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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아 Jan 13. 2023

남산에서 달려보셨나요? 인생을 닮은 남산 달리기

글을 읽고 나면 반드시 남산에서 달리고 싶어질걸요?

  서울의 상징하면 남산타워가 손에 꼽힐 것이고, 러너의 성지를 물어본다면 단연 남산일 것이다. 서울 중심부에 있어 접근성이 좋고, 산인만큼 ‘업힐’, ‘다운힐’이라 말하는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연습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조금만 숨을 헉헉 대고 올라가면 금세 종로의 수많은 빌딩이 내 발 아래에 있는 경험 또한 짜릿한데, 케이블카도, 버스도 타지 않고 내 두발로 남산을 올라왔다는 자존감까지 선사하니 러너에게는 가장 좋은 연습장소가 아닐 수 없다.


  서울과학전시관 남산분관을 왼쪽에 두고 ‘삼순이 계단’을 내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곧장 남산인데, 공식명칭은 ‘가을단풍길’, 러너들은 ‘북측순환로’라 부르는 길이 나온다. 그 곳에서부터 “아, 처음부터 가파르네?”하는 오르막과 “그래 이 맛에 달리지!” 우다다 내리 꽂는 내리막, “와 이거 올라가겠어?”하는 오르막을 계속 반복하다가 마지막엔 말할 힘도 없이 숨이 코 끝까지 차올라 속으로 ‘엉엉 살려주세요’ 하는 오르막을 지나고 나면 약 3.3km, 출발점으로 돌아오면 약 7km가 조금 안되는, 짧지 않은 거리가 나온다. “오늘은 북측순환로 2회전, 3회전 훈련입니다” 란 말은 곧 이 코스를 두 번, 세 번 달려 13km, 20km를 뛰겠다는 의미이다.


  남산에는 국립극장에서 시작할 수 있는 ‘가을단풍길’, ‘남측순환로’도 있다. 이 코스는 북측순환로와 달리 남산 꼭대기를 향하는 길이기 때문에 차도와 밀접하고, 국립극장에서 시작하면 계속 오르막이다. 로드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연습 삼아 올라가는 경우가 상당수고, 러너들은 남산 팔각정까지 뛰어 올라간 뒤 하산 시 내리막 연습할 때 주로 이용한다. 이 두 가지 길 외에도 남산의 수많은 계단을 이용해서도 근육 단련이 가능하고, 남산공원 옆 한양도성길을 내려가며 친구들과 함께 오늘의 달리기 소회를 떠들썩하게 정리하는 것까지 남산 훈련에 포함된다. 


  남산을 뛰며 몸과 마음이 가장 먼저 체득한 사실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인생과 같다는 사실이었다. 남산의 오르막은 때론 무지막지하고, 때론 달콤한 성배와 같았는데, 고개는 떨구어지고 폐가 찢어질 듯 숨이 차면서도 이 끝은 반드시 있다는 사실이 너무 명확해서였다. 심지어 무릎과 두 다리 또한 금세 단단해져 쉽게 포기하기 어렵게 했다. 삶에서도, 힘든 순간이 끝이 날 줄 몰랐지만 꼭 끝이 있었다. 그런 나날들이 나를 꼭대기까지 밀어준 동력이었음을, 마음과 몸에 모두 이득이었던 그런 시간들이었음을 아주 천천히 알게 된다. 


  반대로 내리막은 두 다리가 날개 단 듯 경쾌하고 소리를 지를 만큼 신나기도 하지만, 내 몸의 하중을 2~3배 더 받고 있는 무릎은 잊게 되는 것처럼 내가 내 삶의 저점을 향하고 있는지 쉽게 알지 못한다.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가므로 보폭을 좁히고 속도를 약간 늦춰야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와다다다 신나게 내려가게 되는 러너처럼 뭔가 조심조심해야할 것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하고 내달려버리는 삶을 닮았다. 무릎이 아프다는 걸 느끼게 된 때는 이미 달리기가 끝난 터라, ‘조심 좀 할 걸’이라는 후회가 그리 통하지 않다는 것도 어찌보면 비슷하다.


  서른번째 삶의 오르막 내리막을 달려보고는 홀연히 삶이라는 주로를 떠나버린 내 친구가 마지막으로 찾은 장소도 남산이었다. 


  친구는 키가 크고 덩치도 커서 전형적인 ‘운동하는 남자’란 느낌을 주었는데, 친구들과 같이 뛰고 집으로 가는 귀갓길에 수줍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헌아야, 너 자전거 타니?” 철인3종으로 단련된 몸과 그에 대비되는 나긋한 음성, 그렇지만 또 질문은 철인3종 할거니란 말과 겹쳐져 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게 그 친구의 첫 질문이자 마지막 질문이었는데, 아이처럼 좋아하는 것을 내보이곤 발그레 미소짓던 표정에 친구의 내리막이 감춰져 있었음을 나는 친구가 아주 멀리 떠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얼마나 늦은 깨달음인지 곱씹을 때마다 마음이 아리다. 그 때 널 불러세울걸. 집에 가지 말고 더 이야기하자고 할 걸. 나한테 철인3종 이야기를 밤새 해도 좋으니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하라고 마음을 열어볼 걸. 


  그래서 지금은 남산을 달릴 때, 하나, 둘, 셋, 넷 구령을 외며 박자를 맞추는 것 말고도 옆에서 같이 뛰고 있을 너를 생각하는 일이 추가되었다. 바람에 나무가 일렁일 땐 네가 하는 인사겠거니, 이름 모를 새가 큰 소리를 낼 땐 지금 포기하지말라는 너의 응원이겠거니, 여름은 초록빛 나무들이, 겨울엔 가시나무들이, 더우면 더운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갑자기 눈발이 날리면 그것대로 또 너일 것 같아 괜히 더 힘든 척 찡해지는 코끝을 막아본다. 


  아무래도 곧 남산을 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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