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요? 네, 소설이요.
“소설이요? 그걸 언제 읽어요?”
AI 시대에 생산성은 신이 되었고, 효율성은 미덕이 됐습니다. 자기 계발서는 쏟아지고, 유튜브에는 ‘5분 요약’ 콘텐츠가 넘칩니다. 이 바쁜 세상에, 굳이 느릿느릿 소설을 읽는다는 건 왠지 낭비처럼 보입니다. 저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봅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소설을 읽어야 할 때입니다.
AI는 답을 잘 찾고, 우리는 맥락을 잘 읽어야 한다.
AI는 착실합니다. 정리도 잘하죠, 요약도 잘하죠, 말도 예쁘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 분위기가 왜 미묘하게 싸해졌는지까지는 잘 못 읽습니다. 이건 아직 인간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직장생활의 7할은 이 “분위기 읽기” 아니겠습니까? 이 능력을 기르는 데 의외로 좋은 훈련이 있습니다. 바로 소설 읽기입니다.
소설 속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말보다 표정, 논리보다 맥락을 먼저 읽게 되는 겁니다. 회의실 공기가 이상할 때, 괜히 예민해지는 상사를 볼 때,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힘. AI는 아직 이걸 못합니다. 앞으로도 한동안 못할 겁니다.
소설은 문해력이 아니라 ‘인간력’을 키운다.
얼마 전, 프로젝트 회의에서 일정 문제로 팀원들 간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서로 말은 조심스럽게 했지만,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긴장감은 분명했습니다. 그때 한 동료가 말했습니다.
“분위기가 싸하니 다들 커피 한 잔부터 하고 다시 얘기하면 어때요?”
그 말에 다들 웃으며 잠깐 화면을 껐고, 몇 분 뒤 다시 회의를 시작했을 때는 분위기가 확 달라져 있었습니다. 회의록보다 중요한 건, 가끔 이런 공기 전환의 센스입니다. 그 센스는 그냥 생기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을 자주 들여다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감각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감각을, 오히려 소설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생각보다 쓸모 있는 '상상력'
회사에서 상상력이 왜 필요하냐고요? 대체 가능한 기획, 전례 있는 아이디어, 시키는 대로 정리한 보고서. 이건 이제 AI가 더 잘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전례 없는 문제, 설명 안 되는 고객 반응, 처음 접하는 상황. 이럴 땐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힘. 전혀 다른 맥락을 엮는 유연함. 이 능력은 엑셀도, 파워포인트도, MBA도 안 가르쳐줍니다. 그 대신 소설은 천천히 알려줍니다.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인물의 삶을 ‘대리 체험’하는 것. 이보다 좋은 상상력 훈련은 없습니다.
결국, 경쟁력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회사에서 “기계처럼(혹은 소처럼) 일한다”는 말은 칭찬일까요, 아닐까요? 이제는 아닙니다. 기계처럼(혹은 소처럼) 일하는 사람보다, 사람처럼 일하는 사람이 살아남는 시대입니다. 그렇다고 감성팔이 하자는 게 아닙니다. 소설은 감성에 빠지게 만들기보다, 감정을 이해하는 사고력을 키웁니다. 그게 요즘 회사에서 진짜 필요한 능력 아닐까요?
오늘도 한 페이지, 꾸준히
그래서 저는 회사 화장실에서 소설을 읽습니다.
짧으면 5분, 길면 10분. (그렇다고 변비는 아닙니다)
생산성은 조금 줄었지만, 사람을 읽는 감각은 분명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감각이 제 업무에도 자주 쓰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께서도, 오늘 책 한 권 골라보는 건 어떨까요. 자기 계발서 대신, 오랜만에 소설 코너로 가보는 겁니다. 투자 대비 효과, 의외로 괜찮습니다.
*참고로 저는 최근에 홍콩 작가 찬호께이의 신작 <고독한 용의자>를 회사 화장실에서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