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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Jun 27. 2024

젊은 라일라의 슬픔

@Afghan

다음은 어느 유명 소설가의 작품 <아들, 정당한 테러>의 한 부분이다.


아흐메드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평소와는 다르게 더 가까이 무너진 벽으로 갔다. 막바지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흐메드가 십 여 미터 정도까지 가까이 갔다. 이스라엘 군인이 아흐메드에게 소리쳤다.아흐메드는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마치 자기를 부르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래서 아흐메드는 더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서 저 벽 너머를 보고 싶었고, 그러면 궁금증이 풀릴 것만 같았다.

‘탕!’

아흐메드에게 소리쳤던 그 군인이 갈릴 소총으로 아흐메드를 쏘았다. 많은 총알도 필요 없었다. 딱 한발로 아흐메드는 죽었다. 무고한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죽인 그 군인은 이스라엘의 법정에 서서 다음과 같이진술했다.

“소년 테러범인줄 알았습니다. 벽 보수 공사를 하는데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충분히 경고를 하였음에도 다가와서 어쩔 수 없이, 교전 수칙에 따라 발포하였습니다.”

그 이스라엘 군인은 무죄로 풀려났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마친 라일라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진수는 라일라 오빠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몇 일전 느꼈던 그 거대한 운명이 자신에게 다가왔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라일라는 앞에 놓인 물을 한 잔 들이 키며 진수를 쳐다봤다. 물을 다마신 라일라는 멋쩍게 웃어 보이며, 자신의 긴 치마에 둘러 쌓인 왼쪽 무릎을 책상 밖으로 꺼냈다. 그리고는 검지 손가락을 구부려 무릎을 두드렸다.

‘퉁. 퉁. 퉁’.

분명 사람의 피부를 두드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라일라는 치마를 살짝 들어 보였다. 왼쪽 허벅지 밑으로 의족이 보였다.

진수도 용병으로 근무할 때 팔다리를 잃고 의수와 의족에 의지해서 남은 생을 살아가는 동료들을 꽤 보았지만 그런 경험이 있다고 쉬이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라일라는 의족을 보여주고는 말을 이었다. 마치 그것이 팔레스타인 인의 운명이라는 것처럼.

“제 오빠 아흐메드는 그렇게 죽었어요. 교전 수칙에 따랐다는 이스라엘 군인의 짤막한 항변에 누구의 잘못도 아닌 죽음이 되었어요.”

조용히 얘기하는 라일라의 목소리에서 진수는 절규를 느꼈다.  

이후에 이야기는 매우 간단하게 흘러갔다. 라일라와 아버지는 죽은 아들의 복수를 위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에 가입했다. 그 후로 라일라는 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위 소설은 사실 내가 연재 중인 소설의 일부분이다. (제목은 '아들, 정당한 테러'가 진짜 맞다) 소설은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의 난민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도 담고 있다. (내 기준으로는 아주 재미있으나, 그다지 구독은 많지 않다...)


소설 속의 라일라는 나의  아프간 파병과 이라크 경험을 더해 만든 가상의 인물이지만 실제 팔레스타인에서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이 있으리라 짐작된다.


라일라의 의족 얘기는 내가 아프간에서 실제 겪은 일화를 각색했다.


임무 수행을 위해 기지 밖으로 이동했을 때였다. 아프간 남성의 전통 옷 Perahan(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셔츠)과 바지를 입은 한 소년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자기의 오른쪽 다리를 두드려 보라고 바디랭귀지로 설명했다. 나는 마지못해 살짝 그 친구의 오른 다리를 두드려 보았다. 그 때 인간의 몸에서 플라스틱을 두드리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다.

<아프간에서 임무 수행 중인 글쓴이. 2006년.>


'퉁. 퉁. 퉁.' 의족이었다.


아프간은 전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지뢰 매설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한 곳이다. 1979년부터 10년간 이어진 소련-아프간 전쟁, 1990년대의 내전, 그리고 2001년 이후 미국 주도의 전쟁을 겪으면서 수많은 지뢰와 불발탄이 설치되었다. 지뢰와 불발탄으로 인해 많은 민간인들이 부상을 입거나 사망했고, 특히, 아이들이 지뢰를 장난감으로 착각해 다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내가 실제로 만났던 그 아프간 소년도 지뢰를 장난감으로 착각하여 불의의 사고를 당했으리라.


나는 왜 아프간의 지뢰와 눈물을 잊지 못하는가? 더 나아가 소설로도 남기려 하는가? 예컨데, 세계 평화와 같은 거대한 담론을 다루고자 함은 절대 아니다. 나는 그런 담론을 다룰 깜냥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대다수의 한국인이 경험 한 적 없는 일들을 경험했음으로써, 이를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뒤늦게 든게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나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하고 있는 중이다.


나의 아들 Hoya를 통해서. 그리고 책을 통해,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이 아닌 세계인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의 역할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로 우리들의 연대를 끌어내는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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