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송책방은 2017년 10월 10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1인출판사를 하겠다고 마음을 굳힌 것은 창업일로부터 3개월쯤 전이었지만, 그 계기는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3년부터 2016년까지 세 군데의 출판사를 다녔습니다. 그 중 두 번째 회사에선 만화잡지를 만들었는데, 안타깝게도 3년 만에 폐간하고 말았습니다. 만화잡지 편집자로 일하던 시절, 한 주간지에 ‘노는 인간’이란 칼럼을 연재했습니다. 특이하고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며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코너였는데, 그 칼럼의 끝에 ‘만화잡지 <팝툰> 기자’라는 크레딧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잡지가 폐간하고 나니, 크레딧을 뭐라 쓸지 몰랐습니다. 고민하다 ‘송송책방 주인’이라 썼습니다.
실체도 없는 책방 주인 행세를 하다 보니, 이럴 게 아니라 출판등록을 해두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1년, 모든 일이 내 맘처럼 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그렇게 나만의 작은 출판사를 향한 꿈을 심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만화책 5권, 에세이 1권, 시집 1권을 출간했고, 다음 주면 만화책 1권이 더 나옵니다. 1년도 안 되어 8권의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귀한 작품을 주신 작가님들, 외주 기획과 편집을 해준 동료, 후배 편집자들, 디자이너들, 그리고 물심양면 응원해준 가족과 친구들 덕분입니다.
밥상만 펼쳤을 뿐인데, 여러 귀한 분들이 풍성히 상을 차려주셨습니다.
십수 년간 출판사를 다니면서 많은 작가님을 알게 되었고, 그 중에는 꽤 친밀하게 지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지금 소개하려는 작가님은 73세에 첫 책 <강원도의 맛>을 썼고, 매일 아침 포털 검색창에 책 제목과 이름을 쳐보며 독자들의 반응을 탐구하고, 아직도 쓸 이야깃거리가 아주 많은 작가님입니다. 친밀한 것으로 치자면 으뜸으로, 말하자면 1촌, 그러니까 진짜 1촌, 나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작가가 되어 책을 내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먼저 소개합니다.
아래 글은 지난 5월 <강원도의 맛>을 출간할 당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후원을 받기 위해 썼던 책 소개 글입니다.
엄마는 1945년 강원도 평창군 뇌운리 어두니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웰컴 투 동막골>의 동막골처럼 전쟁도 비켜간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내 땅이라고는 송곳 하나 꽂을 데 없이"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외할머니와 함께 성실하고 정직하게 땅을 일궈 8남매를 키워냈습니다. 돈은 없었지만 자연은 풍성해서 땀 흘린 만큼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산에는 철마다 나물과 열매가 가득했고, 강에는 물고기며 골뱅이며 부지런히 잡으면 사람도 짐승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은 깨끗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외할머니는 알뜰히 먹거리를 거두어 맛깔스럽게 끼니를 장만해 가족을 먹이시는 분이었습니다. 맏딸인 엄마는 외할머니를 도와 여섯 살부터 부엌일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엄마는 평생 밥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엄마는 여덟 살이 되어 국민학교에 입학했지만 비오는 날만 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맑은 날은 어른들이 들일을 나가 언나(아기)를 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언나를 업고 벽에 노트를 대고 글씨를 쓰고 책을 읽으며 엄마는 혼자서 '안방학교'를 차려 놀았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학교에 가도 진도를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큰외삼촌이 학교에서 빌려온 <집 없는 천사>를 읽고 크게 감동해서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6학년 때 문예반에서 시조 시인 정태모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엄마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중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꼭 작가가 되겠다는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십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먹고사느라 바빠 꿈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엄마는 환갑에 자식들이 여행 가시라고 모아드린 돈으로 신학교에 등록했습니다.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전철을 타고 가는 중에도 좋은 생각이 나면 수첩에 빽빽하게 메모를 했습니다. 시도 쓰고 산문도 썼습니다. 한 달간 밤새워 <줄밤나무집 아이들>이란 소설을 써 공모전에 내기도 했습니다. 떨어지긴 했지만요. 그렇게 10년간 열심히 썼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강원도의 맛'이란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2년간 연재한 글에 새로 쓴 글을 더한 것이 이 책 <강원도의 맛>입니다.
<한겨레21> 연재 보러 가기 http://h21.hani.co.kr/arti/COLUMN/205/?cline=5
<강원도의 맛>에는 1950~60년대 강원도 산골의 풍경이 담겼습니다. 그 시절 해먹던 음식, 사람들, 사투리, 풍습, 집짐승 산짐승 물고기, 산의 나무와 나물, 논과 밭의 작물들을 비롯한 자연 환경이 어우러져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작은 재료도 아껴 풍성히 차리고 골고루 나누던 음식, 굶는 사람 딱한 사람 챙기던 밥, 이웃집 고양이도 잊지 않고 챙기며 '같이 살자'는 살뜰한 마음. 그게 강원도의 맛입니다. 큰 사건이 없어 역사에도 기록될 일 없는 작은 동네에서 어우러져 먹고살아간 이야기, 조그만 동물과 식물 이야기 들을 엄마는 집요하게 기억하고 써냈습니다. 엄마에게 어떻게 그렇게 다 기억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생 마음으로 쓰고 생각으로 써왔다"고.
텀블벅 펀딩은 목표 금액의 300퍼센트를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마감했습니다. 늦은 나이에도 포기하지 않은 한 사람의 꿈에 응원의 마음을 모아주신 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엮을 때, 염두에 둔 것이 있습니다. 사물의 명칭과 동식물의 이름은 5~60년대 강원도 말을 그대로 살릴 것. 강원도 사투리를 그대로 둘 것. 역사에 기록될 일 없던 소박한 삶과 지역의 정서는 표준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제가 작은 출판사를 혼자서 꾸려가고 있기 때문에 경력도 없는 늦깎이 작가의 책을 펴낼 수 있었을 겁니다. 1촌 작가님을 옆에서 오래, 자세히 보아 예쁘고 사랑스러운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작은 출판사의 장점은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마다 갖고 있는 작고 소박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찾아내 책으로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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