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한다면 소속과 이름으로 대신한다. 나의 신분이 마치 '나'를 증명하고 정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름, 학생, 직장, 직급, 직함이 '나'를 대신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항상 물음표가 따라온다. 물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신분을 드러내는 것이 상황을 정리하고 모면하는데 매우 편리하다. 하지만 나를 신분으로 소개하는 매 순간마다 작아지는 나를 느낀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자꾸만 움츠려 든다. 이력이 부족해서, 신분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고 느껴서가 아니다. 부끄러움의 상대는 나 자신이다. 내 안의 나를 배제한 채로 지금까지 이루어 낸 성과나 업적만이 나를 정의하는 것만 같아서다. 나를 잃어버리는 순간을 마주하니 불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겸손해진다. 신분으로 나를 내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겸손해한다. 동시에 신분만으로 가늠할 수 없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다. 마음의 대화를 해보지 않는 한, 타인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신분 만으로 정의할 수 없는 '나'는 무엇일까. 기왕에 세상이라는 곳에서 인두겁을 쓰고 의식을 가지게 되었으니, 시간과 환경에 따라 변하는 소속과 이름이 마치 '나'인 것처럼 뒤집어쓰고 숨 쉬며 살아가는 것인지. 신분이라는 것은 중요한지.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나'는 존재하긴 하는 것인지, 내가 무엇인지, 누구인지. 이런 고민에 빠져있는 나는 또 누구인가? 나의 수많은 생각은 수많은 또 다른 나인가? 애당초 정의가 가능하기나 한 물음인가?
프로이트는 정신 영역을 본능(id) - 자아(ego) - 초자아(super ego)로 구분했다. 본능은 원초적인 무의식이고 초자아는 죄의식 같은 도덕적 관념이자 자아에게 끊임없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유도한다. 그리고 본능과 초자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하는 것이 '자아'다. 본능으로서의 나를 알아 체고 초자아의 나를 알아채는 것으로 그에 맞는 사고와 행동을 이끌어 낸다. 자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문제가 생기는데 억압, 부정, 전치, 투사, 합리화, 퇴행 같은 방어기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방어기제로 정신 영역을 보호하며 안정감을 유지한다.
'나'는 존재함으로써 모든 것에 의문을 갖는다.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요소를 배우고 경험하며 알아간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해서는 알려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스스로 문답한다. '나'는 질문을 던지고, 내 안에 있는 '자아'가 대답한다. 자아는 대답하기 전에 충분히 고민한다. 프로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본능과 초자아 사이에서 상황에 맞는 최선의 판단을 하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여 행동하고 발전할 수 있는 힘이 여기에 있다. 스스로 묻고 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가 없다면 질문이 없으니 대답하는 '자아'도 있을 수 없다. 질문에 대답할 자아가 없다면 본능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배고프면 사냥하고, 졸리면 자고, 목이 마르면 물을 찾는 본능에 충실한 동물이 된다. 자아의 힘이 강할수록 중심을 잘 잡고 안정적으로 삶을 유지한다. 자아를 마주하고 대화하며 자아의 힘을 키우는 것이 삶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아의 힘이 약하면 삶은 살아지게 된다. 살아진다는 의미는 충동적이고 수동적이다. 시간으로부터 통제를 받는다. 인내가 없고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정체되고 도태된다. 그러나 자아가 힘을 가지면 살아가고 살아낸다. 하루에 충실해진다. 계획적이고 인내할 수 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우선순위를 정한다. 앞으로 해 나갈 일들을 그리면서 내일이 있음을 안다.
강한 자아를 가지려면 자신의 기질을 알아야 한다. 기질은 자극 등에 따라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타고 난 정서적 반응을 의미한다. 어떤 성향과 익숙함을 가지고 있는지,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범주인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등을 스스로 문답하며 인지해야 한다. 내 기질을 알아야 정확한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래야만 그에 맞는 건강한 자아를 길러 나갈 수 있다. 사실은 내향형 기질을 갖고 있는데 자꾸 외향형의 선택을 한다면 스스로를 낭떠러지로 내몰게 되는 것과 같다.
나는 나다. 질문하는 나와 대답하는 나(자아)가 있다.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내면으로는 내 안에 있는 자아에게 내 기질에 맞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는다. 자아가 내놓는 답은 본능, 자아, 초자아의 힘의 강약에 따라 모두가 다르다. 정답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 각자의 삶은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다. 모두가 자신만의 고유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따라서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모두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다만 나이가 들고 환경이 변한다. 환경이 변하면 생각이 바뀐다. 그래서 건강한 나를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고 대답해야 한다.
결국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하는 과정에서 나를 알아차린다. 나를 알아차린다면 지금 해야 하는 일,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인다. 이것이 건강한 나를 만드는 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