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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아 Jul 28. 2024

<운동하는 여자들> (4) 러너 백홍달

아이와 함께 달리기 대회에 나가 입상하기까지




홍달이는, 남들보다 앞서가는 러너다.


 2014년 한국인의 초혼연령은 여성 29.8세. 그리고 2016년 한국인의 첫 자녀 출산 평균 연령은 31.4세. 홍달이는 2014년 만 25세, 한국 나이 27세에 몇 해를 목하 열애하던 남자친구와 결혼했고, 그로부터 2년 뒤인 2016년 11월 아기를 낳았다. 남들의 평균에 비해 2년 이상 빨랐던 결혼과 출산.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를 낳아 키웠지만, 29살 엄마인 홍달이 마음 깊은 곳에는 언제나 우울함이 존재했다.


  아기를 가지고 낳고 키운다는 건 분명한 축복이었다. 꼬물꼬물하는 오동통한 손가락이 어느덧 길어져 아장아장 걷고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그렇지만 일상 속 매시 매순간을 아기를 보며 기뻐할 수 없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홍달이의 마음 속에는 어두움이 공존했다. 세상과의 단절이 주는 우울함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내 의지대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할 때 어쩔 줄 모르겠는 그 마음. 어린 아이를 키웠던 그 때의 삶을 홍달이는 고요라고 표현했다. 고요. 조용하고 잠잠한 깊은 그 어두운 마음.


  결혼 전 홍달이의 삶은 고요와는 거리가 있었다. 신혼여행지를 노르웨이로 선택해 600m 피요르드 절벽을 탔다. 스쿠버다이빙을 했고, 서핑을 했다. 매주 주말을 남편과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보낸 삶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화면 전환되듯 아기를 키우면서 삶이 고요해지자 홍달이는 당황스러웠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건 원래 이런 건가. 이런 당황스러움은 무엇인가. 아기가 커가는 행복과 마음 속 고요와 당황스러움은 동반자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그렇게 1년 6개월이 지났다. 홍달이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고요를 벗어나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오전 햇빛이 이렇게 크고 따사로웠나.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오전의 몇 시간을 무조건 밖에서 보내리라- 마음 먹고 나간 첫 날의 햇볕은 따뜻하고 충만했다. 그렇게 나간 공원에서 홍달이는 인생 처음으로 운동화 끈을 조였다. 남편 혹은 타인과 즐기던 스포츠만 했던 터라 '혼자 하는 심심한 운동'으로 생각한 달리기에는 큰 관심 없었던 홍달이는 처음에는 무작정 걸었고, 며칠 뒤 걷고 뛰다가, 조금 지나서는 뛰다가 걸었으며, 끝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이틀에 한 번은 동네 공원에 나가 러닝하는 인생이 시작되었다. 엄마 백홍달이 이름 앞에 러너가 붙기 시작했다. 러너 백홍달, 그녀는 그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면 이 세상에 저 혼자만 존재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온전히 저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저를 힘들게 하던 걱정거리도 달리고 나면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듯 가벼워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점차 몸만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건강해지는 걸 느끼며
러닝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4월의 햇살과 함께 한 달리기는 조용하고 잠잠한, 고요의 마음을 시끄럽게 하기 충분했다. 마음이 외치기 시작했다. 얼른 달리기를 하러 나가자 웅성웅성. 그렇게 홍달이의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2018년 4월이었다. 2018년 당시 러닝 인구로 보면 젊은 여성 러너는 흔하지 않았고, 젊은 엄마 여성 러너는 더 흔치 않았다. 역시 홍달이는, 남들보다 앞서가는 러너다.



 

  그 뒤 홍달이는 행복하게 달렸습니다-로 끝나는 엔딩이면 좋겠지만, 러너라는 타이틀을 단 이후에도 홍달이가 달리기를 이어가기까지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어린이집에 보냈지만, 여전히 아기는 많이 어렸다. 홍달이는 이 때를 '긴 어둠의 시간'이라 표현한다. 

  아이가 어릴 취미 생활을 하는 건 예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홍달이는 2018년이라는 러닝 이전 시기달리기를 시작했지만, 주말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마음 편하게' 나가 적이 없었다. 또, 비슷한 이유에서 홍달이는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 같이 달리는 러닝크루 활동을 없었다. 외향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는 홍달이인데. (홍달이는 첫 날 만난 자기소개에서 아주 해맑게 웃으며 '러닝크루에 꼭 나오고 싶었다'고 했다. 지금 홍달이의 러닝 활약을 아는 나로서는, 삼키고 삼켰을 홍달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싸르르 아려온다. 영유아 엄마에게 러닝크루에 나가 같이 뛰는 1시간 반이 허락되기가 이리도 어려운 일인지.


