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여름 바람을 가르며

독일

by 윤예림

독일에 살고 있는 내 동생은 때때로 사진을 보내왔다. 자전거를 타고 보랏빛 하늘을 가르거나, 네덜란드 국경을 넘어 주말 시장에서 생선을 사오거나, 벨기에 국경을 가로질러 쫀득한 감자튀김을 마요네즈에 찍어 먹거나, 매일 아침 노트북 가방을 메고 회사에 가는 날들을 보며, 자전거를 마음껏 타는 삶을 조용히 품어 왔다. 언젠가 동생이 있는 독일에 머물 수 있다면, 자전거를 타고 어디든 달릴 거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나와 아이는 독일에 가기 전부터 자전거 여행을 준비했다. 보조바퀴를 달고 달리던 아이에게는 독일 가기 전까지 두 발 자전거를 타겠다는 결심을 받아냈다. 아이의 마음은 단단한 것이어서 두 발 자전거에 올라 몇 번을 휘청거리더니 기어코 손쌀같이 달려나갔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까지도 아이는 매일 밤 아파트 단지를 스무 바퀴씩 돌며 훈련을 했다. 그 사이 나는 적당한 크기의 중고 자전거를 적당한 가격에 구매하기를 바라면서 이베이를 열심히 들락거렸다.


그리고 독일에 도착한 다음 날 오후, 우리는 찜해두었던 자전거를 보러 아헨 시내로 나갔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의 번호를 눈으로 더듬으며 찾아간 곳은 언덕이 막 시작하는 초입에 있었다. 건물 앞으로 다가가자 1층 창고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그 앞에 서서 판매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얼마안가 판매자가 우리를 발견했다.



"구텐 탁! 자전거 사러 왔어요."


하늘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190cm는 훌쩍 넘은 남성이 보조개를 지으며 나왔다. 끌고 나온 자전거는 한 눈에 보아도 아이가 타기에는 조금 작아 보였다. 한국에서 타던 자전거보다도 작아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래를 무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와 달리 아이는 자전거가 마음에 든 눈치였다. 파란 프레임에 노란 체인 커버가 대비되어 자전거는 생기를 품고 있었다. 판매자는 여러 도구를 들고 와 바퀴살에 엉긴 거미줄을 걷어내고, 구석구석 세심하게 닦아주었다. 바람이 빠졌던 바퀴도 금세 빵빵해졌다. 문제는 스탠드였다. 발로 눌러도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확실한 이유가 있으니 이 자전거를 못 사겠다고 해도 무례하지 않겠다 싶던 순간이었다.



"이 자전거는 제 아이가 정말 아끼던 거예요. 해변에서 타다가 모래가 낀 것 같네요.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아저씨는 다시 여러 도구를 들고 와 스탠드를 손보기 시작했다. 물을 뿌리고 기름을 치고, 가느다란 솔로 사이사이를 문질렀다. 스탠드를 올리고 내리기를 수십 번 반복하더니, 마침내 부드럽게 움직였다. "다 됐네요"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는 곧장 자전거를 타고 집 앞을 세 바퀴 돌았다.


"엄마, 나 이 자전거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


말끔히 닦인 자전거를 보니 나도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아저씨의 정성스러운 손길을 보고 있자니, 더이상 거래를 무를 수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45유로를 건네고 동생 차에 자전거를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부터 자전거를 탈 준비가 모두 끝났다.



자전거 마스터인 동생이 일을 끝내기를 기다렸다가, 우리는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았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자전거를 타고 달려 벨기에 국경을 찍고 돌아오는 거였다. 왕복 25km를 달리려면 아이의 팔과 다리 근육이 단단히 버텨야 했다. 딱딱한 안장을 버텨낼 엉덩이 근육도 필요했다.


동생은 자전거 도로를 달리며 지켜야 할 규칙들을 알려주었다.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할 때는 반드시 손을 들어 방향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야 했다. 아이와 함께 도로를 달릴 때는 안전을 위해 인도에서도 달릴 수 있었고, 자전거 운전자가 우선권을 가진다는 것도 배웠다. 자전거를 타며 인상적이었던 건,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는 문화였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이 건네는 인사에 아이는 뻘쭘해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시간이 지나자 먼저 "할로"라고 인사를 건넸다. 인사를 받지 못할 때는 시무룩했고, 인사를 받으면 마음이 꽃처럼 피어났다.


독일의 여름 해는 밤 열 시가 다 되어야 모습을 감추었다. 여름은 자전거를 타기에 가장 찬란한 계절이었다. 도로 옆에는 들꽃이 피어나고, 짙어지는 초록잎들은 깊은 그늘을 드리웠다. 검붉은 블루베리와 앵두가 곳곳에 무리를 지어 떨어져 있었는데, 그 위로 자전거를 달릴 때마다 열매들이 톡톡 터지는 소리를 아이는 좋아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숲에서는 민달팽이가 자전거 도로 위를 지날 때가 있었다. 민달팽이를 밟지 않으려면 길을 잘 살펴야 했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붉은 저녁빛이 하늘에 번져 있었다. 여름이 끝나면 결국 떨어지고 말 것들이지만, 굴하지 않고 생기를 뿜어내는 여름의 생명력이 좋았다. 우리는 부단히 페달을 밟으며 여름을 지나왔다.



