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경쟁력
지난 2월, '인생이 40대부터 실전인 이유'라는 글을 썼습니다. 40대 인생의 어려움에 대한 글이었죠. 조회수가 높았고, 댓글에는 공감과 위로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저처럼 많은 분들도 40대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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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생은 계속됩니다. 고단하다고 해서, 어렵다고 해서,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최근 저는 40대에게 희망이 될 만한 책을 만났습니다. 뉴진(New進)스님의 <얼마나 잘되려고>입니다.
"해외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인지 능력은 단계별로 정점에 달하며 학습 능력 및 기억력이 정점에 달하는 시기는 1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이지만 타인의 의도와 감정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분별하는 사회적 이해 능력은 45~55세에 정점에 달한다고 한다." <얼마나 잘되려고> 중에서
이 구절을 처음 읽고 희망이 생겼습니다.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실질적인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40대인 우리는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얻어가고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이어지는 설명은 더욱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해하겠지만 오랫동안 영향력이 지속되는 성취는 사람에 대한 본질적이면서도 복합적인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학습 능력이나 기억력은 40대 이전이 더 좋더라도 오랫동안 지속성을 가지는 성과는 사회적 이해 능력이 바탕이 되어 있을 때 성취하기 더 유리하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든 다음에 오는 복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경험치가 쌓이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진 뒤에 얻는 성취는 그 후 좌절과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현명하고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려 주는 이정표가 되어 줄 수 있다." <얼마나 잘되려고> 중에서
회사의 중간관리자가 되어보니 실감합니다. 사람은 말로만 움직이지 않죠. 표정, 맥락, 침묵 속 뉘앙스까지 읽어야 그 사람의 진짜 생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논리가 아니라, 공감과 통찰, 경험에서 비롯된 감각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예전에는 "나도 저 나이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 싶었던 것들이, 이제는 뼈로 체득됩니다. 누구에게 언제 말을 꺼내야 할지, 침묵이 필요한 순간이 언제인지, 불편한 상황을 어떻게 완충시킬 수 있을지—이건 20대의 열정이나 30대의 스펙으로는 알기 어려운, 세월의 데이터가 쌓여야 생기는 경쟁력입니다.
물론, 여전히 체력은 예전 같지 않고, 이직 시장도 녹록지 않으며, 자녀 교육비나 노후 준비는 늘 걱정거리입니다. 하지만 이젠 그 불안을 조금은 다르게 다루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당장 해결책은 없어도,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준비하는 방식이 조금 더 유연하고 단단해졌습니다.
뉴진스님의 글을 읽으며 제가 생각하는 40대의 경쟁력을 다시 정리했습니다.
첫째, 우리는 '사람'을 읽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다양한 상사, 동료, 부하직원을 만났습니다. 회의실에서 누가 진정성 있게 말하고 누가 허세를 부리는지, 어떤 동료가 신뢰할 수 있고 어떤 파트너가 위험한지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립니다. 누군가의 표정만 봐도 그 뒤에 숨은 진심을 알아차리는 능력, 이것이 40대의 첫 번째 경쟁력입니다.
둘째, 우리는 위기 대처 능력이 탁월합니다. IMF 금융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까지 다양한 사회적 위기를 겪으며 살아남았습니다. 회사에서도 수많은 프로젝트의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고, 개인적으로도 크고 작은 위기를 헤쳐왔습니다. 위기가 오면 패닉에 빠지기보다 "또 한 번 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 이것이 40대의 두 번째 경쟁력입니다.
셋째, 우리는 인내심과 끈기가 있습니다. 30대 때는 빠른 성과와 결과를 원했지만, 40대가 되면서 '과정'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당장의 성과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나무를 심고 물을 주며 천천히 성장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여유, 이것이 40대의 세 번째 경쟁력입니다.
넷째, 우리는 균형 감각이 있습니다. 일과 가정,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필요, 현재의 만족과 미래의 대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지혜가 생겼습니다.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중용을 찾아가는 능력, 이것이 40대의 네 번째 경쟁력입니다.
다섯째,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20대와 30대에는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려 노력했다면, 40대에는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의 약점과 강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포기할 수 있는 것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 이것이 40대의 다섯 번째 경쟁력입니다.
물론, 이런 경쟁력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40대가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랬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마냥 나이 듦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40대가 가진 특별한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실제로 긍정적인 면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니체는 "당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모든 '어떻게'에 견딜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40대인 우리는 이제 '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우리의 경쟁력이 되어, 앞으로의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40대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던 제가, 이렇게 40대의 가능성과 경쟁력을 이야기합니다. 모순된 것 같지만, 사실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어려움이 있기에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니까요.
40대의 우리, 인생의 실전에 뛰어든 우리가 서로의 경쟁력을 발견하고 나누며, 조금 더 단단하고 유연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만의 독특한 가치와 의미를 찾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