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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40대 직장인이 공부하는 이유

속도가 아닌 방향을 위한 공부

by 바그다드Cafe

며칠 전, 직장인의 공부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 글을 올렸습니다. 그럼에도 직장인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특히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일자리를 위협받는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는 더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직장인의 공부에 대해 썼습니다. 특히, 저와 같은 40대 직장인에게 공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힘줘서 썼습니다.

https://brunch.co.kr/@humorist/400


"이 나이에 뭘 또 공부야..."


한때는 당연하게 여겼던 공부가 이제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시험을 위한 공부, 취업을 위한 공부는 끝났다고 믿었던 나이. 40대의 직장인은 그렇게 '배우는 삶'의 중심에서 조금씩 멀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모든 것이 안정되어야 할 시기에, 다시금 공부가 생각납니다. 바쁜 하루 끝, 피곤한 눈을 비비며 스마트폰으로 강의를 듣고,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북으로 단어장을 넘깁니다. 대체 왜, 우리는 다시 공부를 시작할까요?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붙잡기 위해서


20대의 공부는 탈출구를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더 나은 회사, 더 높은 연봉, 더 안정적인 삶. 공부는 현실로부터의 '이탈 티켓'이었습니다. 하지만 40대의 공부는 그 반대입니다. 이제는 나의 일, 나의 커리어, 나의 삶을 '붙잡기 위한' 공부입니다.


변하는 기술, 늘어나는 후배, 점점 낯설어지는 업무 환경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지 않으면 나 자신이 점점 뒤처지는 기분이 듭니다. 공부는 이제 더 이상 이직을 위한 스펙이 아니라, '버티기 위한 생존 기술'입니다. 동시에 '나를 계속해서 움직이게 하는 추진력'이기도 합니다.


속도가 아닌 방향을 위한 공부


젊을 때는 빠르게 가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누구보다 빨리 승진하고, 빨리 성과를 내고, 빨리 인정을 받고 싶었습니다. 공부는 그런 속도를 높이기 위한 연료였습니다. 하지만 40대에 접어들면,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해집니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정말 맞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를 스스로 묻게 됩니다. 공부는 그런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됩니다.


심리학 책을 펼치며 사람과 그 사람이 이루는 세상에 대해 이해하려 하고, 글쓰기를 익히며 나만의 목소리를 찾고, 외국어를 다시 배우며 오래된 세계와 새로운 연결을 시도합니다. 목적지는 다 달라도, 그 안에는 공통된 방향이 있습니다. ‘내가 나로서 계속 살아가기 위한 공부’라는 점입니다.


아이에게 떳떳하기 위해서


지금은 겨우 기저귀를 뗀 41개월 된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이렇게 물어볼 것 같습니다.


"아빠 나는 오늘 또 새로운 것을 배웠어요. 아빠는 요즘 뭐 배우고 있어요?"


더 이상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에게 성적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지만,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아이 앞에서는 여전히 ‘배움의 자세’로 살아가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아이는 부모가 말하는 것보다 ‘어떻게 사는지’를 더 잘 배웁니다. 실패해도 계속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새로운 걸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를 물려주기 위해서 더 공부해야 합니다. 공부는 아이를 위한 교육이자, 나 자신을 위한 존엄입니다.


회사 밖에서의 나를 위해


회사라는 시스템은 참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뭔가 시켜주고, 평가해 주고, 동기부여까지 해줍니다. 하지만 회사 밖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아무도 공부하라고 하지 않고, 누구도 성과를 칭찬해주지 않으며, 내 발전에 관심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더 공부합니다. 회사가 아닌, ‘나의 이름’으로 살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해. 직책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직무가 아니라 존재로서 경쟁력을 만들기 위해. 이제는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어디서든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공부는 그 길로 향하는 작은 발걸음입니다.


배움 그 자체가 주는 기쁨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재밌어서. 어릴 땐 점수를 위해 억지로 했던 공부가, 지금은 놀랍게도 재미있습니다. 몰랐던 걸 알게 되는 즐거움,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눈, 머릿속이 조금씩 채워지는 그 기분. 어린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공부의 참맛을 이제야 알아가는 중입니다. 나이 든다는 건, 세상의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인정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공부는 더 이상 부담이 아니라 특권이 됩니다.


존 듀이의 철학: 평생 공부하는 삶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는 "배움은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계속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공부가 단지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일부라고 믿었습니다. 듀이는 "교육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탐구와 경험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이 철학은 40대의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조금씩 배우고, 계속해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이유는 단순히 기술적인 업그레이드를 넘어서,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깊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AI 시대에 끊임없는 학습의 중요성


특히 AI와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서, '배움'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직업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기술은 일상에 스며들어 우리의 일을 더 효율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지속적인 학습'입니다. AI가 처리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 창의성, 윤리적 사고를 끊임없이 키워 나가야 합니다. 평생 공부는 이제 단순한 자기 계발을 넘어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더 나은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방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다시 공부를 시작합니다


40대의 공부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10분짜리 강의 하나, 작은 필기 한 줄, 책 한 페이지. 하지만 그 작은 움직임이 나를 지탱합니다. ‘내일부터’가 아니라 ‘지금부터’, 더 빠르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더 깊어지기 위한 공부. 그렇게 우리는 다시, 배우는 사람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대 직장인이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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