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공동체 벗은 크다면 크지만 또 작다면 작은 출판사입니다. 조합원 900여 명이 함께하고 있는 ‘단체’이면서, 실제로 책을 만드는 등의 일은 사무국에 있는 5-6명의 일꾼들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몇 안 되는 사람들이 격월간지 《오늘의 교육》을 만드는 일, 조합원들과 같이 연수와 토론회 등 이야기자리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 책을 기획하고 필자를 만나고 편집하고 출판하는 일, 그리고 책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일 등을 하느라 부산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교육공동체 벗에서 하는 또 다른 ‘업무’가 있습니다. 각종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연대하는 일입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지역에서 꾸려진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바라는 활동에도 참여해 왔고, 최근엔 베트남 전쟁에 대해 베트남에 사과하는 릴레이 1인 시위에도 동참했습니다.
2016년 가을과 겨울, 교육공동체 벗 사람들이 매주 서울 경희대학교를 방문할 일이 생겼습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해고당한 강사인, 채효정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의 투쟁에 함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015년 크리스마스이브, 인문주의를 표방하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는 67명의 시간 강사들에게 해고 통보를 했습니다. 채효정도 해고당한 강사들 중 하나였습니다. 채효정은 2016년 10월부터 12월까지,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마다 대학 교정 잔디밭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이 거리 강의에서 채효정은 대학교 강사의 노동 문제만이 아니라 대학의 의미와 공공성 그리고 민주주의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채효정의 잔디밭 강의 준비와 진행에 같이했고, 강의 내용을 기록하고 정리하여 책으로 펴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책,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 빼앗긴 자들을 위한 탈환의 정치학》의 한 부분입니다.
수평적인 구조가 되면 대학은 누구의 것이 됩니까. 모두의 것이 되죠. 수직적인 구조는 반드시 한 사람의 지배나 소수의 지배로 귀결될 수밖에 없지만 수평적인 구조가 되면 민주적인 정치체가 될 수 있어요.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대학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반드시 물어야 하는 이유예요.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와 나라를 어떤 식으로 구성할 거냐,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낼 거냐, 권력의 배분을 어떻게 이루어 낼 거냐를 결정하고 토론하는 것이 바로 정치죠. 여기가 정치의 장이 아닌 것 같지만 반드시 정치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공간이에요. 그래서 대학은 나라이고, 하나의 작은 폴리스(polis)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 채효정(2017),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31~32쪽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는 대학의 현실에 대한 고발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대학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꼭 필요한 질문들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사회,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처럼, 현장에서 문제를 겪고 맞서 싸우는 사람들과 연대하며, 우리 사회에 물음표를 던지는 책을 만드는 역할을 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민주 공화국이려면 대한민국 안에 존재하는 모든 작은 나라들이 민주 공화국이어야 해요. 다른 작은 나라들, 그러니까 대학, 마을, 회사가 모두 봉건적인 왕조 체제인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만 민주 공화국이 될 수는 없어요.
- 채효정(2017),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36쪽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의 이런 문제의식과 제목부터 연결된다고 할 수 있는 책이 《광장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다》입니다. 사실 교육공동체 벗의 조합원들 중 초·중·고 교사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교육공동체 벗에서 다루는 주제의 대부분도 대안교육을 포함하여 초·중등 교육에 관련된 것인데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루어 낸 2017년 2월 무렵 출간된 이 책은, 광장에서는 현실이 되었던 민주주의가 어째서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너무나 먼 이야기가 되어야만 하는지 반문합니다. 《광장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다》에는 종교 강요 등 학생인권 침해, 문제 있는 역사 교과서 선정 등에 항의하며 학교를 바꾸기 위해 나섰다가 벽에 부딪치고 상처받은 학생들의 이야기, 세월호 참사에 대한 수업을 했다가 징계를 받은 교사들의 이야기, 학생회 선거에서 학교가 공약과 연설 내용을 사전 검열하는 바람에 생긴 갈등 등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에서 내는 ‘오늘의 교육 총서’와 ‘오늘의 교육 선집’ 시리즈는 섣부른 희망과 위로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정직한 절망을 이야기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에서 오간 논의를 모으고 벼려서 만드는 시리즈들입니다. ‘오늘의 교육 총서’는 게재되었던 글을 보완하고 주제에 맞는 새로운 내용을 보태서 교육에 대한 반성과 고민과 제안을 전하고, ‘오늘의 교육 선집’은 《오늘의 교육》에 실린 교육의 현실에 대해 기록한 에세이 성격의 글들을 특별한 보완 작업 없이 골라 모아서 만듭니다.
지금까지 ‘오늘의 교육 총서’는 《교육 불가능의 시대》, 《가장 인권적인, 가장 교육적인》, 《그리고 학교는 무사했다》, 《가장 민주적인, 가장 교육적인》 4권이 나왔습니다. 각각 ‘교육 불가능’의 현실, 학생인권, 학교폭력, 학교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교육을 주제로 했습니다. ‘오늘의 교육 선집’은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광장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다》 2권이 나왔습니다. 앞으로는 페미니즘 교육 등의 주제로 책을 만들 계획입니다.
교육공동체 벗이 답답한 교육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정직한 절망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현실에 맞서 싸우고 변화를 일구어 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교육공동체 벗의 이름에는 현실을 바꾸려는 이들이 같이하는 벗(友)이 되겠다는 마음 그리고 이에 더해 “하지만, 그러나”를 뜻하는 “But” 즉 비판과 대안을 이야기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마음 편히 읽을 책들보다는 불편하고 답답한 이야기를 하는 책들을 많이 내다 보니, 간혹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들도 피로감을 전해 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현실과 부대끼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배달하는 역할을 교육 분야에서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읽으면서 좀 답답하고 슬프고 화가 날 수는 있더라도 재미없거나 의미 없는 이야기들은 아니니까요. 앞으로도 교사들과 청소년들을 비롯해 독자들이 바로 자신의 이야기, 우리 사회와 교육의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는 책, 그러면서도 세상에 필요한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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