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니홉 Nov 12. 2024

여행 멤버의 임무 분담

여행을 같이 가게 된 여덟 명은 각자의 임무를 맡아 성실히 수행한다.

  직원들을 데리고 유럽 여행을 가는 교장 선생님의 마음은 어떠할까? 가족여행을 준비하고 가는 것만 해도 사실 부모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고, 준비할 것이 많아서 마냥 즐겁게 놀 수는 없다. 계속적으로 다음 일정과 부족한 부분을 챙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모든 가족이 안전하게 잘 다녀오도록 여행이 끝날 때까지 노심초사한다. 직원들과 함께 긴 일정으로, 우리나라도 아니고, 유럽을 가는 교장선생님은 심적 부담이 엄청나셨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들과 함께 갈 여행을 계획하고 추진하여 가시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셨을 것이겠지.


  여행 멤버 구성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인원은 8명이라 생각하신 것 같다. 8명이 렌트 봉고차로 이동하기에도 적합하고, 식당이나 관광지에서 자리에 앉을 때도 짝이 맞아서 좋다. 그래서 8명을 어떻게든 맞추려 하셨다. 나중에는 한 명이 부족하여 연구부장님, 그러니까 조부장님의 사모님을 섭외하였다. 조부장님에게는 당시 두 자녀가 있었는데, 꽤 커서 부모가 장시간 자리를 비워도 될 정도의 나이였다. 그리고 바로 옆 아파트에 조부장님의 모친이 살고 계셔서 아이들에게 식사를 챙겨줄 수 있었다. 조부장님의 사모님 입장에서는 다들 모르는 사람이고, 남편만을 믿고 함께 떠나는 여행이었다. 물론 같이 가는 멤버 중에 대학 동기인 권부장님이 있긴 하였지만. 아무튼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총 8명의 여행 멤버가 꾸려졌다. 그 멤버들의 여행 간의 임무에 대하여 적어보려 한다. 먼저 최교수님. 그분은 어디 대학교 음대 교수님이라고 하셨다. 어디 대학교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사람이 참 유쾌하고 사교성이 좋으신 분이었다. 교장선생님과는 아주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사이인지, 흡사 영화 '친구'를 두 분이서 찍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였다. 예전에도 두 분이 주축이 되어, 최교수님이 운전하여 유럽 여행을 다녀오신 적이 있다고 하니, 참 친한 사이인가 보다. 최교수님께서 유럽여행 간 자동차 운전을 계속하셨다. 우리가 관광지에 구경을 하러 갈 때는 차에 계시거나 다음 일정을 위해 준비하는 치밀한 분이셨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독일에 내려 짐을 찾는데, 우리의 짐 중에 스낵면과 김 등을 가득 담은 가방이 분실되었다. 다른 모든 가방은 다 나왔는데, 그 가방만 짐을 옮겨 싣는 과정에서 누락되었던 것이다. 최교수님께서 공항 측에 우리의 사정을 유창한 독일어로 말씀하셨고, 다음날 우리의 숙소로 그 가방이 배달되어 왔다. 유럽에서 자동차로 이동한다는 자체가 참 부담되는 일이지만, 그분은 유럽에서 오랜 유학생활 동안 운전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전혀 부담감 없이, 그리고 운전 자체를 즐기시는 분 같았다. 내가 조수석에 앉아 졸기도 하여 좀 미안하기는 하였다. 우리 차에는 최교수님과 젊은이 3명이 타고 다녔다. 그 구성 속에서도 전혀 어색함 없이 젊은이들과 이야기하며 즐겁게 농담을 하셨다. 아마 대학교에서 대학생과 함께 계속 지내셔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교장선생님의 원래 임무는 여행 총괄 및 관리 감독이었다. 그런데 렌터카를 빌리는 과정에서 예약이 잘못되어 우리가 원하는 봉고차를 빌릴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승용차 두 대를 빌려서 이동하였는데, 교장선생님께서 2호차 운전을 계속하셨다. 그 당시 유럽에는 승용차가 오토보다는 스틱이 많았다. 빌린 렌터카가 다 수동이었다. 나와 조부장님은 오토를 주로 몰아서 스틱에는 영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최교수님이 1호차, 교장선생님이 2호차를 계속 운전하셨다. 여행의 막바지에는 결국 교장선생님의 입술이 터지고 말았다. 수동 자동차를 몰 수는 있지만, 낯선 유럽땅에서, 그것도 앞의 차를 따라가는 운전을 계속한다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조부장님은 이번 여행의 중간다리 역할이다. 50대 교장선생님과 최교수님, 그리고 젊은이 3명을 이어주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셨다. 술을 좋아하시는 교장선생님, 그리고 조부장님과 나는 매일 저녁 소수를 두 병씩 비웠다. 그날 운전하여 피곤하신 교장선생님 포함, 남자 세 명이 앉아, 라면이나 참치, 김 등의 간단한 안주로 소주를 한 잔 하며 그날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설거지 담당이셨다. 우리 일행은 거의 밥을 해 먹고 다녔다. 전기밥솥을 하나 챙겨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쌀을 씻어 불려 밥을 한다. 체크아웃을 할 때 밥솥을 챙겨서 들고 나와 차에 싣고 가다가, 경치가 좋은 곳에 돗자리를 펴고 밥을 먹었다. 거의 그렇게 밥을 먹었다. 나중에는 급기야 외식 좀 하자면서. 유럽까지 와서 매일 한식만 먹으니 느끼한 것이 좀 먹고 싶다면서! 그때 조부장님과 내가 설거지 담당이었다. 스위스에서는 빙하 녹은 물에서 설거지를 둘이 하기도 하였다.


