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부와 연습 경기를 약속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날. 그런데 이미 그 소문은 다른 반에도 모두 퍼져 있었다. 다른 반에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시합에 참여해도 되느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의 전력이 더 강해질 수 있기 때문에 흔쾌히 좋다고 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어김없이 운동장에 모인 우리들은 축구 골대 하나를 차지하고 연습을 했다. 정확히는 계속하던 대로 공놀이를 했다. 골키퍼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팀을 두 개로 나누어 골대에 골을 넣는 놀이다. 공격하던 팀이 공을 뺏기면 수비했던 팀은 골대에서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공격을 시작해야 한다. 나중에는 멀리서 시작하는 것도 힘들어서 골대 앞에서 기다렸다가 뺏자마자 슛을 해서 골을 넣었다. 그러니 공격하는 팀은 쉽게 공격할 수도 없었다.
축구부 훈련은 멀리서 눈으로만 봤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지, 왜 하는지도 몰랐다. 그냥 구경하는 것이 재밌어서 봤을 뿐이었다. 우리는 공만 차면 축구인줄 알았고, 골만 넣으면 축구인줄 알았다. 우리는 축구선수들과 시합을 앞둔 축구선수였다. 허무하게 지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고민 끝에 코너킥 연습을 하기로 했다. 나는 운동장 모서리에 가서 공을 찼다. 하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어쩌다 골대 앞으로 찼다 싶으면 머리가 아플까 봐 헤딩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공을 향해 달려들지만 정작 아무도 공을 건드리지 않았다. 계속 연습을 하다 보니 축구부 선수들이 한두 명씩 나타났다. 우리는 운동장을 비켜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우리도 연습을 해야 했다. 뭐가 뭔지 모르지만 계속 공을 차고 공에서 눈을 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운동장을 비키지 않고 계속 연습했다.
저 멀리서 축구부 코치선생님이 코너킥을 준비하는 나를 향해 걸어오고 계셨다. 그리고 우리는 얼어붙었다. 축구부가 훈련하는 모습을 많이 봤기에, 얼마나 무서우신 분인지 잘 알고 있었다. 모두가 나와 축구공, 코치선생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코치선생님은 나에게 말했다.
"5학년 3반! 연습 게임 한번 하자?"
나는 감격스러웠다. 우리가 코치선생님께 인정받는 것만 같았다. 우리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이미 시합은 확정되었지만 인사도 할 겸 어떤 아이들인지 궁금해서 오신 것 같았다.
"네, 좋아요. 그런데 저희가 축구부 형들을 어떻게 이기죠?"
축구부의 6학년 형들은 차원이 달랐다. 부드럽고 빨랐으며 힘도 좋았다. 공이 발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형들은 공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 점이 가장 두려웠다. 특히 우리에게 운동장에서 나가라고 했던 형은 뒷모습만 봐도 오금이 저렸다. 축구도 잘하는 형이었지만 무서운 기억까지 있으니 쳐다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우리가 6학년 형들을 이기는 것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6학년 형들은 몇 명만 뛸 거야."
코치선생님은 6학년 형들은 대부분이 경기에 안 나온다고 했다.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축구부에 5학년은 몇 명 없었고, 나머지는 더 어린 동생들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한 학년마다 신체적인 차이가 제법 컸기에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가 지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코치선생님께 여쭈었다.
"저희도 연습을 해야 하는데 운동장을 사용해도 되나요?"
그때는 지금처럼 유소년 축구교실 같은 게 거의 없었다. 코치선생님을 어떻게 부르는지 조차 몰랐다. 훈련할 때 호되게 혼내시는 모습이 강하게 남아 있어 무서운 아저씨 정도로만 생각했다. 가까이서 마주하기도 처음이고 긴장했지만 우리도 연습을 해야 했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연습해"
코치선생님은 운동장 사용을 허락했다. 단 축구부에 방해되지 않게 연습하기로 했다. 그러나 말이 연습이지 여전히 놀이였다. 그래도 좋았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놀이라도 해야 했다.
무섭기만 할 줄 알았던 코치선생님은 웃음이 많았다. 우리를 경계하거나 축구부 훈련을 방해하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다. 친근하고 꾸밈없는, 호탕하고 진실된 사람 같았다. 축구부 선수들의 자신감이 코치선생님 덕분임이 느껴졌다. 나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합 당일이 되었다. 나는 전날 저녁에 긴장이 되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하루종일 시합 생각뿐이었다. 그날은 날씨가 흐렸다. 운동장에는 학부모님들도 구경을 오셨고, 선생님들, 지나가는 학생들도 제법 모여서 구경을 했다. 그래서 더욱 긴장이 되었다. 축구에 관해서는 공격과 수비, 골키퍼밖에 몰랐기에 이에 맞춰서 인원을 나눴다. 그랬더니 공격은 공격끼리, 수비는 수비끼리 모여서 서로의 위치를 알아서 정했다. 그때 고정으로 골키퍼를 봐준 친구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 친구는 나와 동네 친구로 어려서부터 자주 놀았던 친구였다. 다들 골을 넣고 공을 멀리 차고 싶어 했지, 막고 싶어 하는 친구가 없었다. 다행히 골키퍼 친구는 막는 게 더 재미있다고 했다.
우리에게 축구는 골을 더 넣으면 이긴 거고 적게 넣으면 지는 것이었다. 전술이 뭔지도 몰랐다. 그날 경기는 우리가 1대 0으로 이겼는데, 아마도 그 내용은 형편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축구부는 우리보다 월등히 체계적인 모습으로 경기를 했다. 우리는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이 공만 쫓아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한 골이 들어갔다. 수비는 텅텅 비어있고 공격만 잔뜩 해대니 어쩌다 골이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우리기 축구팀 동생들보다 달리기가 더 빨랐기에 뒤늦게 쫓아가서 공격을 막아냈다. 축구부 팀에는 우리보다 더 어린 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수비하기가 수월했다. 경기가 끝나고 축구부 친구와 동생들은 코치선생님께 크게 혼이 났다. 그리고 우리는 신이 나면서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우리를 쳐다보는 6학년 형들을 발견했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저렇게 이기고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 같았다. 그리고 약간의 우리를 노려보는 듯한 눈빛도 느꼈다. 우리는 얼른 고개를 돌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일이 내게도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