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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Sep 21. 2024

골프보다 수영이 좋은 이유

포도봉봉님께서 우울증은 수용성이라고 그랬어요.

본격적으로 마흔의 시대에 진입했지만 쉽지 않음을 느낀다. 이십 대와 삼십 대 때 그리던 마흔의 모습과는 차이가 크다. 안 좋은 쪽으로.

마흔이 되면 삶이 안정되었을 줄 알았다. 사회와 직장에서 어느 정도 지위와, 하차감이 좋은 외제차를 끌며, 서울에 괜찮은 아파트에서 아내와 아이와 함께 살 줄 알았다.


실제로 마흔이 되어 보니, 어느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다. 직장에서의 지위도 불안하며, 승차감이 그나마 나은 국산차(정확히는 국산 아내차)를 얻어 타며, 서울에 위치해 있지만 산 바로 밑에 30년 넘은 아파트에서 나이 많은 아내와 34개월 된 아주 어린 아이와 투닥거리며 살고 있다.


그렇지만 푸쉬킨 형님이 그러지 않았던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쁜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간 것 그리움이 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래!! 삶이 나를 속이고 있지만 나는 우울할 틈이 없어! 머라도 해야 돼! 그래서 머 할지부터 생각해 봤다. 그 시발점으로 아주 냉철하게 경영학적인 관점에서 SWOT 분석을 나에게 도입했다.


Strength(강점) : 없음

Weakness(약점): 너무 많음. 체력도 약함. 살도 많이 찜. 짜증도 많음. (하는 것도 없으면서) 시간에 항상 쫓김.

Opportunity(기회) : 나에게도 기회가??

Threat(위기) : 이러다가 다시 수면장애와 우울증을 겪겠어…


그렇다. 나는 지금 냉철한 경영학적인 분석 끝에 다시 수면장애와 우울증을 겪을 위기에 처했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머를 해야 되지? 하는 거 없이 바쁘고 시간도 없고…

그때 내가 존경하는 포도봉봉님의 수영 예찬론이 떠올랐다. 그래 나에게는 수영이 있었지… 수영이 있었어…

포도봉봉님도 그러지 않았던가 우울증은 수용성이라고… 우울증은 수영으로 꺼지라고.


*포도봉봉님, 허락도 없이 인용한 점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해해 주실 거라 믿고…)


https://brunch.co.kr/@hypatia/28


나의 수영 역사는 늦게 태동했다. 정확히는 29살에 1년 정도 집중해서 배웠다. 어렸을 때 여건과 여유가 되지 않아, 나이 먹고 배웠다.

수영을 배운 계기는 스킨스쿠버 때문이었다. 이라크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서른을 목전에 둔 나에게 내가 선물을 해주고 싶어 스킨스쿠버를 선물했다.

스킨스쿠버를 배울 때 나는, 수영도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아주 힘들게 배웠으나 결국 자격증을 땄다.


스킨스쿠버를 통해 바다에 입문한 나는 미친 듯이 바다가 좋았다. 한 달에 한 번 동호회 사람들과 동해로 바다로 남해로 바다로 오직 스킨스쿠버를 위해 떠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수영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호회 사람 중에 수영을 못하는 이는, 나 혼자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바로, 당시 다니던 회사 근처 영등포구립 스포츠센터에 수영을 두타임이나 끊었다. 새벽에 한 타임, 퇴근하고 저녁 한 타임. 참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하기 이를 때 없는, 치기 어린 나였다.


그 치기 어린 내가, 1년 정도 수영을 열심히 배워, 나중에는 영등포구립배 수영대회에 나가서 핀수영(오리발 수영) 2등을 했더랬다. 자신감에 취한 나는, 영역을 확장했다. 수영은 수영대로, 스킨스쿠버는 스킨스쿠버대로. 그리고 스노클링을 넘어 프리다이빙을 조금 배웠다. 바닷물과 수영장 왁스물에 아주 미쳐 살았드랬다. 벌써 10년 전 얘기다.


