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태어나고부터 유난히 몸이 약했다. 분유를 먹으면 다 토해냈다. 배를 충분히 채우지 못하니 무척이나 예민했다. 그러니 바닥에 내려놓기만 하면 울어대서 밤새 어머니 품에 안겨 있어야 했다. 소화기관이 약했고 기관지도 약했다. 결국 천식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부모님은 3남매를 키우시며 부족한 살림살이에도 비싼 한약을 지어다 꼬박꼬박 먹이셨다. 아이는 살고 싶었던 것인지 쓰디쓴 한약을 매번 벌컥벌컥 단숨에 다 비워 냈다.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에도 중간에 어머니께서 데리러 오셔서 조퇴하기 바빴고, 병원에 입원하기 일쑤였다. 혼자서 가족을 부양하는 아버지는 바쁜 와중에도 누나들을 챙기며 병원에도 들락날락하시느라 쉴 틈이 없었다.
집안의 맏며느리로 들어와 딸 둘을 낳고서 장손을 낳지 못해 시원하게 고개 한번 들지 못하시는 어머니셨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추억이 가득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지만, 아들을 낳지 못한 어머니에게는 눈물 나는 시집살이를 시키는 무서움의 대상이었다. 남들은 잘만 낳는 아들을, 다 안아보는 손자를 안겨드리지 못한 마음의 부담이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게 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할머니들은 배를 보고 딸이라고 하기도, 아들이라고 하기도 하니 속이 탈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출산이 코앞인데도 아들인지 딸인지 힌트조차 주지 않고 소리 없이 웃기만 하시는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께 한마디 하셨다.
"저 꼭 아들 낳아야 해요. 선생님, 말씀 좀 해주세요."
그럼에도 선생님은 고개를 숙이며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으시고 출산일에 보자고 하셨다. 어머니는 '또 딸이구나...'라고 생각하시며 가녀린 몸에 무거운 배를 끌고 집으로 걸어가셨다.
출산 당일, 왕자님 낳으셨다는 간호사님의 말에 어머니는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작은 아기를 보시고선 그제야 온몸에 긴장이 풀려 기절하셨다.
어떻게 낳은 아들인데 태어나자마자 잘 먹지도 못하고 숨소리가 고약하다. 어머니는 매일 밤을 꼬박 새우며 지극 정성으로 아들을 돌보셨다. 그러나 언제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에 가야 할지 모르니 긴장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입원을 하면 병원에서 사용할 이불과 옷가지들도 항상 준비해 두셨다. 아이는 꾸준히 병원에 다니고 몇 차례 입원과 퇴원을 이겨낸 후에야 초등학교에 간신히 입학한다.
어머니는 아이가 커 갈수록 천식을 이겨낼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굳게 믿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 중 손에 꼽히는,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아이의 학교 선생님께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결석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아이가 밤새 아프면 등에 엎고 아침에 병원에 먼저 간 후에 학교로 갔고, 학교에서 아프면 전화를 받으시고 부랴부랴 데리러 오셨다. 허약하던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자 반장이 됐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하셨고,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한턱 쏘셨다. 아이는 반장을 원치 않아서 투표를 다른 친구한테 했는데도 반장이 됐다며 어리둥절했다. 반면에, 같은 반인 누구 집 아이는 자기한테 투표를 했는데도 떨어져서 슬피 울었다고 했다. 아이는 선거라는 것이 참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이왕 하기로 한 거, 지금처럼 너무 기쁜 티 내지 말고 차분하게 잘해보자고 하셨다.
아이의 초등학교 2학년까지의 학교 생활은 단순했다. 일찍 등교를 해서 학교 운동장에 모여 친구들과 야구를 한다. 마침 설 선물로 아버지께서 야구 글러브와 방망이를 사주셨는데 등하교 길에 이를 들고 다니며 흠씬 기분을 내었다. 그리고 수업 쉬는 시간에도 운동장에 나가서 친구들과 달리기 시합도 하고 축구를 한다. 학교를 마친 후에는 몇몇 친구들과 학교 놀이터에서 실컷 놀다가 집에 간다. 매일같이 뛰어놀다 보니 건강이 좋아지다가도, 찬바람만 불기 시작하면 다시 급격하게 나빠졌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후에는 병원에 가는 횟수와 조퇴가 점차 줄어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천식을 이겨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