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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유 Oct 03. 2024

[7]

공기가 무겁다. 무섭도록 파란 하늘에 살갗이 곤두선다.

알 수 없는 어둑한 것이 시야를 방해한다. 정신이 혼미해서 흐리게 보이는 것인지, 흐리게 보여 정신이 혼미한지 알 수가 없다.


장례식장 앞에서 미니미 삼총사 중 한 명인 친구 주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2학기 기말고사 직전에 1주일 연애 후 이별의 아픔으로 동반입대를 했던 그 주인공이다.


"주호야, 나 들어가기가 힘들다. 발이 안 떨어진다. 무섭기도 하고. 희찬이 형 맞아? 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어."


서로 시간을 맞춰서 형에게 같이 가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형에게 먼저 다녀간 주호에게 이 모든 일이 그저 누군가가 기획한 연출이고 쇼이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주호는 장례식장에 형의 영정사진이 있었고 우리가 아는 형이 맞다고 했다. 이른 시간에 다녀가서 사람이 많지 않아 앉아 있기도 죄스러워 도망치듯 인사만 하고 나왔다고 한다.


주호는 지난 몇 년간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느라 연락이 뜸 했고 결국 몇 차례 낙방으로 시험을 포기했다. 그 후로는 사람 만나기를 꺼려했고 나 역시 이를 알기에 안부만 주고받을 뿐, 굳이 만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여름 복날, 유독 미니미 삼총사와 살뜰했던 형이었기에 주호에겐 비밀로 하고 형과 셋이서 복날에 백숙을 먹으려고 계획했다. 사전에 아무런 얘기도 없이 오랜만에 주호를 만나 차에 태우고 난 후에 형과 함께 셋이 모여 점심을 먹자고 얘기를 했다. 주호는 갑자기 얼굴이 파래지며 다음에 만나면 안 되냐고 재차 물었다. 괜찮다는 말로 주호를 안심시켰고 다행히 파래진 얼굴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잠깐 차를 세워보라고 하더니 고민을 거듭하던 주호는 아직 사람들을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고 마음을 추스르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억지로라도 끌고 갈 심산이었지만 얘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아팠다. 결국 셋의 모임은 다음으로 미루고 주호는 집으로 돌아갔다.

주호는 그때 형을 만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고 한다. 수년 만에 형을 마주한 곳이 장례식장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허무하다고.


전화를 끊고 하늘을 본다. 오늘따라 유난히 파란 하늘이 밉다. 실타래처럼 얽힌 것만 같은 구름도 야속하다. 형이 없는데 세상은 달라진 것이 없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고요하다. 흰 가운을 입고 서류 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젊은 사람의 통화 소리가 들린다.


"네, 집으로 갈게요."


매일 가는 집. 오늘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거리조차도 되지 않는 일이 이렇게나 귀하고 소중한 일이었다. 집에 간다는 자식의 말에 김이 모락모락 나고 윤기가 흐르는 쌀밥과 건더기가 가득 들어간 고깃국이 기다리고 있을 테다. 그리고 형의 어머니께서도 아들의 전화 한 통에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한 상 가득 차려주셨을 것이다. 한데, 이제는 아무리 기다려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따듯한 밥을 후 후 불어가며 맛있게 먹어줄 아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질 않는다. 노파심에 한 얘기들을 잔소리로 들었던 아들에게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다. 아니, 못다 한 말이 너무도 많은데 하늘에 대고 소리친들 되돌아올 말이 없다. 그저 더 믿어주고 기다릴 것을, 하고 싶은 대로, 생각 한대로 어디 마음껏 해 보도록 끝까지 응원해 줄 것을. 아들아! 너무 보고 싶고 너무나도 사랑한다.

지나가는 사람의 집으로 간다는 한 마디에 형 부모님의 마음을 감히 떠올려 본다. 형의 집은 어디일까. 형은 어디로 돌아갈까. 언젠가 모두가 돌아가면 한 곳에 모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꼭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무언가에 홀린 듯 장례식장 입구로 들어갔다. 장례식장 로비에 들어서자 시야가 흐려지더니 형의 이름이 있는 화면을 마주한다. 형의 얼굴이 아니라 형을 떠올리게 하는 문자가 있다. 반듯하고 가지런히 적힌 선과 동그라미가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어째서 뒤죽박죽 형체를 알아보기 힘이 들까. 이런 문자 따위가 형이라니, 그럴 리가 없다. 문자가 아닌 형을 데려오라고 아무도 듣지 못하게 소리친다. 화면에 떠 있는 문자 따위로 형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문자가 형을 가리키지 않기를, 형은 형이고 문자는 문자일 뿐이기를 바라고 있다. 절대 같지 않다고, 형의 이름을 내 머릿속에서 구겨진 종이처럼 헝클어 뜨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부정할 것이다. 다만 지금부터는 숨 쉬기에 집중해야 한다. 형의 가족이 있다.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숨을 몰아쉬고 복도를 따라 걷는다. 오감이 멀어지고 공중에 떠 있는 것만 같다.


