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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Sep 07. 2022

기억을 그린 음악, 두 번째 이야기

휴스꾸 8월 특집 인터뷰 3 - 셀프 인터뷰 (2)




*휴스꾸 운영진의 음악을 매개로 한 8월의 특집 인터뷰, <기억을 그린 음악>입니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의 의미는 외부에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맥락 속에서 생성됩니다. 그렇기에 인간 삶을 과학의 언어, 즉 어떤 이론을 통해 3인칭적으로 재단할 수는 없는 것이며, 그곳엔 단지 1인칭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이야기가 편재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저희 휴스꾸는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의 모토 아래 인터뷰를 진행해왔었습니다. 


 이번 특집은 인터뷰어가 질문을 준비하고 그에 따른 인터뷰이의 대답으로 진행되었던 여태까지와는 달리, 저희가 저희 스스로를 인터뷰하는 셀프 인터뷰 형식입니다. ‘음악과 기억’이라는 키워드만 제시한 채, 그에 따른 질문의 생성과 대답 모두 자율에 맡김으로써 인터뷰의 시작과 끝 모두에 저희 개개인의 삶이 녹아들 수 있게끔 인터뷰를 구성해보았습니다. 첨부된 음악을 들으시면서, 비록 짧은 내용이지만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기억을 그린 음악, 네 번째.

<Shinjuku twilight> - eddie higgins trio



힘들 때 듣는 음악이 있나요?


펭귄 | 힘든 때가 있었습니다. 햇살이 그다지 따사롭게 느껴지지 않고, 꽃향기도 그리 향기롭게 느껴지지 않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흔하디 흔한 시간이었어요. 당시에는 이별노래들이 자주 차트에 올랐었던 것 같아요. 그 감정을 짓이기는 노래 가사들이 꽤 부담스러워, 가사가 없는 음악을 찾았습니다. 클래식은 괜스레 주제넘은 짓 같아 듣지 않았고, 재즈를 한 번 들어볼까 하고 듣기 시작했어요.


 재즈는 백지의 낙서 같은 음악이었습니다. 그림에는 문외한이지만, 재즈가 그림이라면 날 것의 낙서와 가장 비슷할 것 같아요. 재즈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숱한 이별노래들이 울부짖듯,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아도 되고, 감정을 짓이기지 않아도 돼요. 타인의 자랑을 듣지 않아도 되고, 구태여 설레지 않아도 됩니다. 꼭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대신 슬프고 싶으면 슬프고, 편안하고 싶으면 편안하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그저 백지를 걸어 다니는 선처럼 자유롭고, 즉흥적이에요. 그 자유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는 반대편에 있는 것 같아 위안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힘이 들 때면 습관적으로 재즈를 틀어요.







� 기억을 그린 음악, 다섯 번째.

<California Dreamin’> - The Mamas & Papas



좋아하는 음악이 있나요?


데이 |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의 구분을 확실하게 하는 편이에요. 음악도 그런 편이죠. 캘리포니아를 여행하며 이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가족과 함께했던 여행이라 차 안에서 부모님의 플레이리스트를 많이 들었었거든요. 그때에는 이 노래를 좋아하시는 부모님의 무한 반복 재생 때문에 이 노래에 지쳐 싫기까지 했어요. 그러다 최근에 종로 02 버스 안에서 이 노래를 듣게 되었어요. 버스 안에는 저 혼자였고, 가만히 서 있는 버스 안에서 빗소리와 함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그 순간이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간이지만 긴 여운이 남아 집에 와서 중경삼림 ost를 여러 번 반복 재생했어요. 


 그러고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가지고 있는 나름의 뚜렷한 취향을 자부하던 제 모습들이 기억 속을 스쳐 지나갔거든요. 이렇게 순간에 의해 좋아하지 않던 것이 좋아하는 것이 되는데 말이죠. 그러면서 그 경계가 흐릿한 사람이 되고 싶어 졌어요. 또,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게 되는 일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도요.







� 기억을 그린 음악, 여섯 번째.

<should I stay or should I go> - The Clash



특별한 기억에 얽힌 음악은?


아뵤 | 1학년 여름방학에 처음으로 혼자 캐리어를 끌고 비행기를 타고 친오빠를 만나러 갔어요. 어린이 시절 이후로 오랜만에 둘이서 놀러 다녔어요. 온종일 차를 타고 달리고, 바다나 사막을 보면서 타코를 입 안 가득 넣고, 식도가 얼얼할 만큼 단 아이스크림이랑 도넛도 사 먹었어요.


 사실 오빠랑 노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난생처음이라는 기분까지 들어서, 묘하게 긴장이 되기도 했어요. 낯선 이국이기도 했고. 오빠가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었는데 방에 침대가 하나였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오빠가 침대를 저한테 양보하고, 그 앞에 비좁은 공간에 돗자리를 깔고 패딩을 덮고 잤어요. 미안해서 다음에는 내가 밑에서 자겠다고 하니까 고민도 안 하고 알겠다 하더라고요(웃음). 그렇게 자고 일어나서는 큰 접시에 아침을 만들어 먹고, 나가서 장을 보거나 헬스장에서 운동도 하고. 며칠을 그렇게 같이 지내니까 점점 옛날처럼 돌아가서 유치한 말장난도 하고,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시차 적응이 오랫동안 안 돼서 (오빠한테는 미안하지만) 차를 타고 돌아올 동안 잠들었다가, 밤에는 넷플릭스로 오빠가 알려준 ‘Stranger Things’를 봤어요. 거기 삽입된 노래 ‘Should I Stay or Should I Go’가 꼭 이따금씩 생각이 나요. 크고 하얀 침대 주위로 잡동사니가 어질러져 있던 오빠 방 모습이랑 같이.






<휴스꾸 운영진들의 이름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humansofskku/8





휴스꾸 8월의 세 번째 특집 인터뷰 (2) : <기억을 그린 음악>

2022. 08. 휴스꾸 운영진 펭귄, 데이, 아뵤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휴스꾸 인스타그램

-휴스꾸 페이스북 페이지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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