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가 건넨 감격의 인사

by 정용우

가을이라 아내는 바쁘다. 기온이 선선해지니 친한 아주머니들과 단풍 구경도 가야하고, 요즘처럼 결혼식이 몰리는 철에는 친구‧친척 아들딸의 결혼식도 챙겨야 한다. 거기에다 논문 준비로 현장답사를 다니는 대전 딸의 빈자리를 대신해 손주들을 돌보는 역할까지 맡다 보니, 하루하루가 일정표처럼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분주한 틈 속에서 모처럼 진주 손주들을 보러 가게 되었다.


근 열흘 동안 할머니 얼굴을 보지 못한 진주 손주들은 아내가 집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가에서 쳐다봤다. 보통 때 같으면 쪼르르 달려와 할머니 다리에 매달리며 반가움을 표시하곤 하는데, 이날은 조금 달랐다. 할머니를 보는 순간, 어린이집에 다니는 손자 녀석이 갑자기 마루바닥에 턱 드러눕더니 양손으로 자기 오른쪽 발을 잡아 입으로 가져가는 기막힌 동작을 해 보였다. 마치 어디서 본 요가 자세를 응용한 듯한 몸짓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쁜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표현할 재간이 없으니 몸 전체를 동원해 반가움을 쏟아낸 것이다.


그 순식간의 몸짓을 보며 아내는 얼어붙은 듯 서 있다가 곧 얼굴이 환해졌단다. 모처럼 만난 할머니에게 보여준 손자의 ‘격한 인사’. 아이의 감격은 그 자체로 순수하고, 꾸밈이 없기에 더욱 뭉클했다. 지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아내는 그 장면을 몇 번이나 생각하며 감격스러워 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아내는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이 어린 손자의 격한 인사 방법을 그대로 몸소 재현했다. 나는 그 흉내를 재현하는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며 연이어 웃음이 터졌다. 아이에게는 온몸을 던진 인사였겠지만, 그 인사를 받는 할머니의 감격 또한 작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이런 격한 감격을 가끔씩은 겪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는 그런 감격과 조금씩 멀어져 있다. 나이를 먹고 생활이 굳어질수록 마음의 파동은 잦아들고, 웬만한 일에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놀라면 놀란 대로 마음을 활짝 여는 일이 점점 어색해지고, 감격이 찾아와도 속으로만 삭여버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감격이라는 것은 삶의 활력소다. 감격을 경험할 때 분비되는 도파민이나 옥시토신 같은 호르몬은 마음을 들뜨게 할 뿐 아니라 신체적 회복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문학에서 종종 ‘순간의 은총’이라 부르는 이 감정은 우리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고 느낄 때조차 삶이 여전히 열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러니 감격은 단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에 틈을 내어 우리를 다시 살아 있는 존재로 확인시켜 주는 신호탄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년에 접어들면 감격에 무뎌진다. 뇌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젊을 때보다 느려지고, 감정의 진폭을 조절하는 전전두엽의 기능 역시 조금씩 둔화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험이 쌓이면서 ‘웬만한 일은 다 겪어봤다’는 심리가 더해지면 감정의 문이 자동으로 좁아진다. 그러니 젊을 때보다 덜 놀라고, 덜 설레고, 덜 감동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감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의식적으로 감격을 훈련해야 한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늘 오가던 길가의 작은 꽃봉오리를 멈춰 서서 들여다보는 일, 혹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상대의 말에 작은 감탄이라도 곁들이는 일. 이런 사소한 연습을 통해 마음의 근육은 다시 부드러워진다. 어떤 이들은 고전 시 한 편을 소리 내 읽는 것으로 감정을 일깨운다고도 한다. 시 구절의 리듬은 생각보다 강한 감정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방 안에 8·15 해방 당시 태극기를 흔드는 사진 한 장을 걸어두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잊고 지낸 벅찬 순간을 일상 속에서 다시 마주하게 해 줄 것이다.


오늘 아내가 손자로부터 받은 그 격한 인사는 단지 귀여운 에피소드가 아니었다. 아직은 살아갈 날이 남아 있는 만큼 우리는 여전히 감격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손자의 몸짓 하나로 마음이 흔들린 오늘,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감격을 잊지 않으려는 결심, 늙어가는 대신 그렇게 조금씩 다시 살아나려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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