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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아 Jun 28. 2024

정말 요즘, 러닝이 대세일까?

여러 데이터로 살펴본 러닝 열풍의 실체

  얼마전 서울달리기 대회 접수에 "실패"했다. 서달은 커녕 마라톤 대회 접수를 실패해본 적이 없는데. 인피니트 콘서트도 새벽에 취소표를 줍줍하고 어떻게 예매대기에 예매대기를 거듭해서 가는데. 마라톤 대회 접수를 실패하다니. 임신 9개월 기념으로 11km 뛰려고 했는데!


  이번 서달 접수가 서버 문제인지 만 천여명이라는 참가자가 너무 적어서인지의 문제를 떠나, 나의 달리기 친구들은 그 원인으로 한 사람을 지목했다. "기안84 때문이야."


우리의 마라톤 대회 접수 실패가 정말 기안84 때문일까?



  기안84. 그는 누구인가. 2023년도 초반부터 여행 예능으로 기세를 모으더니 그 해 가을 끝내 첫번째 풀코스 완주를 나혼자산다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명실상부 예능 대상 자리를 꿰찬 사람 아닌가! 난 그가 달리기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고 있었다. 나혼자산다에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서울에서 인천까지 56km를 1박 2일로 뛰어간 그의 열정. "달리기 안했으면 죽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가 달리기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기에 그의 첫 풀코스 날짜, 10월 8일을 같이 기다렸고 당일에는 그의 완주 소식을 오후 내내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나혼자산다를 통해 보여준 여의도러닝크루(YRC)에서 뛰는 모습부터 풀코스 완주까지, 해당 장면을 보며 달리기 친구들끼리도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모두가 공통으로 한 말. "지금 달리러 가고 싶다". 그만큼 그의 달리기는 모두에게 '나도 뛰쳐나가 달리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다. (나혼자산다가 금요일 밤 11시 넘어서 방영한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


  원래 뛰던 사람들에게도 순수하게 전해졌던 그의 달리기 진심이 전혀 뛰지 않던 사람들, 달리기를 마음에만 품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친걸까? 코로나19때도 주로에 나서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음을 느꼈는데, 최근 나뿐만 아니라 '원래 달리던 사람들'이 체감하는 달리기 열기는 그보다 더 큰 듯하다. 진짜일까?



스몰데이터(설문조사)가 말해주는 러닝 열풍


  2023년 2~7월 갤럽 조사 및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조깅·달리기 연간 경험률(최근 1년 내 경험)이 2021년 23%에서 2023년 32%로 무려 9%p 증가했다. 이 말을 쉽게 풀어보자면 우리나라 사람 100명 중 21년에 조깅·달리기를 한 사람이 23명이었다면 2년 사이 9명이 더 늘어 32명이 된 것. 만약 위의 서달 참가 인원을 이해하기 쉽게 1만명이라고 가정하다면, 2,300명이랑 접수 경쟁을 하던걸 3,200명이랑 하게 된 셈이니 내가 제쳐야할 경쟁자가 900명 가까이 늘어난 셈. 앗챠! 조금만 늦게 들어가도 내 자리가 900등은 밀리는 셈이니 접수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하하..)


  갤럽 또한 조깅·달리기의 연간 경험률의 증가에 대해 "최근 가장 빠르게 저변이 확대된 종목으로 남녀노소 두루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를 성별과 연령별로 따져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남성(36%)과 여성(27%), 10대(38%), 60대 이상(27%)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결국 전연령대에서 모두 조깅·달리기를 즐겼다는 의미가 되니 마라톤 접수가 왜 어려워졌는지가 단번에 이해가 된다.


