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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유 Nov 16. 2023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나랏말싸미' 작가님께서 쓰신 글을 보고 저도 작가님의 수업을 듣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을 글로 써 보았습니다.

몇 가지 전제로 삼은 내용의 논거와 논리적 구성이 빈약하니 재미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랏말싸미' 작가님의 글을 링크로 표시하겠습니다. 사색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brunch.co.kr)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감각과 믿음의 의미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감각은 '오관'이라고 불리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입니다. 믿음은 '의심하지 않는다.' 정도로 풀어 보았습니다. 의심하지 않는다는 아주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많은 의심을 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은 100% 의심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오관을 100%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가.'


오관의 신호를 알아채고 정의하는 것을 '지각'이라고 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오관을 지각해야만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을 '오관-지각-정보'의 순서라고 하겠습니다.


오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가에 대하여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커스단에서 춤추는 곰을 조련하는 방법입니다. 약간의 허기를 느끼는 새끼 곰을 온도 조절이 가능한 바닥 위에 올려놓습니다. 온도 조절이 가능한 서커스 무대가 되겠네요. 그리고  그 바닥을 점점 뜨겁게 달구기 시작합니다. 곰이 뜨거움을 느낄 즈음에 음악을 크게 틀어 놓습니다. 곰은 발이 뜨거워서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그때 먹이가 들어있는 통을 높이 들어서 두 발로 서게 하고 방향을 유도한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이 자극을 반복합니다. 계속 반복하다 보면 성체가 된 곰은 서커스 무대에서 음악소리만 나와도 뜨거운 줄 알고 발을 옮겨가며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은 먹이가 들어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쫓아다니게 된다고 합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코끼리를 조련하는 방법입니다. 코끼리가 새끼일 때는 끊을 수 없는 쇠사슬을 다리에 묶어서 키운다고 합니다. 이렇게 성장한 코끼리는 성체가 된 후에 쇠사슬을 끊을 힘이 충분히 생겼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끊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별다른 시도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관의 신호를 알아채는 것을 '지각'이라고 했습니다. 제대로 된 지각은 '의심'의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문제는 오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오관을 제대로 지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관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지각할 수 없습니다. 어딘가에 부딪힌 기억도 없이 멍이 들어 있다거나, 긁히거나 베인 상처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매우 지독한 냄새가 나는데 비염 때문에 코가 막히면 냄새를 맡을 수 없습니다. 오관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각 역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잘못된 정보가 들어옵니다. 음악을 듣고 발이 뜨거운 것으로 착각하여 춤추듯이 움직이는 곰이 있습니다. 곰은 뜨겁지 않은 발을 지각하지 못합니다. 어려서부터 발이 쇠사슬에 묶여서 길러진 성체가 된 코끼리는 쇠사슬이 더 이상 무겁고 단단하지 않음을 지각하지 못합니다.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뜨겁다는 정보와 여전히 무겁고 단단하다는 정보를 가져온 것입니다. 지각은 오관의 신호를 알아채고 의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의심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입니다. 곰과 코끼리는 발이 뜨거운지, 쇠사슬이 끊을 수 없을 만큼 여전히 무겁고 단단한지 의심했어야 합니다.


따라서 오관과 지각이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는지에 관하여는 100% 의심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즉, 오관을 지각하면 정보가 들어온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관, 의심의 과정을 거쳐 지각한 정보는 사실로서 100% 의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곧 자기 확신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우리는 미처 알지 못하는 외부의 영향으로 인해 오관과 지각이 실체적 진실과 달리 왜곡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속이기 위해서 거짓된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은 경계와 의심이 없습니다. 본인의 판단을 경계하거나 의심하지 않습니다. 오관과 지각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의심하지 않고 속아 넘어갑니다. 지나친 자기 확신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게다가 중요한 문제의 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거짓된 사실에 속았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대가 즉, 100% 믿음의 대가는 참혹하고 처참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고통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많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큰 권한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의 오관과 지각에 의한 정보가 실체적 진실이 맞는지 경계하고 의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오관을 100%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가?'에 대한 제 생각은

'감각의 기능은 믿을 수 없다.' 그러나 '감각을 의심하고 지각한 정보는 믿을 수 있다. 단, 실체적 진실인지의 여부는 의심해야 한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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