지금 그 수영이, 왁스물이 무척 그립다. (사실 바닷물이 그리우나, 나이 많은 아내와 34개월 아이를 두고 따로 동호회 사람들과 바닷물에 뛰어들 용기는 차마 없다…)

그래서 아내에게 정중하게 아주 격식을 차려, ‘나 수영 다시 하면 안 돼?’라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불규칙한 회사일(사실은 규칙적인 술자리가 더 문제다)과 가사 도우미 역할을 해야 되기 때문에 정규 수업반 등록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집 근처 뻐정(요즘말, 버스 정거장) 3개 떨어진 수영장에서 야심차게 자유수영권 10장을 할인해서 8만 원인가?(아… 미쳤다. 벌써 기억나지 않는다. 노화소름) 주고 샀더랬다. 그게 7월 10일이었다. 3개월 안에 쓰면 되는 자유수영권이었다.


설마 3개월 안에 10장을 못 쓰겠어? 설마 했는데. 두 달 하고 십일이 지난 오늘 살펴보니 무려 다섯 장이 남아있었다. (큰일인데… 지금 당근에 올리면 반값도 못 받을 텐데…)

그래서 아내와 어린 아이에게 다시 양해를 구하고 오늘 토요일 오후 그리고 내일 또 자유수영을 가려고 한다. (진짜 양해를 구했다)


한달도 안남았다… 두달하고 십일동안 다섯 번밖에 못가다니… 이 쓸모없는 내의지…


아내의 양해를 구한 나는, 뻐정 3 정거장 떨어진 수영장에 가기 전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실 평소 수영에 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존경하는 포도봉봉님처럼 잘 쓰지는 못하지만요 ㅠㅠ)

바로 ‘골프보다 수영이 좋은 점’. 회사에서 이제는 중간보다 조금 더 나이 든 세대에 속하다 보니 골프를 배우라는 압박을 많이 받는다. 고객사, 거래처, 그리고 회사 내부 사람들과의 친목 도모를 위해. 사회에서 성공을 위해!! 물론, 나도 정통 제조업에 속해있다 보니 골프의 필요성은 많이 느낀다. 그리고 사실 조금 배우기도 했고, 필드에도 나가봤다. (미얀마에서) 그런데… 진짜 문제는 너무 재미가 없드랬다. (같이 간 사람들이 재미가 없어서 일지도…)


골프가 좋은 운동임에는 확신한다. 드넓은 그린에서 천천히 자연감상도 하고 운동도 하는 이런 운동이 어딨겠는가? 하지만 들이는 시간과 돈과 노력에 대비해서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현재의 나는 강력히 판단하고 있다. 한국에서 아직까지 사회생활에 자신 있어서인지, 아니면 철이 덜 들어서인지 굳이 골프장에서 친목 도모를 안 해도 지금의 월급은 유지할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 물론, 언제까지 (골프 친목 없이)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좀 무섭기도 하다. 그럼에도 외쳐본다. 골프보다 수영이 좋다고.


무엇보다 수영을 배우고, 즐기면 확장 가능성이 크다. 스킨스쿠버와 스노클링과 프리다이빙도 확장 가능하다. 아래 사진은 지금의 아내와 몰디브로 신혼여행 갔을 때 아내가 찍어준 사진이다. (아 지금 다시 보니 전생 같구나…) 그때는 물밑으로 10미터 정도는 내려갔었다. 그리고 스노클링으로만 혼자서 한 시간 정도 바다에서 놀았다. (나중에 내가 하도 안 나와서 아내는 실종 신고를 하려고 했다. 신혼 여행지에서… 이거 실화다)


잠깐 보는 바닷속 말고, 1시간 정도 길게 바다에 몸을 맡기면, 육지에서는 보이지 않던 게 보이더라.


무엇이 보이지는 라고 묻고 싶으시죠? 직접 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몰디브 신혼여행지에서 실종신고 당할 뻔 했습니다. 바다가 좋아서.



p.s 이 글의 표지 사진은 몰디브에서 제가 직접 촬영한 만타가오리입니다. 사진은 보잘것없지만 마흔을 살아내면서 가장 잘한 일 중에 하나가 만타 가오리를 직접 찍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천명 전에는 꼭 혹등고래를 만나려고 합니다. (아내는 모르지만 계획도 다 짜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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