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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아 Jun 15. 2023

<운동하는 여자들> (3) 러너 조달미

고저를 따라 온전이 홀로

  이번 대회에서도 달미는 포디움에 올랐다. 달미는 "요즘 달미는 어떻게 지내?"라고 물어볼라치면 달리기 대회에서 입상했다는 소식을 들려주는 수준급의 러너다. 나는 언젠가 대회에 나간 달미를 응원하러 간 적 있다.  "달미야! 달미야!" 내 목소리에 돌아본 그녀의 발걸음은 걷는 듯 차분했다. 그런데 그렇게 빠른 속도라니? 속으로 감탄한 사이, 달미의 오밀조밀 귀여운 오목구비가 미소로 빛났다. 안녕, 안녕- 달리며 손을 흔드는 여유가 지극히도 자연스러운 러너 조달미. 




  달미의 달리기는 그 속도만큼 시작도 빨랐다. 2014년, 부르는 이름마저 푸르른 스물일곱이 된 여름날이었다. 멋진 커리어우먼을 꿈꾸며 입사한 첫 회사에서 달미는 포디움에 가깝게 가지도 못한 채 퇴사를 했다. 집 근처 야근 없는 회사에 다시 들어갔지만, 은근스레 밀려오는 무기력을 떨치기는 어려웠다. 그 때 달미의 눈에, 어떤 광고가 들어왔다.


나이키 마라톤을 접수합니다


  지금이야 러닝 인구가 많아졌지만, 당시에는 달리기 하는 사람을 손에 꼽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어르신 운동이라는 인식이 컸다. 그러나 달미에게는 '새로운 도전', '새로운 용기'가 절실했다. 조심스럽게 접수 버튼을 눌렀다.


  어랏? 제일 짧은 코스인 10km가 벌써 마감되었다?! 달미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half를 선택했다. 스물일곱, 첫 마라톤으로 하프를 선택한 달미를 회상하며 서른 여섯의 달미는 말했다. 


"마라톤이 뭔지 알고 시작했다면 첫 대회가 하프는 아니었을거야.
그리고 ... 마라톤도 아예 안했을 것 같아"


  드디어 첫 대회날. 멀리서부터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음을 멀리서부터 직감할 수 있을 정도의 달뜬 분위기였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출발선으로 가기 위해 웃었고, 기대했고, 또 설레어했다. 아빠의 반바지를 입고 등산용 빨간 헤어밴드를 한 달미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서 시작한 첫 대회는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셀 수 없는 까만점 같은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웠고 그 사람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빼곡했다. 달미는 흥에 겨웠다. 모르는 사람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5km를 지났고 '나 마라톤에 재능 있는 거 아냐?' 생각하며 10km 지점을 통과했다. 17km까지 쉬지 않고 뛰었다는 달미의 첫 하프 기록은 2시간 40분, 완주였다.


"아빠!! 나 마라톤에 소질 있는 것 같아! 담에 또 참여할까?!"


  첫 대회 이후 이틀동안은 자면서 다리에 쥐가 났다. 몸이 큰 수고로움이라고 말해주었지만 달미의 마음만은 한없이 좋았다. 21.195km나 뛰고 쥐가 난 딸의 다리를 밤마다 주물러주었던 아빠의 마음도 함께임을 알기에 달미는 더욱 좋았다.




  그 이후 달미의 달리기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다. 달미가 참여했던 첫번째 크루에서 여성 중 처음으로 풀코스를 뛸 정도로 달미는 끈기나 실력 면에서 월등했지만, 누구나- 늘- 그런 것처럼 달미의 달리기도 인생의 고저를 따라왔다.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이유로 달미에게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불면증을 동반한 공황장애였다. 약을 미처 챙기지 못하고 친구들을 만난 날, 갑자기 증상이 나타났다. 자신이 원해서 생긴 공황장애도 아닌데,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너무 싫은 내면을 보여준 스스로가 너무나 미웠다. 잠이 오지 않던 어떤 날은 어두컴컴한 창밖을 바라보다가 무서운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 순간을 먼저 떠나가버린 친구를 생각하며 달미는 자신을 뒤돌아봤다. 내 자신이 밉기도 하지만 안타까워. 벗어나고 싶어. 내가 가장 제일 재밌게 했던 건 뭘까? 


  달미는 러닝화의 끈을 다시 조였고, 한 달에 300km를 뛰었다. 병이 따라올 새가 없는 틈을 타 달리기 실력이 따라왔다. 숨 가쁘도록 뛰어야 하는 1km당 4분 30초 그룹에 입성하면서 달미는 달리기가 더욱 좋아졌다.


 그래, 러닝은 배신하지 않아. 열심히 꾸준히 하는 만큼 돌아오는 게 달리기라구. 원하는 목표가 있고, 그 시간 안에 완주하지 못하더라도 또 도전하면 되니까 괜찮아. 친구들이랑 뛰든 모르는 사람들과 대회에서 뛰든 많은 사람들과 함께 뛰더라도 달리기는 결국 '온전하게 홀로' 뛰어야 해. 그래서 더욱 재밌어. 피니쉬라는 목표가 있잖아? 그 목표를 향해 달리기만 하면 되니까. 그 쾌감이 나를 계속 뛰게 해. 


  그렇게, 2023년에도 달미는 계속 달린다. 달미는 2022년 서울달리기 대회에서 하프를 1시간 38분 35초만에 완주했고, 2023년 이순신 백의종군길 마라톤대회에서 하프 8등, 하프 여성 연대별 1위를 차지했다.


인생의 고저든 길의 고저든 어떤 고저에도 온전이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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