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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Oct 21. 2022

11월 9일

인터뷰어 은빛 / 포토 혜리



* 성균관대학교 교통 정리원 박건응님과의 인터뷰입니다.


건응님이어서, 좋았다.
교통 정리를 하시며 서 계시던 모습에 나는 틈틈이 정이 들었고 자연스레 인터뷰 요청을 드렸다.
응하기 조심스러울 요청도, 내 서툰 마음도 선뜻 받아주셨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물기가 들어찬 농구장 귀퉁이에서 건응님을 뵈었다. 처음 제대로 눈을 바라보며 참 많은 이야기를 묻고 들었다. 우산을 잡은 손이 발갛게 시리도록 대화를 나눴다.

그날 11월 9일엔 서늘한 가을비가 내렸지만, 봄비 같은 포근함이 있었다.



            학생들을 보며

  우리 성대 학생들, 정말 순수하고 착해요. 난 학교에 착한 학생들만 들어오는 줄 알았어. 근데 한편으론 참 힘들어 보여요. 셔틀버스를 내려서 걸어 올라가는 자체를 힘들어하더라고. 항상 그게 마음에 걸렸어요. 서울 대공원 가면 코끼리 열차라고 있죠. 이런 것을 한 5명씩 정문에서부터 수선관까지 타고 올라가는 생각도 했어요. (웃음) 혼자서는 이렇게 학생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해 보는데, 실행이 잘 안 되더라고.


  7-8년 정도를 근무하다 보니 학생들 걸어가는 것만 봐도 오늘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네, 다 알아요. 표정만 봐도 알아요. 시험을 못 보면 축 쳐져서 터덜터덜 올라가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참 아파. 구급차 실려가는 학생들도 많아요.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있어요. 이런 일들을 보면 학생들을 신경 안 쓸 수가 없어. 그래도 시간이 흘러 어떤 분은 졸업하고 와서 이런 말을 해줘요. 어디 취업했다고. 그럼 난 너무 좋은 거야. 내가 먼저 물어볼 수가 없거든. 인정 안 받아도 되니까 최선만 다해요. 성적이나 뭘 바라지 말고. 내 능력을 모두 다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그럼 결국 언젠간 인정을 받게 돼 있어요.


  우리 아들이 1.4kg으로 왜소하게 태어났어요. 근데 지금 고3인데 키가 170이 넘어. 처음엔 우려도 많았고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포기를 하면 안 되잖아. 부모는 자식한테 뭘 줘도 안 아까워. 젊었을 땐 모든 것들이 날 위해서 하는 일이었지만, 자식을 낳게 되는 순간부터는 전부 자식을 위한 일이 되는 거야. 그래서 난 아들이 뭐라고 하면 다 받아줘요. 애들도 애들 세계가 있잖아요. 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가족이라는 게 되게 중요한 거야. 지금은 싫다가도 나중에 커서 돌아보면 다시 찾게 되는 게 가족이고. 그게 정이에요.


자녀 분에게 바라는 점이 있으세요?

 나는 자식이 건강하기만 했으면 좋겠어요. 몸이 좋으면 공부든 일이든 다 해낼 수가 있는 거야. 나는 아들한테 항상 얘기해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건강이 최고다, 이 사회는 내가 건강만 하면 무엇이든 되게 돼 있다. 그리고 항상 웃는 거. 복이라는 게 사실 되게 멍청한 놈이에요. 웃는 사람들을 딱 알아보고 따라붙는 거야. 그러니까, 암만 힘들어도 웃으세요. 와이프가 나한테 뭐라고 해도 난 항상 웃어요. (웃음) 많이 웃어야 해요.


            세상살이

  저는 병원 근무만 26년을 해왔어요. 재활 쪽에 근무했는데 선수들 팀 닥터로도 있었던 사람이에요. 근무할 때는 스스로 기간을 정해요. 나는 이 사람을 5일 안에 좋아지게 만들 수 있어, 그럼 하는 거야. 더 이상 안 아프기 위해 병원을 찾는 건데 또 다치고 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저는 방문하는 환자들한테 이렇게 말해요. 안 아프게 만들어줄 테니까 다시는 오지 말라고. 가능한 범위에서 내 최대한의 능력을 보여주는 거야.


  내 소원이 뭔지 아세요? 여기 학교 보건소에 정형외과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 학생들이 길을 오르다 보면 발목을 참 많이 다치는데, 이걸 안 다치게 하는 방법이 있어요. 알파벳을 A부터 Z까지 발목으로 매일 3번씩 그려주면 복숭아뼈 주변이 금세 단단해져요. 한 달만 해봐요. 근데 한 번에 하려고 하면 쉽지 않을 거예요. 조금씩, 조금씩 반복하면서 바꿔 나가는 거지. 사실 이 세상이 그래요. 하루하루가 달라져. 그 속도에 따라가다 보면 금방 지칠 거예요. 근데, 너무 신경 쓰지 마요. 나는 우리 아들한테도 항상 그래요. 일단 천천히 해봐라. 능력을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느려도 좋으니까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해보는 거예요.




나는 늦가을이 슬픈 사람이어서 지는 것들을 잘 담아두지 못한다. 허나 11월 9일을 떠올리면 참 좋아서 코끝이 찡해온다. 그 많은 늦가을을 합쳐도 이상하리만치 또릿하고 좋은 날이다.

11월 9일, 나는 들었다기보단 배웠다.
작게는 묻고 듣는 법을, 크게는 사람이 사람에게 쥐여줄 수 있는 따듯함을 배웠다.


한 해가 지나 다시 가을이다.

나는 새로운 강의실 위치를 몸에 적응시키느라 애쓰고 있다. 건응님은 얼마 전 시설팀으로 옮겨 더욱 바빠졌다 하신다. 서로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줄 수 있는 인연이, 나는 참 감사하고 감사하다.


올해 가을, 따듯함을 넉넉히 쥐여 주며 살아가고 싶다. 서투른 마음이지만 사랑받았던 11월 9일처럼.




인터뷰어 은강 / 포토그래퍼 혜리

2021.11.09 박건응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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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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