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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Aug 31. 2022

기억을 그린 음악

휴스꾸 8월 특집 인터뷰 3 - 셀프 인터뷰 (1)




*휴스꾸 운영진의 음악을 매개로 한 8월의 특집 인터뷰, <기억을 그린 음악>입니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의 의미는 외부에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맥락 속에서 생성됩니다. 그렇기에 인간 삶을 과학의 언어, 즉 어떤 이론을 통해 3인칭적으로 재단할 수는 없는 것이며, 그곳엔 단지 1인칭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이야기가 편재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저희 휴스꾸는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의 모토 아래 인터뷰를 진행해왔었습니다. 


 이번 특집은 인터뷰어가 질문을 준비하고 그에 따른 인터뷰이의 대답으로 진행되었던 여태까지와는 달리, 저희가 저희 스스로를 인터뷰하는 셀프 인터뷰 형식입니다. ‘음악과 기억’이라는 키워드만 제시한 채, 그에 따른 질문의 생성과 대답 모두 자율에 맡김으로써 인터뷰의 시작과 끝 모두에 저희 개개인의 삶이 녹아들 수 있게끔 인터뷰를 구성해보았습니다. 첨부된 음악을 들으시면서, 비록 짧은 내용이지만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기억을 그린 음악, 첫 번째.

<J.S. Bach: Mass In B Minor, BWV 232 / Kyrie – Kyrie eleison (I)> - Karl richter & Munchener-Bach Orchester, 1961



음악을 통해 삶이 바뀔 수 있을까?



필재 |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은 저를 한없이 슬프게 만듭니다. 우리는 분명 어디론가 힘차게 나아가려고 하지만, 그 길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죠. 그러나 바흐의 음악은 시간 앞에 바스러지는 한 명의 나약한 인간인 저로 하여금 감히 무한을 상상하게끔 만듭니다. 저 이전의 지나간 억겁의 과거가 있었고, 이후에 지나갈 억겁의 미래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사이를 매개하는 우리네의 삶은 그래서 숭고한 것이며, 올바르게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는 깨달음. 그래서 주어진 삶이 유한할지라도 결코 허투루 살지 않을 것이며, 나 자신의 영혼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모든 타자의 영혼을 관찰하고 보살필 것이라는 다짐.


 저는 클래식 전문가도 아니고, 기독교인도 아닙니다. 단지 독서실 구석에 앉아서 음악을 감상하던 2020년 3월의 제가, 정말 음악 하나로 삶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기이한 일을 겪게 되었을 뿐입니다. 물론 변화의 실마리는 이미 제 안에 존재했겠지만, 그 씨앗의 발아는 저 12분짜리 미사곡이 가능케 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기억을 그린 음악, 두 번째.

<IDK You Yet> - Alexander23



자꾸만 선명해지는 기억은?


은빛 | 언젠가 꿈을 꾼 적이 있어요. 


 어떤 연인과 사랑하는 꿈이었는데, 깨고 보니 그 얼굴이 희미한 거예요. 보통 꿈에서 깨면 잔상이라도 남잖아요. 어슴푸레한 형태라든가, 분위기라든가. 근데 그냥 그리운 감정만 남아 있더라고요. 얼마나 오래 사랑했다고. 노래를 주로 멜로디로만 즐겨서 가사를 잘 몰라요. 노래와 듣는 상황을 내 식대로 짝지어주는 편이라. 가사는 분위기를 해칠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IDK you yet도 한동안 내용을 모르며 들었어요. 근데 첫 소절이 언뜻 들리더라고요.


“만난 적 없는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을까.

난 지금 네가 필요한데 너를 몰라.”

 

무엇이고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새롭게 보이기도 하잖아요. 노래를 들을수록 그리운 대상이 연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사람을 감정으로 기억하는 버릇이 있어요. 그래서 누군가를 한번 마음에 들이면 좀 오래 가요.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할 때의 내 감정까지도 좋으니까. 근데 스스로를 기억하는 감정은 기가 찰 정도로 복합적이어서, 늘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까먹고 말아요.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난데... 그래도 그리움만은 고정값이고 싶어요. 우습다가도 그립고, 싫다가도 그립고. 제대로 만난 적 없는 나한테 혼잣말처럼 노래를 틀어놔요. 듣고 있음 이상하게 정말 혼잣말 같고 푹 편안해져요.







� 기억을 그린 음악, 세 번째.

<Tommy's Party> - Peach Pit



오늘을 살아가고 있나요?


또트 | 이제까지의 저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크게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는 와중에도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머물렀던 순간이 정말 많거든요. 과거를 단순히 그리워하거나 후회하는 일이 많았고 미래를 계획하여 대비하기보단 그저 걱정하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걱정되는 일들은 지금 제가 당장 어찌할 수 없는 일인데도 말이에요.


 이런 사실들을 이제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에도 오늘을 살아가기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 집중하려 안간힘을 쓰다가도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걱정과 후회의 파도가 순식간에 밀려 들어오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도 모르게 현재에 몰입하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주로 음악을 들을 땐데요. 저에게 그런 순간을 가장 많이 선사해 준 곡이 peach pit의 Tommy’s party예요. 북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첫 소절을 듣고 순간 빠져들었어요. 그 당시에는 목소리와 밴드 반주가 좋아서 그랬나 싶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이런 이유에서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노래를 듣다 보면 그 어떤 잡생각 없이 지금 현재에만 내 온 신경을 곤두세울 수 있어서요. 


 이 곡을 듣는 순간만큼은 제 주변에 존재하는 현재의 것들을 온전히 음미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하고요. 이렇게 음악은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지금’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쥐여주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그 당시를 추억하며 잠시나마 그때의 기억으로 깊이 빠져들 수 있는 것도 음악의 이런 힘 때문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요.







<휴스꾸 운영진들의 이름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humansofskku/8





휴스꾸 8월의 세 번째 특집 인터뷰 (1) : <기억을 그린 음악>

2022. 08. 휴스꾸 운영진 필재, 은빛, 또트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휴스꾸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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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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