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리 Feb 12. 2024

[Musepen] 등산학개론

글. 강혜영 / 청계산 매봉 20240114

등산학개론


글. 강혜영(@thelovingway_)


청계산입구역에 도착하여 2번 출구로 나서는 나의 발걸음은 어쩐지 위풍당당, 당차고 가벼웠다. 지난 주에 이어, 고작 두번째인데 마치 자주 와본듯이 내 발걸음이 자꾸만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다. 처음 왔을 때, 미팅포인트가 어디일까 하며 두리번 거리면서 ‘처음 보는 얼굴이라 서로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지?’ 하며 조마조마 하던 나의 마음은 어디로 간 것일까? 대학교 2학년이 되어 신입생을 맞이할 때 꼭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중도(중앙도서관), 자쪽(자연대 쪽문) 등 별 거 아닌 대학생들만의 은어를 안다는 것만으로도 우쭐하며 신입생들에게 알려주던 그런 기분 말이다. 


청계산의 두번째 코스는 ‘매봉’ 행이었다. 이제와서야 지도를 보며 알게 된 것인데, 처음 갔던 청계산의 옥녀봉은 375m였고, 매봉은 582m이다. 출발할 때만 해도 ‘지난번엔 오른쪽으로 갔으니까, 이번엔 왼쪽으로 간다.’ 정도만 인식했던터라, 우리 눈 앞에 어떤 험난함이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돌이켜보니,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진 눈덮인 계단을 밟으며, 출발 직전의 위풍당당했던 발걸음은 이미 온데간데 없고, 매봉까지 어떻게 나아가지 싶은 막막함과 아찔함만 마음에 가득했다. 대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늘어가는 전공수업의 압박과 진로에 대한 걱정이 동시에 겹쳤다고 할까? 아직 갈 길은 먼데 벌써 숨은 가빠오고 머리는 어지러웠으며, 두 다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아직 녹지 않은 계단을 디딜 때마다 미끄러워 넘어질 것도 같았다. 


두려웠다. 


그 순간 떠오른 건, ‘감정은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통제하고 해소할 수 있다’는 문장이었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명상의 가장 기본 지침이자 궁극적 목표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간절하게 이 문장을 지금 내가 봉착한 위기에 적용해야만 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나는 지금 좀 겁을 먹은 것 같아. 그럴 수 있어. 그리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지? 아직 처음이라 그래. 너무 애쓰지말고, 그냥 한 걸음씩만 내 속도대로만 가보자. 다른 건 생각하지 말자. 가다가 너무 힘들면 멈춰도 괜찮으니까. 일단 가보자.’ 어느새 하지 못할 것만 같던 마음은 잠잠해지고 그저 묵묵히 걷는 내가 있었다. 그제서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같이 올라가던 등산객분과 대화도 잠시 할 수 있었다. “내가 여기 예전에 자주 와서 잘 아는데, 지금만 힘든거에요. 딱 10분만 가면 완만한 길이 나와요. 정말 이제 금방 도착이에요.” 라며 응원의 말씀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그 말씀 후에도 30분은 더 갔던 것 같은데, 그래도 그 말이 힘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매봉에 도착해냈다. 


그리고 내려가는 길, 내가 힘들어했던 딱 그 똑같은 지점에서 힘겹게 올라오고 계신 등산객에게 같은 말을 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여기서 10분만 가면 도착이에요. 정말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힘내세요.” 라고. 희망고문을 드린 것 같아서 죄송하면서도 이 말이 매봉까지 가는데 조금은 보탬이 될 것이란 생각에 또 뿌듯한 마음이 교차했다. 


내려가는 건 당연히 올라갈 때보다는 금방이었지만, 난이도로는 올라가는 것보다 딱 1.2배 힘들었다. 땅이 얼어 이미 미끄러운데 내리막길이니 다리에 더욱 힘이 들어갔던 것이다. 그래도 결국 끝까지 내려왔다. 


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다르다. 오며 가며 서로를 응원하고 다정한 말을 아끼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교감과 편안하고 느슨한 연대속에서 소통이 오고간다.


그리고 오늘 나는 더더욱 혼자가 아니었다. 함께 등산한 musepen 멤버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선/후배, 동기사이가 그러하듯, 별다른 준비가 없었던 내게, 등산용 스틱을 빌려준 사람이 있었고, 오히려 두려움을 좀 내려놓고 ‘턱턱’ 발을 가볍게 디뎌야 넘어지지 않는다며 조언을 해주고 앞 길을 봐주던 사람이 있었으며, 끝까지 기다려주고 함께해주던 사람이 있었다


올라간 것도 나고 

내려온 것도 나지만

혼자 해낸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오늘 배운 건, 

#겸손은힘들어 #감정알아차리기 #희망고문의선순환 #넌혼자가아니야 #등산학개론



https://youtu.be/FiC5NNEhDME?si=Y1WDiib8VPmHFC10



▶ Musepen 소개

M 마운틴

M mingle mingle

Muse 영감

Pen 글쓰기


* 산을 오르며 밍글밍글 네트워킹하고 영감을 받아 각자 본인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사람들

* 안해본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안가본데 가기 컨셉으로 매주 등산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며 느낀 감정과 창의적인 생각을 기록에 남기려 합니다. 저희의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분들은 관심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 글쓴이 (소개)

▶ 심진우: 사랑하는 사람들과 예술을 나누고 즐기는 공학박사 / Instagram: @dr_art_jinwoo

▶ 안동현: 블록체인 AI 스타트업 대표, 풀스택 개발 /Instagram: @donghyunahn

▶ 김 비: 연극이 좋고 예술이 좋고 귀중한 인연을 놓지 않는 김 비 / Instagram: @bibirain

▶ 강혜영: 마음운동장 대표, 명상지도사 / Instagram: @thelovingway_ / @mindfulground

※ Musepen 소식 공유 (등산, 전시, 모임 등)를 받고 싶으신 분들은 카카오 오픈채팅방에 참여해 주세요 / 카카오 * * 오픈채팅방을 통해 소식을 공유해 드립니다.

https://open.kakao.com/o/gRiB5Qle

* 오픈채팅방이 부담스러운 분들을 위해 이메일 주소를 남겨 주시는 분들에게도 블로그를 쓰면 공유 드리겠습니다.

이메일 구독, 구글설문폼 링크: https://forms.gle/cNY9Zb828Xz1sn3X8  


이전 09화 [Musepen] 雪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