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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드리더 Aug 15. 2018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닭 튀기는 일과 책 만드는 일의 차이?


저는 다섯 식구를 먹여 살린 강한 생활력이 아니라 늘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엄마의 비관주의와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낙천성이 아니라 평생 일머리 없다는 잔소리를 들어온 아버지의 똥손을 타고 났습니다. ‘박 대리’, 아니 아니 ‘배터리’가 약해서 몸으로, 힘으로, 체력으로 버티는 일은 머리카락이 안 난다고 할매가 정수리에 침을 발라주던 어린 시절부터 피해왔습니다. 여기서 책을 좋아한 새침한 아이라는 반전 매력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진실은 ‘열두 살 명수’(<무한도전> 박명수 캐릭터 가운데 하나)처럼 코찔찔이에 말귀가 어두운, 뭘 해도 어정쩡한 아이였다는 점입니다.

열두 살 명수의 천진난만한 웃음?! 실은 '아무 생각 없음' 


그러니까 책 만드는 일을 20년 이상 해오고 있지만 책에 대한 관심은 완전히 후천적으로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과 저는 단순히 ‘비즈니스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말이지요.
저는 지금도 꿈을 꿉니다. 만약 손맛, 체력, 긍정성을 타고났다면 최애 프로그램인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소시민들의 영웅처럼 궁극의 닭튀김 기술을 평생토록 갈고 닦으리라고요.



우리 사인 비즈니스 관계일 뿐


친구들은 제가 ‘돈’과 ‘가치’를 맞바꾸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이 가진 ‘사회적 가치’를 지키는 일인 양, 모임 때는 늘 저를 제외하고 돈을 갹출하지요.(고맙다 칭구들아~) 출판=가치=가난, 이런 식의 도식이랄까.(근데 내가 너희들 생각만의롭고 바를까ㅋㅋㅋㅋㅋ)

그렇다고 이실직고 하지는 않습니다. 환상은 깨지 않고 그대로 나둬야 좋을 때도 있으니깐용. 

솔직히 말해 저는 제가 추구하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출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우리 사이는 철처히 비즈니스 관계라…. 

근데 무엇이 친구들을, 나아가 독자들을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곰곰이 살펴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메멘토의 책들을 보시면....요.  


메멘토는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인문사회 분야 교양서를 출간하고 있습니다.



지적 관심과 비즈니스  


첫 출판사에서부터 인문, 학술 분야의 책을 만들다 보니, 지식과 정보가 있는 책이 가장 익숙했고 성향에 맞았습니다. 반면 쓸모와는 좀 거리가 멀었습니다. 욕하다가 정이 든다잖아요. 뭔 소린 줄 모르겠다, 이게 뭔 쓸모가 있냐 하며 엄청 구시렁거리면서 만들다가 어쭈, 이런 것도 재미있네, 하게 되는 식이죠. 그런데 제 지적 관심이 비즈니스보다 우위를 차지하면서 그런 책들이 한 권 한 권 창고에 쌓이고, 급기야 으악 이건 아니다, 하고 번개 맞는 날들이 많아집니다. 제 타고난 어정쩡함이 물류창고의 재고 더미 위에 승리의 깃발을 꽂은 거죠.


나: “하늘이시여, 정녕 저한테 비즈니스 감각은 안 주셨습니꽈~~?”
하느님: “왜 나한테 이러니, 네 부모님한테 여쭤봐라.”


메멘토 책들은 지금도 충분히 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암요, 그렇고말고요.^^;; 하하



이번 생엔 글렀는가


메멘토라는 상호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름을 생각해낸 계기는 있지만 큰 뜻은 없다, 포부보다 계속하는 힘이 중요하다고 답하곤 합니다. 독자들, 친구들의 응원 덕에 아직까지 별 탈 없이 운영해오지 않나 생각합니다.



삶의 위험을 분산시키는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고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능력이 없는 저 같은 사람에겐 그래서 기본이 가장 중요한 듯합니다.(기본기를 자신하다가 @박살나는 ‘골목식당’들을 보면 뜨끔합니다만.) 메멘토의 목표는 언제나 바탕이 탄탄하고 독자들의 필요도 잘 긁어주는 쉽고 유익한(!) 책을 내놓는 것입니다.

‘쉽고 유익한’?! 흠… 아무래도 이번 생엔 어려울까요? 급수긍…. 그럼, 다음 생에라도….



저질 체력을 위한 생업 가이드북


다음 생까지 갈 것도 없이 메멘토의 책 가운데 “쉽고 유익한” 책 한 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이 책을 선택하는 데 저자가 즈(!)질 체력의 소유자라는 점이 한몫했습니다. 충전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약골끼리 통하는 ‘뭐 그렇고 그런’ 게 있다고나 할까.


이토 히로시,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의 저자. 여자? 아니고요, 남자? 맞습니다!


출판사 다닐 때 책 만드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고, 퇴근 후 동료들과 마시는 맥주 한 잔으로 출근할 에너지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버티는 힘과 나이는 반비례하더군요. 저자 이토 히로시(이제 40대가 되었겠군요!)도 어렵사리 취직한 벤처기업에서 밤낮없이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떨어진 당을 아이스크림으로 보충하면서 하루하루 버티다가 결국 건강이 바닥을 치고 친구 관계가 파탄나기 직전에 퇴사를 결심합니다. IT 기업의 노동 강도는 익히 소문이 나 있죠.



이상하지만 끌리는 창업 방식


예상하시겠지만 퇴사 후 창업을 했겠지요? 근데 이 창업 방식이 좀 독특합니다. 몇 천만 원씩 대출 받아서 또다시 내 삶을 송두리째 바치는 일을 시작한 게 아니거든요. 어찌 보면 장난스러운, 이런 일도 돈이 되나, 하는 의문이 생기는 방식입니다.
저자는 일에 송두리째 삶을 저당 잡히는 ‘전업화’가 문제라고 보고 의도적으로 한 가지 일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시적으로 여행사 일을 했다가, 필요하면 목수 일로 돈을 벌고, 특별한 결혼식을 주선하는 웨딩업도 하고, 빵도 만들고, 농촌 할머니들과 비즈니스를 도모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퇴사 후 5년간 7가지 일을 개발합니다.


무척 생산적인 삶이라는 생각이 들죠?! 그 덕분인지 일본에서 이 책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군요.(한국에서의 반응은 이에 비해 미미하달까? 하하^^;;) 

저도 퇴사 후 5년이 지났지만 아직 한 가지 일에 '몰빵'하는 방식에서 못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편집자 동료 중에 저자로, 강사로 다른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아, 부럽삼! 하고 있지 마시고, 히로시 씨에게 뽐뿌질 좀 받으시고 한 번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은 스토리펀딩의 "모험을 시작한 작은 책들"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작은출판 컨퍼런스의 참여권은 펀딩을 통해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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