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축구부가 없는 사립 중학교로 진학했다. 중학교는 추첨을 통해 결정되었는데 내심 남녀 공학으로 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 아쉬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살얼음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입학 후 며칠은 서로를 탐색하느라 눈빛들이 초롱초롱 빛났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부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누가 운동을 잘하는지, 누가 힘이 센지, 누가 싸움을 잘하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처음 한 달 동안 싸움을 하는 사건이 많았다.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니 싸워서 이긴다는 생각으로 서로 덤벼들었다. 이런 싸움을 본 친구들은 마음속으로 자기의 싸움 순위를 가늠하곤 했다. 그리고 체육시간을 기점으로 반 친구들 모두가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서로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같이 무엇을 함으로써 마음을 열고 웃음으로 대했다. 그리고 다음 체육시간이 기다려졌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남자들은 같이 무엇을 함으로써 동료애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밤늦도록 쓰디쓴 술잔을 같이 털어 넣고 누구 할 것 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난 후에야 서로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 같다.
은연중 싸움에서의 서열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특정인을 따돌리며 공격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성격이 맞지 않으면 가까이 지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서로 존중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서열이 상향평준화 되었다. 잘 보일 여학생이 없어서인지 서로 우월함을 과시할 일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대다수의 학생들 자존감이 하늘을 찔렀다. 서로 마음이 조금 상해도 적당히 넘어갔고 눈치껏 조심하고 건드리지 않았다. 경쟁할 대상이 아니라 언제든지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였다. 매일매일이 즐거웠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거친 농담을 편하게 하셨다. 한 분 한 분이 호랑이처럼 무서운 선생님들이셨지만, 한없이 인자하고 누구보다도 학생들을 잘 이해해 주셨다. 남녀공학을 다녀보지 않아서 그 분위기는 잘 모르겠다. 다만 여학생들과 친하게 지낸다거나, 선물이나 편지를 주고받는 두근거림이 없었던 것은 아쉽다.
고등학교 역시 남학교로 진학했다. 사립 중학교를 입학했었는데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당연시 여겨졌다. 고등학교는 중학교보다 학생 수가 더 많았다. 중학교 때 헤어졌던 초등학교 친구들을 다시 만나기도 했다. 분위기는 중학교와 다르지 않았다. 처음 한 달은 싸움이 많았고 역시 서로 존중했다. 특정인을 괴롭힌다거나 놀리는 일도 거의 없었다. 체육시간을 계기로 모두가 더 친해졌고 면학분위기가 조성되어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다.
문제는 점심시간이다. 학생들이 많다 보니 점심시간마다 전쟁이 따로 없었다. 급식실까지는 약 10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운동장을 지나서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을 달려야만 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는 달리기 경주가 열린다. 나를 비롯한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빠른 점심식사를 포기하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 굳이 같은 반 구분 없이 두 팀으로 나누어서 축구시합을 했다. 그리고 급식실이 한산해질 즈음에 가서 밥을 먹었다. 고기반찬이라도 나오는 날이면 남은 음식을 싹쓸이해서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었다. 반면에 음식이 일찍 소진되어 김치와 김, 단무지 만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그래도 불만은 없었다. 점심시간에 축구시합으로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 보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입학 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다. 수업을 마친 오후에 주번으로서 교실 뒷정리를 하던 중 축구공을 발견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주번을 했는데 같은 주번인 친구와 축구공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큰 화분을 깨뜨렸다. 학기 초에 교실에는 화문이 많았는데 하필 그중에서 가장 큰 화분을 깨버린 것이다. 무서워서 근처에도 가지 않는 교무실을 난생처음 찾아다니며 기웃거렸다. 교무실 앞에서 우연히 다른 반 선생님을 통해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퇴근하셨음을 알았다. 친구와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선생님을 다시 찾아뵙자고 약속하고 집으로 갔다. 다음 날 학교 가기가 얼마나 무섭던지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 날, 교실에 가장 먼저 도착한 나와 친구는 교무실 앞에서 기웃거리며 담임 선생님을 찾았다. 어제 만난 옆 반 담임 선생님을 다시 마주쳤는데, 우리 반 선생님은 아직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
"대단히 큰 잘못을 한 모양이로구나? 여기서 기다리지 말고 조금 이따 다시 와봐."
"네..."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들이 교실에 화분 하나를 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시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무겁고 어떤 벌을 받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간 교무실에서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 교무실에서 만난 선생님께서 한마디 거들어 주셨다.
"얘들이 어제부터 계속 선생님 봬야 한다고 교무실에 왔어요. 잘못을 한 것 같은데 심성들이 괜찮은 거 같아요."
좋은 말씀을 해 주셨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대세를 거스를 수 없을 것이었다. 우리는 담임 선생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그리고 어떤 벌을 받을지 긴장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밖에다 버려. 안 다치게 조심하고. 허허."
우리는 두 귀를 의심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선생님의 말씀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선생님은 화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신 것처럼 보였다. 별거 아닌 일에 마음 졸였을 제자들에게 위로를 해 주시는 것만 같았다. '화분은 중요하지 않다. 너희들이 다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시는 듯했다. 이 사건으로 물건에 큰 가치를 두지 않아야 함을 깨달았다. 사람은 물건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기에 사람이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담임 선생님을 굉장히 존경하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소 체험했다. 교실에서 축구를 하다 화분을 깬 사건이 큰 가르침으로 이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