좁은 장례식장에는 형의 사진과 이름이 적혀있다. 머릿속에서 헝클어뜨린 형의 이름이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간다. 웃고 있는 형의 얼굴을 마주하니 끝까지 아니길 바랐던 마음은 온데간데없다. 어느새 공허함이 빈자리를 가득 채운다. 낮 시간이라 친인척들로 보이는 가족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신발을 벗을 용기가 나지 않아 멀찍이 물러섰다. 겨우 형에게 왔는데, 사랑하는 형에게 왔는데 평소처럼 반겨주며 나를 불러주는 형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눈을 감고 형의 사진을 바라본다.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형이 없다. 형과 나 사이에 형이 없다. 그러니 나도 없다. 나도 죽었다.


죽음. 죽는다는 것.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고 있는 모두가 죽는 것이다. 그와 함께 했고, 그와 같이 이루었던 모두가 죽는다. 죽음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나 역시 형과 나의 관계가 송두리째 죽었다. 형으로부터 배웠던 모든 순간들, 함께했던 추억, 수많은 감정을 가진 나도 죽었다. 나는 형도 잃었고 나도 잃었다. 형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찢어지고 원통해서 터질 것만 같은 심장을 설명할 길이 없다.

한 생명의 죽음은 내 안에 그 생명과 관계된 모든 것의 죽음을 가져온다. 많이 사랑한 만큼 내 안을 채우고 있기에 그것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죽음은 엄청난 고통과 절망을 동반한다. 마음이 공허하고 애가 끊는다. 둘의 관계에서 한 사람만 남는 것은 더 이상 둘이 아니다. 둘 다 죽는다.


한참을 멍하게 서서 형의 얼굴을 바라보다 나를 의식한 가족을 느낀다. 한 걸음을 떼는 것이 이렇게도 무거울 수가 있는가. 장례식장 한편에 마련된 작은 방에서 형의 부모님과 형의 동생 가족이 나오신다. 준비해 온 조의금을 함에 넣는데 손이 떨린다. 내 이름 석자를 헝클어진 선과 동그라미로 써 내려간다. 이것이 내 이름인가. 나는 여기 있는데 이 글자가 나란 말인가. 로비에 있는 모니터 화면에 반듯하게 쓰여 있던 이름은 형이었다. 누가 만들어 놓은 연출이 아니었고 우정을 테스트하는 쇼도 아니었다. 전부 사실이었고 받아들여야 한다.


숨이 차 오른다. 자꾸만 쌓여서 시야를 가렸던 무엇인가가 존재를 들어낸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흐물거리는 바닥을 지나 눈을 한번 닦아 내고 형을 본다. 자신감이 넘치는 형의 기운과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행복하게 웃고 있는 형을 본다. 아, 이제야 현실을 직시한다. 사랑하는 형이 정말로 먼저 떠났구나. 형을 볼 수도, 들을 수도, 함께 웃을 수도 없다.


형의 얼굴을 마주하고 한참을 서 있다 다리가 풀려 엉겁결에 절을 한다. 존재를 드러낸 눈물은 폭포수처럼 그칠 줄을 모르고 엎드린 채로 몸이 굳어간다. 어금니를 물고 참아내지만 신음은 자꾸만 흘러나온다. 예의를 지켜야 함을 알고 있는데 시끄럽게 울면서 눈물과 콧물이 섞여 형에게 인사를 드리며 바닥을 더럽히고 말았다. 그대로 몸이 굳어 움직이질 않는다. 가족들이 겨우 참고 있는 신음과 눈물을 다시 흘러내리게 했다. 아버지의 깊은 숨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어머니께서 통곡하시는 소리가 들린다. 줄줄 흐르는 눈물과 콧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형에게 인사를 한 후에 가족과 마주했다. 형의 아버지를 실제로 뵙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버지께는 인사를 처음 드리는 것인데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얼굴을 보여드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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