  나의 역할은 앞서 적어 놓은 밥솥 담당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쌀부터 씻는다. 내가 샤워를 다 하고 나온 다음, 쌀을 어느 정도 불렸다 싶어 전기밥솥의 전원 스위치를 누른다. 그리고 조식을 먹고 숙소 방에 돌아오면 구수한 밥 냄새가 났다. 짐을 챙기고 체크아웃할 때 전기밥솥도 아이스박스에 넣어서 들고 간다. 차 트렁크에 실어서 이동하다가 점심때가 되면 밥솥을 꺼내어 밥을 푼다. 처음에는 밥양을 조절 못하여 남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밥솥을 비울 수 있을 만큼 밥을 하였다. 사실 밥솥을 비울 수 있게 다들 밥그릇에 밥을 수북이 담기도 하였다. 그렇게 나는 유럽 여행 내내 아침마다 밥을 하여 차에 싣고 점심때 밥을 퍼서 배분하는 역할을 하였다.


  권부장님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으신 노처녀셨다. 책 보는 것을 좋아하고, 안정된 삶을 추구하시는 그분이 함께 유럽 여행을 가기로 결심한 것은 그분 인생에 대단한 혁명이었다. 그분이 총무를 맡아주셨다. 여행 간 발생하는 공동 지출을 모두 종합하여 정산하고, 회비를 걷어 결산하였다. 아주 꼼꼼하신 분이라 돈 관리를 잘해주셨다. 그리고 아마 돈 계산에서 얼마 부족분이 발생해도 그분 자비로 매워주실 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8명이 12박 13일 간 쓴 돈은 정확히는 몰라도 한 사람 당 비행기표 포함해서 4~500만 원 정도 되지 않았을까. 사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얼마를 썼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8명의 비용이니 꽤 큰돈이었을 것이다.


  한NR이라는 여선생님은 통역을 맡았다. 당시 우리 중에 그래도 영어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라, 관광지에서 입장권을 사는 일, 주유소에서 기름 넣는 일, 영어를 사용해야 할 소소한 일들을 모두 도맡아 했다. 그 당시에는 영어를 그렇게 잘하지 못하였지만,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난 후, 영어 공부에 더욱 매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영어가 부족함을 느끼고 더욱 영어공부에 매진한 것이리라.


  한JE이라는 여선생님은 최교수님의 말벗과 운전자 보호가 주 임무였다. 1호차의 운전석 뒤에 앉아 최교수님이 하시는 말을 경청하며 들어주고, 맞장구를 치며 웃어주었다. 스누피를 닮은 귀염상의 얼굴이라 최교수님은 신나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최교수님이 운전하다가 너무 피곤하여 졸릴 때는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조부장님의 사모님은 사실 우리 학교 소속이 아니라, 같이 있기 쑥쑥 하셨을 것 같다. 하지만 특유의 온화함과 나긋함으로 여행 기간 동안 잘 지내셨다. 그분은 우리의 먹거리를 담당하셨다. 각종 밑반찬과 김치 등을 다 준비하셨고, 마트에 가면 이것저것 주도적으로 장을 보셨다. 엄마처럼 우리 일행의 먹거리를 챙기신 고마운 분이다.


  이렇게 8명이 각자의 임무를 맡아서 유럽 여행을 하였다. 여행도 사실 삶의 연속이다. 매일 먹어야 하고, 매일 자야 하고, 매일 씻어야 한다. 그 과정 또한 여행이리라. 우린 매일 낮 시간 동안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고, 저녁 즈음 숙소에 도착하여 그곳의 야경을 즐기고, 다음날 오전을 즐긴 다음, 또 이동하기를 반복하였다. 차를 너무 오래 타고 밥을 많이 먹어서 여행 막바지에는 뱃살이 장난 아니었지만 그것 또한 여행의 결과물이 아닐까.


이전 02화 술자리에서 한 말들이 현실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