벨기에 국경을 넘기로 한 날이었다. 방울토마토를 씻고, 오이를 썰어 반찬통에 담았다. 물병 두 개에 물도 가득 채웠다. 나는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하룬아, 진짜 벨기에까지 달릴 수 있겠어? 이모가 그러는데 약간 경사가 있대. 중간중간 쉬긴 하겠지만, 출발하면 중간에 돌아오기 힘들어. 자신 없으면 포기해도 괜찮아."


"아니? 누가 그래? 당연히 가야지!"


우리 셋은 손을 모아 하늘로 올리며 큰 소리로 '화이팅'을 외쳤다. 곧 벨기에 국경을 넘을 거라는 기대에 마음이 들떴다. 손목과 발목을 돌리고, 목과 허리도 충분히 풀어주었다. 이제 자전거 페달을 밟고 힘차게 달려나가기만 하면 될터였다. 우리는 미끄러지듯 자전거 도로로 나섰다.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숲으로 난 자전거 도로로 들어갔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연두빛 잔디가 끝도 없이 펼쳐진 언덕이 나온다. 자전거를 타고 벌써 여러 번 지나온 길이지만, 아이는 자전거를 멈추고 연두빛 언덕을 바라보았다. 마치 이 푸른 언덕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온 것만 같았다. 다시 페달을 밟으며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아이스크림 트럭을 지나고, 두 개의 다리를 건넌 곳까지가 우리가 매일 달리던 구간이었다. 그 너머는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었다. 두 번째 다리를 지나고 나니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철길이 나왔다. 우리는 철길 앞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기로 했다. 자전거 바퀴가 작아 어른들보다 몇 배는 발을 더 굴려야 하는 아이는 지칠 만도 했지만, 헬멧을 고쳐 쓰고 다시 달려나갔다. 우리는 한동안 철길을 따라 달리며 몇 개의 큰 도로를 건넜다. 잠시 후 언덕이 시작됐다.



"하룬아! 이제 이 길을 쭉 따라 몇 킬로만 더 가면 벨기에 국경이야. 조금만 더 힘내!"


경사가 원만한 언덕이었지만, 언덕은 언덕이었다. 힘이 빠진 아이는 오른쪽에서 벗어나 자꾸 도로 중앙으로 밀려났다. 바퀴가 비틀거리면 맞은편 자전거와 부딪힐 수도 있기에 잠시 멈춰 쉬어갔다. 태양은 기세 좋게 우리의 헬멧을 달구었다. 지친 아이를 본 독일 할아버지는 엄치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응원을 해주었다. 벨기에 국경을 코앞에 두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힘들어도 조금만 더 참고 가다보면 벨기에가 보일 거라며 아이를 달랬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새힘을 얻은 아이는 다시 힘을 내어 페달을 밟았다.


"잠깐만 언니! 우리 벌써 벨기에 국경을 지난 거 같은데?"


'벨기에'라고 큼지막하게 쓰인 표지판을 기대했던 나는 이미 국경을 넘어 버렸다는 동생의 말에 잠시 멍해졌다. 동생이 가리킨 곳에는 독일을 뜻하는 D에 X표가 처져 있었고, B에는 아무 표시도 없었다. 그게 벨기에 땅이라는 뜻이었다. 극적인 변화를 상상했던 나로서는 꽤나 싱거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벨기에 땅을 처음 밟았다며, 선 하나 없는 두 나라의 국경을 신나게 넘나들었다.


"엄마! 나 벌써 벨기에에 사십 번이나 다녀왔어!"



우리는 기념 사진을 찍고, 집에서 씻어 온 토마토와 오이를 꺼내 먹었다. 두 나라의 국경에는 이 도로를 계속 달리면 갈 수 있는 도시들을 보여주는 지도가 세워져 있었다. 그 길은 룩셈부르크까지 이어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나와 아이는 약속을 했다.


"우리 다음 여름에는 룩셈부르크까지 기차 타고 갔다가 독일까지 자전거 타고 오는 거야!"


목표를 이룬 우리는 다시 철길을 지나고, 두 개의 다리를 건너고, 아이스크림 트럭이 서 있던 작은 마을을 지나고, 연두빛 언덕을 지나고, 숲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에 넣어둔 납작 복숭아와 수박을 꺼내 먹었다. 달고 시원했다.



서울로 돌아온 지금도 아이는 독일에서 자전거를 타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나 역시 두려움 없이 국경을 넘던 순간의 설렘, 자전거 길 양옆에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 수채화처럼 하늘 가득 번지던 노을, 그리고 자전거를 타며 가르던 바람이 문득 떠오른다. 여름을 지나며, 우리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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