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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Oct 12. 2024

새벽에 병원 번호표를 뽑으러 가다.

주말 소아과 진료를 보기 위해 5시에 출동한다.

  아이는 자주 아프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애가 쓰인다. 열이 나면 밤새 열보초를 서며 밤을 지새우고, 아이가 기침을 심하게 하면 차라리 내가 하는 것이 낫겠다 싶다. 병원에 데려가서 진료를 보고 약을 타와서 먹이고 차츰 건강을 회복하면 그제야 안심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아프면서 한 뼘, 한 뼘 자라난다. 다시 건강해져 일상으로 돌아오면 '아! 가족 모두 건강하고 안 아픈 것이 행복이구나!'를 절실히 느낀다.


  토요일 새벽 5시. 알람 진동을 듣고 일어난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아동 전문 병원으로 간다. 차에서 내리니 차가운 새벽 공기가 나의 폐포 깊숙이 들어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간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있다. 깜깜한 병원 복도에 줄지어 서있다. 나는 줄의 끝을 찾아가 선다.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 듯 다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스마트폰 화면 빛에 확인 가능한 그들의 얼굴은 무표정 속에 피곤이 묻어난다. 누군가는 간이 캠핑 의자를 가져와 앉아 있다.


  5시 30분. 병원 관계자가 문을 열고 불을 켠다. 접수증을 뽑기 위해 차례차례 들어가 접수 버튼을 누른다. 번호표를 뽑은 다음, 접수장을 작성한다.  아이의 이름, 체중, 인적사항 등을 기재하고 접수증 오른쪽 상단에 진료를 볼 의사 이름을 적는다. 여기 아동병원 의사 이름은 아이들에게 친근한 동물 이름이다. '고래, 해마, 물개, 소라' 중 그날 진료 가능한 사람을 선택하여 적는다. 접수장을 다 적고 나면 번호표를 스테이플러로 찍어 번호순대로 통에 담는다. 오늘 내가 뽑은 번호는 17번. 내가 적은 의사 이름은 '소라'. 통에 종이를 담으면서 앞에 '소라'가 몇 번 적혀 있는지 확인한다. 나의 진료 순서는 2번이다.


  그렇게 오늘의 새벽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집으로 향한다. 집에 들어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눕는다. 눈을 감고 누워 얼른 아이가 낫기를 바라며 기도하다 잠이 든다. 아침 8시.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과일과 우유 등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다. 8시 40분. 아픈 아이와 집을 나선다. 토요일 진료는 9시부터라 9시 이전에 도착하여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내 차례가 지나가면 진료 순서가 무효이기에 좀 서둘러 먼저 가있는 것이 낫다.


  병원에 도착하면 많은 차량들로 주차전쟁이다. 주차를 담당하시는 어르신 두 분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주차가 빨리 되면 다행이고, 분위기를 봐서 시간이 너무 걸리겠다 싶으면 옆의 유료주차장에 차를 댄다. 주차비 몇천 원을 내는 것이 내 정신 건강에 이롭다. 아이를 데리고 3층으로 올라간다. 많은 사람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곳곳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있다.

  "아빠, 내 순서가 두 번째야!'

  일찍 진료를 볼 수 있다고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약간의 뿌듯함과 희열을 느낀다. 진료실 앞에 있는 간호사에게 가서 체온을 측정하고 진료순서를 확인한다. 우리 애 이름이 소라방 대기 2번이다.


  '해마'방은 오늘도 대기 환자가 가득하다. 이 병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의사 선생님이다. 토요일 같은 경우에는 해마는 환자가 너무 많아 빨리 마감이 된다. 해마선생님이 인기가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환자의 부모 마음을 잘 헤아려줌이 느껴져서인 것 같다. 병을 고치는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를 낫게 하는 의술이다. 거기에 소아과 의사는 아이 부모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기술도 필요한 것 같다. 같은 말이라도 지시형, 명령조로 말하지 않고, 위로의 말 한마디와 함께 권유형으로 말하는 화법. 그것이 해마의 인기 비결이 아닐까!


  아침 일찍 17번을 뽑아도 해마방 진료를 보려면 상당히 기다릴 듯하여, 소라방을 선택하였다. 소라선생님도 친절하게 진료를 꼼꼼히 잘 보신다. 9시부터 진료가 시작된다. 새벽에 번호표를 뽑고 접수한 관계로 기다리는 시간이 적다. 진료를 보고 수납을 한 후, 1층 약국에서 약을 짓는다. 집에 돌아오면 10시가 채 되지 않는다. 이렇게 토요일 진료를 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내가 좀 수고스럽지만, 아이는 병원에서 오래 안 기다려서 좋다. 요즘 주말의 유명 소아병원 진료는 새벽 번호표 뽑기로 시작된다.


  동네의 작은 소아과에 가도 될 정도의 증상이면 동네 병원에 간다. 하지만 증상이 심해보이면 아동전문병원에 가서 진료를 본다. 왠지 요즘 유행하는 질병을 잘 알 것 같고, 조금 큰 병원이라 안심이 된다. 혹시나 정말 상태가 안 좋으면 입원 치료도 가능하다. 토요일 오전 아동전문병원 진료는 전쟁이다. 많은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런 상황에서 새벽 번호표 뽑기는 수고스럽지만 다녀올만하다. 한편으로 그런 생각도 해본다. 혼자 독박육아를 하는 사람은 새벽에 나올 수가 없다. 그런 보호자는 토요일 진료가 참 힘들겠구나!


  첫째가 어렸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예전에 산후조리원이었던 곳이 이제는 노인요양원으로 바뀌었다. 산부인과가 있던 병원은 노인전문병원으로 바뀌었다. 점점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아이들의 수가 적으니 그렇게 세상이 변해가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참 힘든 세상이다. 동네 소아과를 운영하던 의사들도 환자수가 줄어들어 소아과 문을 닫는 곳이 늘어난다. 동네 소아과가  없으니 아동전문병원으로 환자들이 모이고 있다.


출처: 블로그, 윤서온의 일상 랄까나?

  아동전문병원에 인기 있는 의사에게 진료받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엄마들이 모여 있는 맘카페나 자신들의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을 타고, 더욱 그 인기 의사 선생님에게 몰리는 경향이 있다. 인기 있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새벽 일찍 가서 번호표를 뽑거나, 앞에 많은 환자들을 진료 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라도 해서 우리 아이가 좋은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보게 하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일 것이다. 사실 소아과 진료 후 받는 약은 비슷비슷한 것 같다. 기침약, 코약, 상태가 심하면 항생제. 그 약들을 미묘하게 잘 쓰고, 부모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소아과 의사가 인기 많은 의사가 되는 것이겠지.


  부모는 아이를 키우면서 안 아프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프게 되더라도 빨리 나아서 건강을 회복하기를 기원한다. 아이가 아픈 것을 보면, 차라리 내가 아픈 것이 낫겠다 싶어, '아이 몸속에 있는 병균이 나에게로 다 오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부모이다. 부모가 되어 아이를 돌보며 참 많은 것을 느낀다. 아이가 아플 때의 안타까움, 입원 치료를 해야 할 때의 그 당혹감, 퇴원을 하여 집에 돌아왔을 때의 기쁨, 그러한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며 부모도 아이도 자라난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안 아프기를. 아프더라도 조금만 아프고 얼른 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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