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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Sep 28. 2022

업을 쌓고, 업을 없애야 하니까.

인터뷰어 지연 / 포토 은영



*성균관대학교 학생 이재호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매서운 바람이 불던 겨울날, 후광이 비치던 재호님. 

성불회(불교 동아리)를 하여서인지 그 누구보다도 평온한 얼굴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셨다.

스스로 마주한 업에 대해 하나둘씩 풀어내는 법사 같은 모습에 점점 오묘한 세계로 빠져들었다.





최근에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9시에 도서관 와서 보통 밤 10시 반, 11시까지 하고 가요. 더 해야 하는데 못 하겠어요. 머리가 띵해져요. 점심 저녁은 학교에서 먹어요. 경영관 갈 때도 있고 도시락 싸올 때도 있고 짜장면 시켜먹을 때도 있고. 확실한 건 학교 밖으론 잘 안 나가요.


    조바심 나고 답답할 때는 있죠. 저는 재수도 해서 늦기도 했고, 친구들도 취직했거나 취직하는 나이니까. 물론 그 친구들도 다 열심히 한 결과이겠지만, 또 원래 안 좋은 소식은 잠잠하고 좋은 소식만 들리는 거라지만, 조바심은 나죠. 될지 안 될지 모르니까 답답한 것도 있고. 근데 다섯 달 접어드니까 이제는 별 생각이 없어지는 거 같아요.






외무 영사직을 준비하고자 했던 계기가 있으신가요?


    외교 공관에서 일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예전에 남미 여행할 때,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넘어가려면 비자를 받아야 했어요. 그래서 페루에 있는 볼리비아 대사관에 갔는데, 서류가 하나 빠졌다고 쫓겨났어요. 리뷰에서는 그 서류가 꼭 필요한 건 아니라 했는데, 거기 직원이 완전 소리 지르면서 쫓아냈어요. 인쇄할 데도 마땅치 않아서 급한 대로 수기로 작성해서 그다음 날 다시 갔어요. 그날 가서는 진짜 영사를 만났는데 정말 푸근하게 생겼어요. 양복 차림에 볼리비아 띠를 두르고는 우리 보고 들어오래요. 우리가 손으로 작성한 거랑 다른 서류를 주니까, 기다리래요. 외교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그러더니 일단 악수부터 하재요. 그래서 일단 악수했어요. 이제 서류를 달래요. 서류를 받더니 계속 웃어요. 그러더니 어제 우리를 쫓아냈던 직원한테 서류를 주면서 비자 만들어오라고 하더라고요. 직원이 비자 만드는 동안 우리한테 스페인어 할 줄 아냐 묻길래, 진짜 조금 한다고 하니까. ‘음 별로 안 좋은데’ 하면서 스페인어 테스트를 하겠대요. 그리고 ‘Corea de Norte?’ 이러는 거예요. 북한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Nonono Corea del Sur’, 남한 사람이다 하니까, ‘퍼어펙트’라면서, 그게 너네가 알아야 할 스페인어의 전부라면서. 그리고 비자가 오더라고요. 여권에 붙여서 사인하고 도장 찍고 여권을 건네주길래 받으려고 하니까, 또 외교의 기본을 잊었대요. 그래서 또 악수하고 포옹까지 받고 왔어요. 그 이후에 볼리비아 여행이 환상적인 건 아니었는데, 여전히 볼리비아라는 나라가 좋게 기억되고 있는 거 보면 그 사람의 힘이 큰 거 같아요. 그래서 나도 우리나라 대표로서 외국인들한테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주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진로를 찾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이 있나요?


    시험 준비를 늦게 시작해서 아쉽긴 하죠. 2학년 여름방학 때 남미를 다녀왔는데, 그때도 외무 쪽으로 생각은 들었거든요. 근데 육사 기억이 있어서 무섭더라고요. 제가 육사 다녔거든요. 고등학교 때는 육사 가면 잘할 수 있을 거 같고, 주변에서도 어울린다 해서 들어갔는데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만두고 다시 수능 봤죠. 그런 기억이 있으니까 제 결정에 대한 확신이 안 들더라고요. 교환학생을 갔던 이유도, 비슷한 상황에 나를 내던져서 테스트를 해보려고 간 거예요. 그래서 여러 나라들 중에서 일부러 익숙하지 않은 나라, 살아보지 않으면 모를 나라로 골라서 갔었어요. 힘들었는데 재밌었어요. 터키어 조금씩 배우면서 사람들이랑 재밌게 놀았고, 한국 이야기해주러 돌아다니고. 그러다 보니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돌아와서 조금 늦게 공부를 시작했어요.




불교 동아리를 하시는 중이잖아요. 불교는 어떻게 접하신 건가요?


    원래 불교 집안에서 컸어요. 그래서 거부감이 적고 마음이 편안해서 불교에 끌리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절과 어린이 법회에 다녔고 부모님 손에 이끌려서 반쯤 자발적으로 다녔거든요. 그러다 보니 익숙하고 익숙한 것에 편안하게 있고 그런 거죠. 이제 자라면서 사고방식과 틀이 어디 가지 않잖아요. 교회 다니는 사람이 힘들 때 하나님 아버지 찾는 것처럼 저도 힘들 때 찾는 거예요. 결국에는 불교의 방식으로 생각의 틀이 굳어진 거죠.




그럼 불교에서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나요?


    불교에서 말하는 건 결국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거예요. 나의 업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업을 쌓고, 그 업을 끊기 위해 노력하고. 예를 들어서 누가 나한테 나쁘게 대하면 내가 그 업을 끊어야죠. 그 업이 반복되지 않도록. 업이라는 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하는 논리이기도 해요. 마냥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는 힘들잖아요. 어떻게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어요. 그런데 내 업이니까, 업을 쌓고 업을 없애는 방향으로 살자는 거죠.





마지막으로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것이 있나요?

    내 인생에 내가 가장 특별하죠.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잖아요. 내 삶에서 내가 기준이 되어야지. 내 삶에 있어서 다른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이기적으로 살라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의 기준이 내가 될 필요는 있어요. 어떤 선택을 해야 내가 더 행복할지. 그게 물질적이든 심적이든 다 포함해서 내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 사실 내 인생에 있어서 나는 아주 특별한 하나밖에 없는 주인공인 거예요.


    그리고 요새 그런 생각도 해요. 인생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을 텐데 그 사이에는 지금처럼 공부하거나 일하거나 일상적인 부분이 존재하는 거죠. 대신 그 안에서 또 소소한 행복을 찾아야 하는 것 같아요. (웃음)





아침마다 동아리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차를 한 잔 마시는 것도 행복이라고 말하던 재호님. 
그 후로부터 업을 쌓고 없애는 일상에서 종종 재호님의 인터뷰가 떠오르곤 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까.

지난 인터뷰 관련으로 재호님께 연락을 드렸다. 
재호님은 인터뷰를 다시 읽어 보시고는 나에게 다음의 말을 꼭 덧붙여 달라고 부탁하셨다.



“현재 그는 국내 기업에서 남미에 방탄 헬멧과 방탄복 파는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우스갯소리처럼 들렸지만, 이내 그렇게 말한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여전히 업을 쌓고 없애는 과정에 살고 있다고. 그리고 이제는 과거의 업과는 다른 업을 조금씩 쌓아가는 중이라고. 

그러니 그 속에서 좌절이 아닌 긍정으로, 삶의 틈새에 소소함을 함께 느껴보자고 말이다.





인터뷰어 지연 / 포토그래퍼 은영

2019.12.09 이재호 님 인터뷰 (edited by 인터뷰어 졔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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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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