  그런 어둠의 시간이 지나가는데 대략 5년이 걸렸다. 그리고 아이가 8살, 초등학생이 되어서야 '자유로운 러닝 라이프'가 찾아왔다. 


  자유로운 러닝 라이프. 

  이제 홍달이는 가족 모두와 달리기를 한다. 외향적인 남편과 함께 달리기를 함께 할 수 있게 된 건 신의 한 수였다. 같은 취미를 가지자 2~3시간 이상이 걸리는 주말 장거리 훈련이 서로 이해가 됐다.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자 달리기만큼 재밌는 건 없었다. 작년까지는 한 달 50km 남짓을 뛰던 홍달이는 올해 들어 매달 평균 200km를 뛰는 헤비 러너로 성장했다. 비가 와도 뛰고 눈이 와도 뛰면서 기록도 덩달아 좋아졌다. 기록이 좋아지면 더 뛰고 싶은 것이 러너인 법. 결혼 10주년을 맞아 2024 대구마라톤대회에 나가 첫번째 풀코스를 뛰었다. 홍달이의 말을 그대로 빌리면 '달릴 수록 힘든 마라톤과 더욱 사랑에 빠지고 있음'을, 홍달이는 온 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게다가 아이가 부모의 등을 보며 자라나듯, 아이도 엄마아빠를 따라 자연스럽게 달리기를 하게 되었다. 공원이나 트랙에 나가 아이는 2km를 뛰고, 홍달이와 남편은 함께 5km를 천천히 달리며 '수다런'(수다를 하며 뛰는 것을 가리키며, 호흡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달리기 페이스를 의미하기도 한다)을 하고, 집에 돌아와 각자의 하루를 공유하면서 비슷한 관심사로 대화를 나누며 '마음이 건강해지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아이와 함께 뛰고 성장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한 달 200km 뛰며 체력이 하늘 끝에 다다른 엄마는 아이와 몸으로 놀아주는 데 주저함이 없고, 이제는 아이가 먼저 밖으로 나가자고 엄마 손을 이끈다. 무엇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의 엄마를 보며 '느려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때, 러너로서 그리고 엄마 백홍달로서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러닝하기를 정말 잘했어.


  기세를 몰아 홍달이는 아이, 남편과 함께 2024 광명역 평화 마라톤대회 가족런 5km에 참가해 9위로 입상했다. 가을에 어떤 대회를 나갈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일상도 가족 모두와 함께. 


'그 날 이후 한 번도 러닝을 사랑하지 않은 적 없는' 사람의 족적

  


  

  처음 러닝크루에서 만난 순간부터 홍달이에게 단번에 매료되었던 나는 항상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초등학생 학부모이기도 했고(이야 넌 다 키웠구나), 만 3세쯤 된 첫째가 무지막지하게 귀여울 때 언제까지 자식이 귀엽냐고 물어보면 시간이 갈수록 더 귀엽다고 답했던 선배 엄마였으며(귀여움엔 한도초과가 없구나!), 이렇게 달리기를 좋아하는 그녀가 왜 이렇게 늦게서야 러닝크루에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그 내밀함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홍달이에게 가장 궁금했던 건 이른 나이에 한 결혼과 출산이 달리기에 미친 영향 같은 거창한 논문같은 것이었지만, 홍달이의 6년을 짧게나마 들여다보고 재구성하며 느낀 건 그저 누구보다 달리기를 아끼고 사랑하는 한 사람의 삶일 뿐이란 것. 그녀라면 결혼과 출산이 아니었어도 뛰었을테지만, 고요와 어둠의 시간을 5년이나 보내고 아이와 함께 달리기 대회에 나가기까지 홍달이가 삼켰을 애환과 인내가 누군가에게 분명한 힘이 될 것임을 굳게 믿기에, 이 글을 홍달이의 말로써 마무리한다.


저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출산을 한 여성분들이라면
더더욱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로 달리는 홍달이. 홍달이의 달리기를 보면 같이 달리고 싶다. 그 행복한 미소에 매료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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