  좀 더 자세히 '한 달 내 경험'으로 살펴보면 조깅·달리기 경험률은 15%가 되는데, 등산 및 자전거(각 12%)를 앞서는 것은 물론 등산의 남성(15%), 자전거의 남성(19%)과 비교했을 때 조깅·달리기의 남성(15%)은 큰 차이가 없는데다가 등산의 여성(9%), 자전거의 여성(5%)과 조깅·달리기의 여성(13%)을 비교하면 그 차이가 두드러진다. 전연령대에서 조깅·달리기에 매진(?)하지만 역시나 여성의 참여가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타 스포츠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또한 시간상 기안84의 풀코스 대회 준비가 방송되기 이전에 조사된 거니 기안84의 영향력은 크지 않을터.


한달 내 경험을 보더라도 조깅·달리기의 고른 경험률을 뛰어넘는 아웃도어가 없다. 특히, 여성X연령별 수치를 보라!


 마침 2024년 5월, 갤럽에서는 친절하게도 '한국인이 좋아하는 취미'를 조사한 적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운동·헬스를 꼽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즐겨하는 취미로 운동·헬스를 꼽은 사람은 7%로, 2004년 대비 1.8%p 증가했다.


  에게게. 1.8%p 증가는 조금 아쉬워보인다. 그럼 좀 더 깊게 들어가보자. 한국인이 즐겨하는 운동을 물었더니 달리기·마라톤의 인기는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시들해진다...고 볼 수 있지만, 잘 보면 보기 묶었던 게 달라지고, 2014년에는 어떤 보기에도 '달리기'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2024년에는 '달리기'가 단독 보기로 바뀐데다가 순위권에 들었다. 갤럽의 조사는 1,777명을 대상으로 하여 모집단(대한민국 인구)를 대표하기 부족함이 없으니, 5천만명 중 3.4%라고 따지면 대충 달리기 인구가 나온다. 그럼 숫자는 170만명!


  그리고 달리기의 전체값 3.4% 중 성별 응답을 보면, 남성은 3%, 여성은 4%로 나왔다. 심지어 연령별로는 2030이 5%가 나와 50대 이상 2%, 50대 4%보다 높게 나왔다. 달리기가 어르신 운동이라는 통념을 깨주는 결과다. 심지어 여성 13~18세 및 여성 30대는 7%다. 내 또래이기도 한 주민등록기준 30대 여성은 약 314만명. 이 중 7%면 21만명 정도이니 인기가 없다고 할 수 없다! 21만 명의 내 동지들은 오늘도 열심히 주로에서 땀 흘리고 있을까?


달리기 인구는 170만 명, 내 또래 30대 여성의 달리기 인구는 21만 명으로 추산된다.


  기안84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려면 동일한 내용의 시계열 조사를 분석해야겠지만, 거기까지 보지 않아도 대강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지금은 달리기 인구가 많다. 그것도 젊은 러너들이!



빅데이터가 말해주는 러닝 열풍


  그럼 러닝, 달리기는 온라인 상에서 얼마나 언급될까? 썸트렌드를 살짝 이용해보았다.(유료 버전이 아니라 분석에 한계가 있다.)


  지난 일주일 분석 결과, 러닝은 '운동', 하루', '메이트', '아침', '대회' 등의 키워드와 함께 언급되었다. 특히, '하루', '아침' 등의 키워드가 눈에 띄는데, '아침 달리기와 저녁 달리기 중 뭐가 좋으냐'부터 '오늘 하루를 러닝으로 마무리했다'는 글이 많다. 이 의미는 아침에 하든 저녁에 하든 '달리기는 나의 하루에 빼놓을 수 없는 루틴'이라는 의미일 터.


  '대회'와 같이 꼽히는 글에는 대회 후기가 많다. 트레일 러닝 대회, 하프마라톤 후 새로운 도전, 마라톤 대회 참가 후기. 즉, 매일 달리기를 하다보면 달리기가 재밌고, 내 실력이 쌓이는 걸 느끼게 되고, 달리기를 막 시작한 누구라도 '대회에 나가볼까...?'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운동이라는 달리기의 특징이 빅데이터 속에 숨어 있다.


