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니 따듯함을 뒤집어 쓰려 이불을 부여잡고 있다. 가을은 온데간데없이 순식간에 한기가 드리운 겨울이다. 가을코트는 옷장에서 외출할 틈도 없이 바로 두꺼운 패딩을 꺼내 입고 아침 일찍 다른 지역으로 향한다. 출장이다. 흔들리는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다. 으스스한 날씨에 걷고 싶은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옮겨본다. 출근시간이 지나서인지 인적이 드물다. 파란 하늘을 가린 무거운 구름이 스산함을 더한다. 그래서 저 멀리 펼쳐 보이는 신도시의 전경이 외롭다. 그나마 진행 중인 공사 현장에 작업 중인 사람들이 있어 혼자가 아니라고 위로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공사 중인 이곳에 높은 아파트가 우뚝 솟아 있을 테다. 그때는 어떤 분위기로 어떤 느낌을 줄지 궁금하다.
가을이 외롭고 쓸쓸하다면, 겨울은 차갑다. 겨울은 차가움이다. 그래서 작은 온기조차 귀하다. 이 작은 온기를 여기저기 전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럼 모두가 차가움 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 하나씩을 가지고 이 겨울 역시 잘 이겨내지 않을까. 아니다, 이겨내지 못해도 괜찮다. 버텨내기만 해도 다행이다. 귀하지만 흔한 불꽃을 염원한다.
업무를 마치니 잊고 있던 배고픔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따듯한 국물이 생각나는 날씨다. 살짝 이른 점심시간에 한적해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주 메뉴는 된장찌개다. 처음 가는 곳이라 점심시간에 손님들이 얼마나 오는지 모른다. 그래서 혼자서 4인용 식탁을 차지하고 앉는 것에 죄송한 마음이 들어 입구에 서서 한 명인데 식사가 되는지 여쭙는다. 한 명은 안된다고 하시면 미련 없이 돌아설 것이다. 그리고 주린 배는 씁쓸한 마음으로 채울 작정이다. 한 끼 굶는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라고 위로할 것이다. 아, 아침식사를 안 하니 두 끼를 굶게 된다. 두 끼 굶어도 별일 아니라고 위로할 것이다.
다행이다. 혼자서 4인 식탁을 허락받았다. 괜한 고민은 나 혼자서 했던 거다. 그리고 '차돌된장찌개'로 주문을 한다. 잠깐 검색을 해 보니 가장 인기가 많은 메뉴로 보였다. 하나 둘 손님들이 들어오신다. 빈자리가 절반정도 남았다. 대부분이 '차돌된장찌개' 그리고 일부가 '우렁된장찌개'를 주문하는 소리가 들린다. 곧 있으면 차가운 몸을 녹여줄 뜨끈한 된장찌개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며 잔뜩 기대한다.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뚝배기 한 그릇이 식탁 위에 올려졌다. 그리고 반대편 식탁에도 3인 손님이 주문한 뚝배기가 올려졌다.
된장찌개 향을 맡으려 숟가락으로 천천히 휘젓는데 매운 고추와 된장찌개 향이 어우러져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사실은 배가 고프지만 너무 뜨겁기 때문에 바로 먹을 수도 없어서 향을 맡고 있다. 그런데 뭔가 좀 어색하다. '차돌'된장찌개를 주문했는데 '우렁'이 보인다. 우렁도 몇 개 넣어 주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고기가 없다. 나에게 4인용 식탁을 허락해 준 분께 조용히 손을 들어 잘 못 나온 것 같다고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조용한 수습이 가능한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그때 사장님으로 보이는 주방에 계신 분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리고 매우 큰 호탕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뭐 드려요?"
아, 내가 그린 그림은 이런 그림이 아니었다. 몹시 당황했다. 하는 수 없이 음식이 잘못 나온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나에게 이 자리를 허락해 주신 분께서 몹시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하셨다. 이 상황을 원치 않아서 조용하게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공연히 불편하게 해 드렸다. 동시에 반대편 테이블을 보니 나와 같은 어색함을 느끼고 뚝배기를 휙휙 젓고 있는 손님 한 분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뚝배기가 바뀐 것 같았다. 난 '차돌된장찌개'가 먹고 싶을 뿐이었는데 이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반대편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눈인사를 하고 숟가락을 슬쩍 들어 올렸다. 마음이 통했다. 그리고 동시에 말했다.
"그냥 먹을게요, 괜찮아요."
그제야 인상을 쓰고 계시던 사장님과, 안절부절못하시는 서빙을 하시는 분의 얼굴이 펴졌다. 그리고 이렇게 맛있는 우렁은 참 오랜만이다. 반대편 손님도 이렇게 맛있는 차돌된장은 오랜만에 드신다고 생각하시리라. 세상에 먹거리는 차고 넘치지만 배 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는 게 내 지론이다. 차돌이던 우렁이던 일단 입에 넣고 삼키면 같은 음식일 뿐이다. 차돌된장찌개야 집에서 직접 해 먹으면 된다. 인류애가 따로 있겠나, 결국엔 같이 살아가는 거다. 인간미 있는 마음 씀이 인류애다. 오늘도 작은 불꽃 하나가 전해졌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