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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Aug 09. 2024

우유사장님 고민

신중함과 우유부단함 사이에서 직원들만 g고생한다

얼마 전, 직장인 H형을 만났다.


H형은 중견기업 코스피 상장사에 다니며 영업팀장을 맡고 있다. (81년 생이다)


H형은 또 고민이 있다고 했다.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K직장인은 고민이 많은 거 같다. 하긴 나도 고민을 빼면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도 호모 고미누스 이니깐, 말모말모지 머...)


H형과 나Na 사이의 대화를 요약하면,



H: 나 답답해서 미치겠어.


Na: 왜?


H: 우리 사장 너무 우유부단해. (이하, '우유사장*')


Na: 전에는 젠틀하고 신중해서 너무 좋다며?


H: 그랬지. 근데 모든 일에 너무 신중해서 의사 결정이 안돼. 답답해서 미치겠어.


*우유사장: H형과 같은 81년 생으로 소위 준재벌 3세다. 미국에서 좋은 대학 나오고, 중국에서 MBA 후 컬설팅 회사를 잠깐 다녔다. 5년 전에 H형 회사 부장으로 입사해서, 1년에 한 단계씩 진급하는 놀라운 매직을 선보인 후, 작년에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H형은 연신 '답답해서 미치겠어'라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형, 답답한 건 알겠는데 미치지는 마. 회사에서 일하다가 미쳐버리면 너무 억울하잖아. 나중에 형 만났는데 침 질질 흘리고 눈동자 풀려 있으면 나 너무 슬플 거 같애. 건강하자 형. ㅠ)


우유사장의 특히 답답한 점은, 사소한 일까지도 의사 결정을 미룬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장점으로 보였던 신중함이, 이제는 우유(부단)한 단점으로 더 부각된다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그렇다면 좋게 포장하면 신중, 나쁘게 얘기하면 우유(부단)은 직장에서 어떤 문제가 있을까? 특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우유 할수록 그 문제는 심각해진다. (나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걱정 안 한다. 그냥 그 밑에 평범한 K직장인이 걱정될 뿐이다)


1. 시대에 맞지 않는다.


- 내가 이미 올린 글, <조선의 팀장 공부법>에서 인류 역사상 유례 없는 빠른 변화의 시대임을 강조했다.

https://brunch.co.kr/@humorist/98

궁금하신 분들은 클릭해서 보셔도 되는데(광고 아님), 바쁘다바빠 현대 사회이니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면,


지금은 'VUCA 시대'라는 것이다. VUCA는 변동성Voli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라는, 현시대의 상황을 표현한 네 가지 단어의 머리글자를 조합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 '한 치 앞을 못 보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세상'에서 회사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이 우유하다? 당연히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직원들 고생한다. 


2. 경쟁력 저하


빠르게 변하는 시장 환경에서는 신속한 의사결정이 당연히 중요하다.


우유함으로 인해 결정을 지연하면 경쟁업체보다 뒤처지게 되어 시장 점유율을 잃을 수 있다. 


우유사장은 태어나보니 사장이라서 잘 모를 수도 있지만, 흙수저 출신으로 기업을 일으킨 사장님들은 절대 우유 할 수 없다. 우유 했다간 당연히 기업을 일으킬 수 없었을 테니.


우유사장은 흙수저 출신 사장님께 배워야 한다. 안 그러먼 직원들 고생한다.


3. 기회 손실


새로운 기회는 종종 짧은 시간 내에 사라진다.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중요한 비즈니스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뜻이다.


기회를 놓치면? 직원들 고생한다.


4. 조직 내 불안감 조성


우유한 의사결정은 직원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다. 명확한 방향성과 리더십이 없으면 팀의 사기와 생산성이 저하된다. H형이 눈물을 글썽이며 미치려고 하는 것처럼 직원들 고생한다.


5. 리소스 낭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끌면 자원과 시간의 낭비로 이어진다. 이는 결과적으로 비용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다.


비용 상승하면 직원들 월급 깍으려고 할 거 아닌가? 그러면 직원들 고생한다.


6. 변화에 대한 적응력 저하


빠른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 의사결정을 지체하면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또 직원들 고생한다.


7. 시장 신뢰도 하락


파트너는 신속하고 명확한 결정을 기대한다. 우유한 태도는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비즈니스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 그러면 머다? 직원들 고생한다.


마지막으로, H형을 대신해 내가 우유사장께 드리는 편지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유사장님께,


우유사장님. 입사 4년 만인가 5년 만에 대표이사 사장님으로 승진하셨지요? 축하드립니다. (참고로, 일반 사원이 사장으로 승진하려면 30년쯤 걸릴 거 같습니다. 그것도 몇 백명의 경쟁을 뚫고 사장이 된다고 합니다)


사장님은 저를 모르지만, 저는 사장님을 조금 압니다. 특히 사장님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잘 압니다.


우유사장님. 제가 사장님을 직접 만나볼 수는 없기 때문에, 이렇게 지면으로 한마디만 조언하고자 합니다.

(저는 우유사장님 회사 직원인 H형을 좋아하거든요. H형이 미치지 않고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회사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귀하게 자란 환경과 성격 탓에 의사결정이 힘들면, 원칙을 세우고 권한을 위임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A B C D E가 있고, A B C는 어떤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크게 회사에 영향을 안 미치면 믿을만한 직원들에게 A B C에 해당되는 권한을 위임하면 됩니다.


만약 '직원이 실수하면 어쩌냐' 걱정이 앞선다면, 우유사장님 회사는 망해도 됩니다.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이 회사가 직원을 뽑았으면, 그 회사는 망해야죠.


그런데 다행인 것은, 우유사장님네 회사 직원분들은 훌륭한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H형도 매우 뛰어난 사람인데, H형이 매일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게 '우리 회사는 진짜 훌륭하고 좋은 사람들 많아. 사장님 빼고.'


이제 느낌이 오시죠? 우유사장님보다 몇 살 어린 듣보잡의 조언이니 무시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직장생활과 실전 사회경험은 우유사장님보다 제가 조금 더 많은 것 같습니다. ^^;;


그럼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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