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스꾸 Sep 13. 2023

나의 집을 찾아서

인터뷰어 아뵤 / 포토그래퍼 윤슬


* 민희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나를 들여다 보는 법



-전에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까 ‘내 안의 그릇을 바라보는 게 부족했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느끼게 된 이유가 있나요?


 예전에는 활동을 정말 많이 했어요. 6개월 동안 30개 활동을 했는데, 그때는 스스로가 진짜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걸 내가 해낼 수 있다니. 나 정말 능력이 엄청나구나’ 했는데. 막상 뒤를 돌아보니까 마음이 허한 거예요. 또다시 활동 30개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스트레스 받고, 제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남의 시선에 맞추려고 하는 것도 있었고.


 그때 스스로를 잘 못 돌봐왔다는 걸 크게 느꼈어요. 그래서 내 그릇을 키워야겠다 생각했어요. 내 줏대가 단단하지 않아서 흔들리면 뭘 해도 완벽하지 않겠구나 싶어서. 그때부터 활동을 확 줄이고 저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어요. 책도 읽고, 여가시간에 따릉이 타고 한강 가서 혼자 피크닉하고 노을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밥도 먹고 커피 마시고. 끌리는 대로 하고 좋아하는 장소는 가고 싶은 만큼 가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까, 너무 마음이 좋더라고요.





-내면의 그릇이 크다는 건 어떤 모습일까요?


 감정에 대해서 성숙하면 모든 것에 다 성숙하다고 생각해요. 분노를 느껴도 그 분노를 어떻게 타인에게 잘 설득을 하면서 드러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해요. 기쁨을 느껴도 저 혼자 기뻐서 남한테 “야 이거 해봐. 재밌어.” 하지 않고 “나 이러이러해서 재밌었는데 너도 한번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렇게 표현하려고 하고. 어떻게 다른 사람한테 좋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내 것을 챙기면서 타인도 챙길 수 있다면, 그게 아마 그릇이 큰 게 아닐까 싶어요. 이건 나이가 들어서도 좀 힘들 것 같은데, 그냥 계속 노력하고 추구하려고 해요. 예전에는 외부에서 무언가 자극이 들어오면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까 다 싫증이 나고 짜증도 났었거든요. 요즘에는 비슷한 정도의 싫증과 짜증이 생겨도 더 부드럽게 표출하려고 해요.





-계획을 세우고 일을 하는 편인가요?


 새로운 도전을 할 때는 계획을 안 해요. 느낌 가는 대로 그냥 다 해보자, 해요. 대신 몇 번 경험해봤던 상황은 이제 계획을 세우죠. 계속 똑같이 하면 진전이 없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면 새로운 경험을 할 때는 머리를 그냥 비워요. 생각을 해도 깊게는 안 하고, 그때그때 상황을 보고 보완할 수 있는 게 없을까를 찾아봐요.


 -일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없나요?


 생각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어요. 생각이 생각을 낳고 걱정이 걱정을 낳는다고도 하잖아요. 통계적으로 걱정의 98%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증명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걱정 중에서 진짜로 발생하는 건 단 1~2%래요. 거의 다 허상인 거죠. 그래서 더 걱정을 안 하고 행동부터 해요. 그리고 생각하는 데에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바로 행동을 하는 게 더 효율적이잖아요.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두 가지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내 능력이 부족하든지, 아니면 상황이 안 되든지. 그런데 능력이 부족하면 능력을 키우면 되고, 상황이 안 되면 시간에 맡기면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안 될 때는 운명이 아닌가보다, 생각해요.
 



기억



 -스웨덴으로 교환학생 가셨을 때, 왕복 6시간 반 걸려서 노을을 보러 가셨다고요. 그때의 여정을 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어요?


 발트 지역에 처음 왔으니까, 발트해를 잘 볼 수 있는 장소가 어딜까 해서 구글 맵을 펼쳤어요. 스웨덴 스톡홀름의 제일 끝자락에 섬이 기다랗게 하나 있는데, 주변에 다른 섬도 없고 그냥 깔끔하게 물에 둘러싸여 있었어요. ‘아, 여기 가서 노을 보면 진짜 예쁘겠다.’ 생각했어요.


 여정을 찾아봤는데 섬이다 보니까 배 시간에 맞춰서 이동을 해야 했어요. 그때가 오전 9시 반이었는데, 11시에 출발을 해야 그 페리를 탈 수 있다는 거예요. 바로 ‘가자,’ 하고 샌드위치랑 물을 급하게 싸서 무작정 출발을 했죠. 기숙사에서 나와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서 열차를 타고, 열차에서 기차로 갈아타고, 기차에서 내려서는 또 버스를 타고 페리를 타러 가야 했어요. 솔직히 힘들었어요. 한국처럼 환승 시간이 좁은 것도 아니라 30분 정도로 길었거든요. 괜히 왔나 싶기도 하고.


 그렇게 페리를 탔는데, 탁 트인 바다가 보이니까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섬 도착해서는 벤치에 앉아서 싸 온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노을을 봤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스웨덴은 겨울에는 해가 10시에 떴다가 2시에 져서 노을이 지고 있었어요. 난생 처음 보는 보랏빛 노을을 봤어요. 온 세상이 보랏빛이었어요. 정말 예쁘다, 하고 보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렇게 노을을 보러 오기까지의 과정들에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막 울었어요.


 집에 돌아가는 배에서는 엄청 밝고 큰 달을 봤어요. 달이 정말 커다랗게 수평선 바로 위에 떠 있었어요. 주변에는 빛이 하나도 없고, 하늘에는 은하수가 보였어요. 너무 선명하고 예뻤어요.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에요.




인생의 로드맵



 -‘인생의 로드맵’이 뭔가요?

 

 해외에 정착할 준비를 하려고 해요. 우선 휴학하고 해외에서 인턴을 하면서 돈을 벌 생각이에요. 해외 취업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 전에 나에게 적합한 나라가 어딘지 조금 탐색하는 과정도 가지고 싶어요.

 
 항상 해외에 대한 열망이 컸어요. 어렸을 때부터 20년 조금 안 되는 삶을 해외에서 보냈는데,  중국에서 19년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그곳이 정말 내 집이라고 느낀 적은 없었고, 한국에서 한 3년 생활하면서도 집처럼 편안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교환학생으로 스웨덴을 갔는데, 딱 도착하자마자 ‘나의 공간이다.’ 생각했어요. 몸을 공기에 맡긴 것처럼 너무 편안하더라고요. 서양 문화랑 조금 잘 맞는 것 같아서, 아예 그쪽 나라로 나가려고 해요. ‘내 집을 찾으러 가야겠다.’

 
 여전히 제 자신을 탐험가라고 칭해요. 어딘가에 정착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되게 불안하고 조급해져요. 제가 가진 에너지가 내면에서만 겉도는 느낌이 강해서요. 사람들하고 소통하고, 방랑하고, 돌아다니는 게 제 적성에 맞더라고요. 방랑자 생활을 죽기 전까지 할 것 같아요.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인터뷰어 아뵤 / 포토그래퍼 윤슬

2023.09.13. 민희 님 인터뷰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휴스꾸 인스타그램

-휴스꾸 페이스북 페이지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게릴라 인터뷰: 우리들의 여모조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