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그저 나의 시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차원이 다른 행복한 삶
나는 재직 중인 회사에서 ‘육아휴직 급여 사후지급금’을 받은 첫 번째 엄마이다. 회사는 업력이 35년으로, 나랑 똑같은 해에 태어났는데, 육아휴직 후 복직하여 6개월 이상 근무하면 받을 수 있는 육아휴직 급여 사후지급금을 받은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다. 규모 100명 내외 중소기업임에도 육아휴직 후 ‘필드’로 돌아온 사람이 35년 동안 한 명도 없었다. 이 사실은 우리 사회가 그간 ‘아이를 낳은 일하는 여성’에 대해 얼마나 냉정한 눈초리를 보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사회는 냉랭하다. 2018~2022년 육아휴직자는 31만 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34.1%가 휴직 후 퇴사했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때 생긴 ‘출산휴가’는 생긴지 7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2020년이 되어서야 ‘육아휴직통계’가 생겼다. 즉, 저출산이라는 엄청난 과제를 만난 뒤에야 사회가 뒤늦게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우리 아들을 만난 2021년에 함께 태어난 친구들 숫자는 26만 500명으로(회사와 내가 태어난 해인 1988년에 세상의 빛을 본 63만 명의 또래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2021년 출생아 부모 중 육아휴직을 한 사람은 7만 6천명, 2021년이 되었음에도 출생아 100명당 출생아 부모 중 육아휴직자 수는 29.3명에 불과하다. 엄마도, 아빠도 육아휴직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회에 ‘아이를 낳은 일하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모성보호 9대 권리」와 괴리가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이러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두 돌을 갓 넘긴 아들 하나를 둔 워킹맘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지 열거하는 것이 지극히 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낳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수많은 일을 다시 할 수 있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누구보다 자신 있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있는 삶을 선택할 것이라 당당히 말할 것이다.
아이가 있는 삶은 특정 순간이 행복한 것이 아니다. 아이가 그저 나의 시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차원이 다른 행복한 삶이다. 아이가 없었을 때는 당연히 상상하지 못했던 감정이지만, 이를 한 번 느끼고 나니 억만금을 주더라도 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음을 이제는 절절히 안다.
나는 누군가에게 육아하는 삶을 설명할 때, 가수 이효리씨의 인터뷰에서 나온 말을 인용한다. “행복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기분인데, 그 넝쿨이 집 지붕을 뚫고 들어온다”는 문장을. 그렇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아이가 잘 때만 나의 자유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아기가 아픈데 누군가 맡아줄 사람이 없으면 회사에 업고 가서 일해야 하나를 잠시지만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로 엄마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요소는 널려있다. 지하철 환승을 재깍재깍 하지 못하면 아기를 데리러 가는 시간이 5분 늦어진다는 사실이 나를 어찌나 초조하게 만들던지, 언제부터인가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역 4-1 플랫폼에 붙은 시를 싫어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그 시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발 빠른 환승에 실패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 아기를 데리러 갈 때 9시간 만에 얼굴을 본다는 설렘, 떨어져 있는 동안 아기가 어떻게 지냈다고 사진과 함께 오는 K노트의 빨간 알람, 아기를 데려가는 계절이 늦봄에서 초가을이어서 해가 떠있을 때 – 밝을 때 하원 후 놀이터에 가서 미끄럼틀을 같이 탈 수 있다는 기적 같은 일 -, 딩동- 어린이집 문을 여는 순간 서 있는 엄마가 너무나 반가워 팔을 벌리면 웃으며 뛰어오는 그 자그마한 동동거림에 비하면 설사 넝쿨이 집 지붕이 아니라 집 서까래를 부셔버린다 해도 차원이 다른 행복감이 성큼 다가오는 소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진다.
특히, 아기가 두 돌쯤 되니 한밤 자고 일어나면 어제와 다른 아기가 있다는 것이 매일 새롭다. 걸음마가 약간 느려 걱정했는데 그 걱정이 무색하듯 갑자기 혼자 서고 일주일 만에 걸음마 비슷한 흉내를 냈던 14개월 즈음은 아기의 성장이 너무나 눈부셔 아기가 잘 때마다 ‘이 조그만 발로 걷다니’ 하며 보드라운 발만 만져도 감동이었다. 이응 발음과 미음 발음을 합친 “음마”라는 두 음절이 “엄마”로 또렷해진 날에는 ‘진짜 내가 엄마!’라는 수 만개의 느낌표가, 나라는 존재가 인간으로서 한 차원 고양되었다는 사실을 절로 느끼게 했다. “휴지 가져다 줄래?”에 아장아장 걷더니 휴지를 가져다줘서 아기를 와락 껴안은 날은 또 어떤가. 지금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황진이의 시처럼 ‘이 순간을 버혀내어’ 다시 돌아오고 싶은 순간 리스트에 차곡차곡 정리하는 일도 엄마로서 가지는 특권 중 하나이다. 매일매일 “우리 아기 언제 이렇게 컸어”, “에구구 많이 컸다”는 말을 하게 되는 삶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아기가 있기 전까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리라.
지금까지 차근차근 자신의 페이스에 맞게 성장한 아기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지켜보는 일도 엄마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질문이다. 신생아 때는 없던 눈썹이 태어난 지 4주 쯤 지나 아빠의 눈썹 윤곽이 드러나고, 3개월 뒤에는 아빠랑 똑같이 생긴 눈썹 산이 그려졌던 것처럼 어떤 일은 거울을 보듯 부모를 똑 닮았을 것이고, 또 어떤 일은 생판 남인 듯 전혀 다른 행동을 하며 커갈 것이다. 그 사이사이에, 집에서는 로봇청소기를 돌리는데 저런 빗자루질은 어디서 배운건지 의아해하는 부모가 있고, 빗자루질을 끝내자 대형 밀대를 꺼내 집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미래에 하키를 할 것 같다, 컬링을 하는 것 아니냐 농담을 던지는 부모도 있을 것이며, 모든 일을 마치고 쪼르르 엄마아빠 곁으로 돌아와 예의 뿌듯한 표정을 짓는 두 돌짜리 아기도 있을 것이다.
이러하니, ‘비록 사실은 그러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를 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말 뜻처럼, 굴러오는 넝쿨에 집을 통째로 바칠 지언정 두 팔 가득 자그마한 넝쿨을 안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곳곳에 뽀뽀를 할 수 밖에 없는 차원이 다른 행복감이 아기가 있는 삶입니다, 라며 말할 수 밖에.
2023년 4월 17일은 중요한 일정들이 많이 겹친 날이었다. 이 중 하나가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행복한 엄빠' 공모전의 마감날이었다. 주제는 많았고 욕심도 많았지만 여러가지 일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17일, 이직 면접을 보기 위해 오후 반차를 내고 지하철에서 오며가며 몇 자 쓴 것으로 공모전을 냈다. 제출한 시간이 17일 오후 11시 45분쯤이었으니 진짜 막차를 탄 셈이었다.
결국 입선에도 들지 못했고, 쓰면서도 주최 측이 원하는 에세이 스타일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후회는 없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 2023년을 사는 내가 나의 지금 속에서 생각하는 바를 썼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들이 나를 다시 도움닫기하게 만든다. 때론 조회수도 팍 오르고 누가 많이 보았으면 좋겠단 생각도 든다. 그러나 역시 본질적으로, 글쓰기가 날 위한 행위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위 에세이를 쓰면서, 그리고 결과를 즐겁게 기다리면서 생각했다. 보잘 것 없는 나의 글쓰기가 날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인 것을.
어차피 또 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