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부와 축구시합이 끝났음에도 그 여운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시합 다음날에도 어제 있었던 축구시합 생각뿐이었다. 경기 시작 전에 긴장을 많이 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대화도 많이 하고 소리도 꽥 꽥 지르면서 웃으며 뛰었다. 넘어지면 일으켜 주고, 힘들어서 주저앉아도 괜찮냐고 물으며 상태를 살폈다. 승패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지금 우리가 뛰고 있음이 중요했다. 즐겁고 행복했다.
축구부 팀도 우리 못지않게 긴장한 모습이 보였다. 우리만 긴장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오합지졸인 우리와 달라 축구부는 역시 축구부였다. 각 포지션 별로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는 게 느껴졌다. 다행히 힘과 스피드에서 우리가 조금 앞섰다. 코너킥 상황에서는 뒤에서 몰래 바지를 아래로 잡아당기고 팔짱을 끼면서 우리를 불편하게 했다. 당황한 우리는 이런 반칙을 들어본 적도 없어서 말 한마디 못하고 피해 다니기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파이팅에 축구부 팀이 주눅이 든 것 같았다. 생전 처음 상대하는 오합지졸 팀에 당황했고, 원하는 축구가 전혀 되지 않아 분위기가 쳐진 것이다. 나는 축구에 분위기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도 우리는 어김없이 운동장에서 축구부 훈련을 구경하며 놀고 있다. 그런데 코치선생님이 오시더니 몇 명을 콕 집어 잠깐 와보라고 했다. 슈팅 훈련을 하고 잠깐 쉬는 시간에 우리를 골대 쪽으로 데려가셨다. 그리고 흡족한 웃음을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너희들 축구 한번 해볼래?"
무엇이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지만 축구를 같이 해보자고 하셨다.
"네? 저희 가요?"
높아만 보이던 축구부 가입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코치선생님은 곧바로 6학년 골키퍼 형이 지키고 있는 골대에 슛을 해보라고 했다. 공을 차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있는 힘껏 슛을 했더니, 너무 긴장을 하고 부담스러워서인지 골대를 많이 비껴갔다. 몸에 힘을 빼고, 디딤발의 위치와 각도, 상체를 더 숙이라는 몇 번의 지도로 처음과는 전혀 다른 슛이 나왔다. 골키퍼 형도 슛이 좋다고 엄지를 치켜세워 주었다. 축구부 골키퍼 형이 지키는 골대에 슛을 할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굉장히 흥분되는 일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말을 반복 했다. 그때마다 코치선생님은 축구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 운동을 해보자고 하셨다. 나는 코치선생님이 훈련할 때 굉장히 무서운 분이시라는 것을 까맣게 잊었다.
집에 가자마자 엄마에게 또 이 사실을 알렸다. 나를 필요로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할 역할이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 달리 엄마는 걱정부터 하셨다. 너무 거칠고 심하게 운동을 하면 오히려 건강에 무리가 오진 않을까 염려하셨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천식이라는 병이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족한 살림살이인데 귀한 아들이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할까 봐 염려하시는 것 같았다. 철이 없던 나는 약간의 실망감을 안고 엄마의 확답을 듣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운동장에서 코치선생님과 대화를 했고, 아직 엄마의 확답을 못 받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럼에도 코치선생님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시고 계속 운동장에 놀러 오라고 하셨다. 며칠 동안 침울해 있던 것이 티가 났는지, 어느 날 엄마가 조용히 부르셨다. 다치지 않고 취미생활 정도로 운동을 한다면 축구부에 가입해도 좋다고 하셨다. 아빠도 허락하셨다. 축구를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에게 걱정을 드린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게 나와 친구 몇 명은 축구부에 가입했다. 다른 친구들은 축구부에 가입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너무 힘들 것 같고, 우리끼리 노는 게 재미있었다고 했다. 나는 다음 날 꿈에 그리던 유니폼을 받고 축구를 배웠다. 그리고 저 멀리서 훈련을 구경하는 같은 반 몇몇 친구들이 보였다. 잠깐 아는 체를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날부턴가 친구들은 운동장에 보이지 않았다.
하루는 훈련을 마치고 물을 마시는데 갑자기 6학년 형이 와서 혼을 냈다. 이유는 형들에게 먼저 물병을 주어야지 5학년이 버릇없이 물을 먼저 마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단체생활을 체감했다. 더 어린 동생들은 먼저 물병을 들고 돌아다니며 형들에게 물병을 나누어 주었다. 나 역시도 그 물병을 받아서 물을 마셨다. 지금은 갑질이나 꼰대스럽다며 비난받을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연장자가 먼저였고, 서로 챙겨주고 끌어주며 관계가 더 돈독해짐을 느꼈다. 이 일로 인해 나는 축구부에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고, 나이에 구분 없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양보하고 배려하는 계기가 되었다. 군대 경험을 간접적으로 미리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무리 힘든 훈련이어도 주저앉거나 힘든 티를 내서는 안 됐다. 그렇게 참고 인내하는 것을 배웠다. 6학년이 되어서는 동생들을 챙기고 모범을 보여야 했다. 앞에서 끌어주는 리더십을 배웠다. 다른 학교와 축구경기도 하고 대회도 몇 번 나갔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정말 축구를 잘하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많았다. 세상은 넓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나의 6학년 졸업을 끝으로 학교 축구부는 해체되었고 나의 축구부 활동은 이렇게 끝이 났다. 축구 선수로서의 성과는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얻은 게 정말 많은 축구부 활동이었다. 힘이 들었지만 힘든 만큼 내 마음이 훌쩍 커져 있었음을 느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