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앞에서

by 정용우

모닥불은 언제나 나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겨울이면 가족들이 모여 앉아 불을 피우고 그 앞에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떠오른다. 장작이 타오를 때마다 그 불꽃은 활력의 상징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뜨거운 불빛 속에서 무언가 따뜻하고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느꼈다. 불꽃 속에서 내 마음도 덩달아 활활 타오르며 세상과 하나가 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어린 시절의 그 불꽃은 나에게 삶의 가능성과 희망을 불어넣어주었다.


어느 날, 내 아들이 그런 기분을 나와 공유하고 싶었는지,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도구를 하나 사왔다. 그것은 가마솥에 세 개의 다리가 달린 화로였다. 공기구멍이 있어 불이 잘 일어나는 그 화로는 고기와 고구마를 구울 수 있는 석쇠도 달려 있어 아주 편리하게 사용될 수 있었다. 아들은 이 화로를 자주 사용했다. 친구들을 시골로 초대해 불을 피운 후 고기를 구워 소주를 한 잔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때의 불꽃은 그의 삶에 활력과 에너지를 주는 중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이 결혼하고, 아이들이 셋이나 생기고 나서는 그 화로를 사용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대신 대전에 사는 내 딸 가족이 그 화로를 사용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제 딸의 아이들, 내 손주들이 그 화로에서 타오르는 장작불을 바라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특히 초등학교 3학년인 손녀는 불꽃을 보며 즉석에서 시를 짓기까지 했다. 생각나는 대로 쓴 시였지만, 할아버지 눈에는 그 자체로 흐뭇하다. 손녀가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




불이 화르르르륵 화르륵

춤을 춘다

무지개 만들며

춤을 춘다

장작 무도회에서

춤을 뽐낸다




손녀가 쓴 시처럼, 손주들에게 불은 여전히 활력의 상징이다. 그들은 불꽃을 보며 꿈과 희망을 키워간다. 타오르는 불은 그들에게 뜨겁고 생명의 숨결 같은 에너지의 상징이며, 그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고 있다. 그 불꽃 속에서 그들은 미래를 향한 꿈을 키우고, 불타오르는 에너지 속에서 자신감을 얻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나는 불에 대한 시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제 나는 불꽃이 타오르면서 느껴지는 활력보다는, 그 불꽃이 사그라진 후 남는 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예전에는 불꽃의 강렬함만을 보며 즐겼다면, 이제는 그 불이 꺼지고 난 후 남는 재가 주는 교훈을 더 깊이 느끼게 된다. 불이 기세 좋게 타오르는 동안에는 그 에너지에 휘둘리기 쉽지만, 결국 불이 사그라지면 남는 것은 재일뿐이다. 나에게 이제 불은 더 이상 단순한 활력의 상징이 아니라, ‘소진’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그 재는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 생명으로 돌아오는 순환의 일부이다. 재는 텃밭에 뿌려져 땅을 기름지게 하면서 새로운 생명의 자양분이 되고, 그 땅에서 자란 식물들은 다시 후손들의 먹거리가 된다. 내가 손주들과 함께 불꽃을 바라보며 느끼는 것은 단지 소멸의 아쉬움이 아니다. 결국 불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명을 위한 시작으로 이어진다. 불꽃이 생명을 일깨운다면, 그 불꽃이 남긴 재는 새로운 생명을 위한 자양분이 된다.


장작불 앞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한 생각 피워낸다. 우리의 삶도 결국은 모닥불처럼 타오르다 사그라지는 여정이다. 한 사람의 일생은 순간순간 불꽃처럼 뜨겁게 타오르다가 언젠가는 재로 남는다. 그러나 그 소멸은 헛되지 않다. 한 사람이 살아가며 쌓아온 경험과 지혜는 불이 꺼진 후에도 여전히 남아, 후손들의 삶에 작게나마 빛이 되고 밑거름이 된다.


그래서 노년의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단지 남은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고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재가 대지를 비옥하게 하듯, 노년에 우리가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갈 때, 그것은 다음 세대에게 든든한 자양분이 된다. 장작불이 꺼지고 나서도 남는 따스함처럼, 우리의 삶도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온기를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도 장작불 앞에서 나는 불꽃을 바라본다. 그 불꽃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삶이 끝없이 순환하는 여정임을 이해한다. 불꽃이 타오르는 동안 그 속에서 얻은 활력과, 그 불이 꺼진 후 남은 재가 주는 교훈을 모두 품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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