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는 세상을 박차고 나오는 여자들에 대하여
러너로서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운동이 삶에 스며든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는 점이다. 그들의 얼굴은 대체로 밴질밴질하고 빛나는데, 주기적인 운동이 얼마나 사람 얼굴에 혈색을 돌게 하는지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게다가 대체로 부지런하다. 좋아하는 빵이나 곱창전골, 치맥을 같이 먹자하곤 그냥 먹긴 약간의 죄책감이 드니 굳이 5km를 달리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뛰고 둘러앉아 맛있는 걸 나눠먹고 거기에 술 한 잔 곁들이며 오늘의 달리기가 어땠나, 작년 대회는 어땠다, 올해 대회는 풀코스를 나가니 마니 하며 오로지 달리기만 가득한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온갖 근심과 피로가 싸악 풀리는 느낌이 저절로 든다.
이러한 사람들 중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종족들은 단연코 ‘운동하는 여자들’이다. 단순히 레깅스 위로 드러낼 복근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물론 이 또한 운동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다) 운동이 삶에 스며든 사람들, 그리고 스며들기 시작한 사람들.
SBS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이 흥행한 뒤 출판계에도 운동하는 여자들을 주목하는 신간이 많았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김혼비), “여자야구입문기”(김입문) 등. 항간에는 운동하는 여자를 두고 ‘맨스플레인’에 대항하는 프레임을 씌우기도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특징은 명확히 다르고, 특히 한국은 생활체육에 대한 인식이 확산된 지도 몇 년 되지 않았다. 남자아이들이 축구를 할 동안 여자아이들은 스탠드에 앉아 있는 것이 당연했고, 남자아이들 모두가 축구를 하자고 독려 ‘받을’ 때, 여자아이들은 공에 관심 있는 몇몇만이 피구를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사회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20대 중후반 여성들이 자신이 좋아할 수 있고, 자신의 몸에 맞는 운동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때문에 코로나19를 거치며 러닝, 골프, 테니스 등 다양한 운동의 진입장벽이 낮아진 것이 꽤 괜찮은 일이라 생각한다. 야외 필드 운동 뿐 아니라 실내 운동 또한 여성들에게 많이 자리 잡았는데, 그 중 하나가 ‘크로스핏’이다.
그럼 크로스핏 정말 여자들이 많이 할까? 소셜데이터 분석 프로그램 ‘썸트렌드’를 이용해 22년 1월부터 23년 1월까지의 ‘크로스핏’의 연관어를 살펴보았더니 1위가 ‘운동’(약 2만3천여건), 2위 ‘다이어트’(약 7천건), 그리고 15위에 ‘여자’(약 2천건)가 등장한다. 대부분의 바이럴이 #여자운동 #여자크로스핏 해시태그에서 발생하는 것을 보았을 때 여자 운동으로 홍보하는 것이 대세가 된 모양새이다. 한 크로스핏 체육관(‘박스’라 부른다)은 Q&A를 통해 여자 회원이 40%라고 썼다. 일반화할 수 없겠지만, 크로스핏 인구 10명 중 4명은 여성이라는 이야기이다. 즉, ‘운동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첫 번째로 크로스핏터 상달이를 선택한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셈이다.
https://blog.naver.com/sbfor/222932079663
이 글을 쓰는 계시라도 내린 것인지 연관어 분석 중 글을 하나 클릭했는데, 상달이가 다니는 박스다. 이런 우연이 놀랍고도 신기하다. 참고로 상달이가 다니는 박스 회원 40%가 여자다.
상달이는 동갑내기 러닝 동호회에서 만났다. 22년 4월부터 거의 입단(?) 수준의 활약을 보여주며 러닝 동호회 소모임인 ‘주3회 달리기 인증 챌린지’의 레전설이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더욱 갸름한 모습이었는데, 오랜만에 잰 인바디에 본인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다이어트를 특별히 염두에 두지 않았음에도 대단한 다이어트 결과를 보여준 상달이를 보며 난 하하버스를 떠올렸다. 본인만 모르는 본인의 (엄청난) 다이어트 결과...!
상달이는 크로스핏을 주로 하는 ‘크로스핏터’다. 나는 그녀의 크로스핏을 SNS 어깨 너머로만 보았지만, 그녀의 클린 동작(역도 동작 중 하나)은 물 흐르듯 이어져 우아하기까지 했다. 마침 나 또한 클린 동작을 배우고 있던 터라 우리는 달리기하러 모일 때마다 클린에 대해 이야기했다. 허벅지에서 시작해 그 반동을 이용해 무거운 바벨을 어깨까지 올리는 클린 동작. 그 동작이 마치 우리의 세상을 클린하게 해준다는 듯 나는 그것의 매력을 쉴 새 없이 이야기했고 상달이 또한 웃으며 클린이 왜 좋은지 이야기했다. 카톡에 저장된 상달이를 ‘이상달개클린’이라고 변경한 날부터 난 상달이의 클린에 더욱 매료되었다. 클린을 하기 위한 그녀의 땀과 시간과 대퇴사두근과 코어머슬근의 꿈틀거림이 모두 고스란히 바벨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손에 탄마를 바르고 허리 숙여 바벨을 쥔다. 손을 허벅지 중간쯤까지 끌어올린 다음 엉덩이를 뒤로 빼며 앉는 자세를 취한다. 너무 앉아서도 너무 덜 앉아서도 안 된다. 손이 자연스럽게 허벅지 라인을 따라 내려가는 순간 서는 자세를 취해 허벅지의 반동을 주고 그 반동으로 무겁디 무거운 바벨을 어깨까지 올린다. 잡고 있는 손 방향을 아래로 바꿔주는 것도 잊지 않기. 어깨까지 올라간 바벨의 무게가 즉각적으로 온 몸에서 느껴진다.
“으아아아아-!"
내가 이렇게 큰 목소리를 내지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이렇게 거대한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포효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몇 십년간 몰랐던 나지만, 그 낯섬이 너무나 짜릿하다. 고되고 힘들지만 해냈다는 도파민이 온 몸을 훑는다. 바벨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바벨을 들 때마다 나만의 세상을 들어 올리고 있다고. 나만의 세상을 온전히 나 스스로 들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 나뿐이라고. 그러기에 모든 운동을 마치고 박스를 나서며 진짜 세상을 마주할 때 나는 말한다.
“나는 이 세상에 겁날 것이 없다”
상달이는 어느 순간부터 달리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크로스핏을 마치고 느껴지는 개운함과 쾌감 같은 즐거운 감정들을 달리고 난 뒤에도 똑같이 느낀 후부터였다. 출산 후 나의 첫 풀코스인 22년 춘마를 응원하고 집에 가는 열차 안에서 상달이는 눈물을 흘렸다. 크로스핏을 끝낸 감정이 풀코스를 마친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렴풋이 짐작이 되니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럼 상달이는 매일 풀코스를 뛰고 있는거구나’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상달이의 반짝이는 눈빛을 계속 보고 싶어서 상달이가 열심히 쓰라며 준 볼펜만 만지막거렸다. 바벨로 세상의 겁에 맞서는 나의 친구 상달이. 매일 박스를 나오며 풀코스를 뛰는 상달이. 이 세상에 겁날 것이 없는 크로스핏터 상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