커졌어요.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사회학적,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해석한 작가들의 발표가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나는 이걸 왜 찍고 있는가, 나의 작업이 그들의 작업과 뭐가 다른가, 나는 무엇을 놓치고 못 보고 있는가란 지점에 대해 계속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가 몇 달 전에 제가 태어나서 자란 이촌동 아파트가 리모델링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의 허가를 받아 사진 기록 작업을 진행했죠. 그 아파트를 찍고 나니까 제가 지금껏 이걸 왜 찍고 있었는지가 정리되더라고요. 현재는 간략히 정리해서 작업 일지를 쓰고 있는데 결국에는 지난 12년간 나는 나의 집, 나의 가족을 계속 추억하고 쫓아가는 작업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2년간 길을 잃은 채, 혹은 집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삭막해져 가는 도시 탓을 하며 방황을 한 셈이죠.





사진 찍을 때 왜 그리고 무엇을 찍는지를 제일 많이 고려하신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건 사진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중요한 것 같아요. 원초적으로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본인만의 생각이 없으면 삶 자체가 너무나 공허해지잖아요.


 사진은 굉장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매체예요. 125분의 1초, 500분의 1초와 같이 아주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고 영원히 그 순간을 기록할 수 있잖아요.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사진이 곧이곧대로 사실이라고 읽힐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굉장히 위험한 거죠. 증거를 제시하라고 할 때 사진 한 장이면 다 해결되잖아요. 그만큼 사진은 쉽게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잘 믿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이거를 왜 찍는가’에 대한 확고한 기반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타인의 삶을 왜곡하거나 그 사진을 보는 사람이 어떤 현실에 대해 오해하게 되는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거든요. 더 나아가서 그런 사진을 찍는 이유에 대한 깊은 물음이 없으면 자신이 하는 일을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면서 거짓말을 하게 되기도 쉽고요. 그래서 끊임없이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거는 내가 이걸 왜 찍는가에 대해 스스로 납득될 정도가 돼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이걸 왜 찍었느냐 했을 때 아무 말도 못 하게 돼요.




 사진은 못 찍으면 그냥 못 찍은 거예요. 그걸 제가 언제 깨달았냐면, 2011년 뉴욕에서였어요. 운 좋게 빈 라덴을 사살했다고 발표한 5월, 테러가 일어난 그라운드 제로에서 수천 명이 미국 국가를 부르고 성조기를 휘날리던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했어요. 그로부터 사흘 뒤였나, 오바마 전 대통령이 그라운드 제로에 9/11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러 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기자증도 없어서 추모식에는 당연히 갈 수 없었지만, 추모식 후에 오바마 전 대통령이 차로 지나가면서 시민들에게 손이라도 흔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 군중들 사이에서 3시간을 기다렸어요. 그러다 운 좋게 코너에 자리를 잘 잡아서 제 앞으로 오바마 전 대통령이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차와 경호차들이 오고 있었죠. 첫차가 지나가고, 두 번째 차가 지나갔는데, 순간 든 생각은 경호 문제도 있고 하니 창문은 당연히 안 열겠다 싶더라고요. 지나간 차들이나 뒤에 오는 차들의 창문도 올라가 있었고요.


 그래서 차라리 군중들의 모습을 찍는 게 좋겠다 싶어서 뒤로 돌아 사람들을 찍었어요. 그런데 그 찰나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확 돌아보니까 창문에 오바마 전 대통령이 손을 흔드는 게 얼비치더라고요. 물론 차는 바로 지나갔고요. 그 순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거예요. ‘세 시간을 버텼고, 바로 내 앞으로 오바마가 지나갔는데! 그 1초를 못 참아서 사진을 못 찍었다니!’ 하면서 말이에요. 매우 부끄러운 얘긴데, 그 순간 카메라를 번쩍 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칠 뻔했어요. 그때 딱 깨달았죠. “아, 사진에서는 한순간을 놓치면 그대로 끝이구나. 화를 내봤자 그 순간은 돌아오지 않을 거고, 이런 일에 일일이 화냈다가는 카메라가 남아나지 않겠구나.”라고요. 물론 화를 가라앉히느라 한 30분 동안 혼자 씩씩거렸던 것 같아요.



어떤 포토저널리스트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이런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사진의 힘을 믿고 사진에 매진한 사람’ 일단 그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무슨 유진 스미스 같은 사람이 될 거예요.”라는 말은 할 수도 없고 하기도 싫어요. 다만 사람들이 제 사진을 봤을 때 뭔가 조금이라도 어떤 감정의 교감이 일어난다거나 특히 어떤 이슈에 대해 얘기를 할 때 제 사진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되는 지점이 생기면 좋겠어요. 더 나아가서는 유진 스미스가 얘기한 것처럼 사유나 행동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는 사진을 남길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두가 정답이라는 길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갖은 걱정과 불안한 시선이 교차하는 분위기 속에서 
세상에 전하고픈 메시지를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담담히 그리고 진득이 전한  이야기가, 사회에 나가기 직전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있는 나에게 왠지 모를 위로가 되어줬다.

하고 싶은 일을 해봐도 괜찮다, 지금 고민하는 시간들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며 생각한 대로 살아가도 괜찮다고 토닥이는  같았다. 이런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삶을 무탈히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렇게도 위안이   있을까.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움직임들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경계에 애매하게 걸터앉은 사람의 시선으로 전한  이야기가 
시작과 , 끝과 시작  어딘가에서 혼란스러운 모든 이들에게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되길 바라며.



인터뷰어 또트 / 포토그래퍼 콩알

2022. 06. 24. 포토저널리스트 신웅재 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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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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