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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과 코리안 숭늉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by 바그다드Cafe

요즘 직장인들에게 계엄과 탄핵보다 더 뜨거운 이슈가 있습니다. 바로 환율입니다. 오늘 기준으로 1달러당 1,480원을 넘어 근래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우리나라 신사임당과 세종대왕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정치 불안이 가장 큰 이유이며, 이로 인해 국제적 경쟁력마저 잃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수출 기업들의 한숨 소리가 깊어지는 가운데, 우리의 일상 속 커피 한 잔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됩니다.


최근 읽은 <소비의 한국사: 우리는 무엇을 먹고 마시고 탐닉했나>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일상의 치열함은 커피믹스를 낳았고, 커피믹스는 다시 우리의 일상에 박차를 가했다. 1980년대 한 특별 기고가는 "자동커피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인을 자조했다. 아니나 다를까, 커피믹스 시장이 또 한 단계 확대된 시점이 바로 1997~1999년 IMF 시기였다는 사실은 한국인이 커피믹스로 자신을 채찍질해 왔음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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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커피가 우리의 생활에 들어온 지 70년이 지났다. 대관절 꽤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 가지 바뀌지 않은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가 각성을 권하는 사회라는 사실입니다.

<소비의 한국사> 중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 동대문과 구로의 노동자들은 쏟아지는 잠을 쫓으며 일하기 위해 커피를 마셨습니다.


IMF 위기에서도 서민들은 스스로를 자책하고 움츠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렴한 'IMF 커피믹스’를 마셔가며 열심히 금을 모았고, 나라를 구했습니다. 물론 기호식품으로 커피를 즐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노동을 위한 각성이 커피 소비의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고된 노동, 그 중심에는 항상 커피가 있었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요? 길거리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가게는 단연코 카페입니다. 1리터에 가까운 아메리카노를 손에 든 채 업무에 매진하는 모습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각성해서 일하고, 또 일하기 위해 각성합니다. 실제로 2023년 기준, 한국인 1인당 연간 405잔의 커피를 마셨습니다. 이는 전 세계 평균 152잔은 물론, 미국의 318잔도 훌쩍 뛰어넘는 수치입니다.


그 덕에 한국인은 커피의 쓴맛 못지않게, 커피로 잠을 쫓는 일에 익숙해졌습니다. 이제 커피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한국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환율의 고공 행진 속에서도, 평범한 우리는 여전히 커피와 함께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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