빅데이터에서 언급되는 '러닝'은 나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루틴이자 실력을 쌓으면 대회에 나가 점검해볼 수 있는 이미지

  

  그런 의미에서 매일 동네를 달리던 기안84도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기 위해 풀코스에 도전했으니 이러한 경향은 비단 기안84뿐만 아니라 러너라면 누구나 있는 듯 하다. 지금 달리기 인구가 과거에 비해 늘어났으니 그들이 대회장으로 몰리는 것도 당연하고. 또한 앞에서 본 것처럼, 이제 러너들은 젊다. 크루 활동을 통해 모르는 사람들과 달리기로 친해지는 것이 어렵지 않고, 크루가 없어도 쿨하게 '혼뛰'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세대다. 그런 그들이 대회에 나가 나의 정체성이 된 '러너'를 뽐내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를 말해주는 기록도 있고, 나의 OOTD를 말해주는 사진도 있고, 빵도 있고, 공연도 있고....


  이제 '러너'라면 동네에서 뛰는 건 성에 안 찬다. 러너 정체성은 '대회'에 나가줘야 완성된다.


달리기는 부정 언급이 더 많은 운동이다. 달리기는 원래 힘들어요. ㅎㅎㅎ


주가마저 말해주는(!) 러닝 열풍


  매일경제 6월 23일 보도**를 보자. 마라톤 대회 접수는 최근 '1분컷'(1분 만에 마감된다는 말)이라는 말을 듣고, 네이버 밴드에 '러닝과 걷기'를 주제로 삼은 모임이 3년새 77% 증가했다. 이런 경향은 해외도 마찬가지인지 2025년 영국 런던 마라톤 대회 참가 신청자 수는 90만 명을 기록, 4월 참가 신청 수 58만 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 심지어 나이키, 아디다스가 아닌, 일반인들을 잘 모르는 러닝화 브랜드의 주가가 연일 상승세다.신발브랜드 ON을 판매하는 '온러닝' 사는 25달러 수준에서 43달러 수준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미리 사둘걸...

  

  특히, 최근 대중적으로 주목도가 높은 브랜드는 호카오네오네와 온. 일찌감치 두 브랜드를 모두 신어본 나로선 새로운 브랜드 활약이 반가운데, 그만큼 러닝화 시장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특히 온은 꼭 신어보시라. 가격도 가성비 높은 쿠션화에 비해 2배지만 왜 2배나 더 받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2019년에 처음 접했는데, 그 때 사두면 좋았겠네..ㅎ


마치 된 것 같아 달리기


  아쉽게도 기안84로 인한 달리기 열풍의 실체를 알아보기에는 공개된 데이터에 한계가 있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알 수 있던 지점이 있다. 전세계가 고물가로 가성비 좋은 달리기에 주목하고 있고, 코로나19때 골프나 테니스치던 젊은 세대가 달리기에 눈을 돌렸으며, 그 덕분인지 예상보다 달리기 인구가 상당하고, 원래 달리기를 하던 사람들도, 새롭게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들도 모두 대회에 나가 자신의 '러너' 정체성을 획득하고자 한다는 점.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은 앞으로 달리기 대회 접수는 우리의 예상보다 더 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ㅎㅎ 바로 얼마 전, 2024년 춘천마라톤 접수가 예년과 다르게 급속도로 마감되었다. 나의 사랑 춘마는... 서울에서 멀어서 바로 마감된 적이 없는데 ㅠㅠ


  들어오는 사람은 있어도 나가는 사람은 없는 운동, 달리기. 이제는 트랙이나 장거리 훈련이 아니라 티켓팅 훈련을 해야 하나봐...ㅎ(하면서 미소를 감출 수 없다. 좋아요. 저랑 함께 달립시다!)


대회 접수에 실패한 러너들은 산으로 쫓겨가는가.
그리고 남겨진 숙제. 원래 달리던 중장년층이 대회 접수를 못해 못나가고 있다고 하네요.


*매일경제 6월 23일 보도 : https://share.newming.io/ZsUU 

**한겨레 23년 11월 24일 보도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1771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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