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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Nov 27. 2024

학년말 레임덕(lame duck) 현상

학년말 아이들은 점점 통제불능 상태가 된다.

  '레임덕(lame duck)'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절름발이 오리라는 뜻으로, 임기 종료를 앞둔 대통령 등의 지도자 또는 그 시기에 있는 지도력의 공백 상태를 이르는 말. 이 현상이 학년말 학교에서도 일어난다. 날이 추워지고 찬바람에 입김이 나올 때 아이들은 담임의 지시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12월이 되면 아이들은 더욱더 교사의 말을 듣지 않고 자유영혼이 된다. 신규교사 때는 그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서 '아이들이 이상해졌나? 내가 아이들을 잘못 지도해서 그런가?' 등등 많은 고민을 했었다. 몇 년의 교사생활을 하며 깨달았다. 학년말 아이들의 나사가 빠짐은 추운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면 낙엽이 지듯이,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그러한 상태의 아이들을 대하며 받는 스트레스는 온전히 교사의 몫이라는 것을.


  예전에 초등학교에도 기말고사가 있을 때는 그나마 좀 더 애들을 붙잡아 공부시키기 나았던 것 같다. 기말고사를 잘 쳐야 한다면서, 배웠던 내용을 복습시키고 연습 문제를 풀리면 그래도 어느 정도 따라왔었다. 아이들이 기말고사를 잘 치고 싶은 욕심도 있고, 기말고사를 핑계로 공부하는 분위기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말고사를 치지 않으니, 학년말에 더욱 공부시키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생각해 보면 나의 학창 시절도 그러했던 것 같다. 특히 중3과 고3 때는 그 레임덕 현상이 최고 정점을 찔렀다. 이제는 중학생이 끝난다는 생각으로 고입 연합고사를 치고 난 후 교실의 상태는 거의 무법천지였다. 고3 때 수능 치고도 마찬가지였다. 뭐가 그리도 욕구불만이었는지 학교에 있는 동안 아이들은 난리를 부렸다. 그 교실을 바라보는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사고가 안 나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했을 듯.


  초등학생은 중고등학생에 비하면 일탈의 강도가 덜하니 좀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엄청나게 반항하는 아이도 적고,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는 아이들도 없으니. 그래도 학년말의 레임덕 현상은 교사들을 힘들게 한다. 날은 추워서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데, 수업시간에 떠들고 통제가 안 되는 학생들을 볼 생각을 하니 더욱 학교에 출근하기 싫다. 겨울방학까지 며칠 남았는지 세면서 위안을 삼는다.


  학년말이 되면 깁스 환자도 평소보다 많이 생긴다. 학기 초보다 부주의하게 생활하는 것도 있고, 날씨가 추워지면서 근육이 경직되어 애들이 더 많이 다치는 것 같다. 그래서 학년말이 되면 아이들에게 한 마디 해준다.

  "여러분, 사람의 근육은 엿과 같아요. 엿 알지요? 따뜻하면 엿이 주욱 늘어나듯이 근육이 잘 늘어나서 안 다치는데, 날 추우면 근육이 굳은 엿처럼 딱딱해져요. 그 엿을 치면 어떻게 되나요? 엿이 깨지죠! 추운 날 그래서 많이들 다치는 겁니다. 더욱 안전에 유의해서 생활하세요."


출처: 블로그, Oentech 2024

  6학년의 학년말은 다른 학년보다 배로 힘들다. 말년 병장 느낌의 6학년들이 이제는 학교를 떠난다는 생각에, 배 째라면서 생활하는 애들이 있다. 사춘기에 접어들어서 담임이 불러서 야단을 치면, 자기가 잘못한 것은 생각도 안 하고 담임의 잔소리를 아니꼬운 표정으로 듣고 있다. 그 모습에 더욱 분기탱천하여 아이를 야단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나의 건강은 소중하니까. 그저 사고나 싸움 없이 하루하루를 잘 보내길 바라며 출근할 뿐이다.


  보통 12월에 학예회 행사도 있다. 전체 학예회로 체육관에서 하기도 하고, 반별 학예회로 반에서 진행하기도 한다. 학년말 통제불능의 아이들을 데리고 학예회를 준비하는 담임은 속이 탄다. 의도한 대로 잘 공연 준비가 잘 되면 다행이다. 조편성에서부터 공연 종류를 정하는 것까지 모두 담임이 신경을 쓴다. 아이들의 공연 준비 상태를 중간 점검한다. 어찌 보면 학예회 준비를 하기에 아이들이 더욱 붕 뜨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학예회를 치열하게 준비하면, 학예회 당일에는 순식간에 각 순서가 진행되어 금방 끝이 난다.


  6학년 담임을 할 때는 연말에 뜨개질을 주로 하였다. 6학년 실과에 뜨개질이 나온다. 가장 기본적인 코 만들기, 겉뜨기, 안뜨기를 가르쳐주어 목도리를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갖는다. 뜨개질을 좀 할 줄 아는 몇 명의 아이들을 꼬마 선생님으로 만들어서 친구들을 가르쳐 주며 함께 목도리 작품을 만든다. 그렇게 뜨개질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연말 분위기도 나고, 아이들이 뭔가 집중하여 교실 분위기가 좀 나았던 것 같다. 아이들이 뜨개질을 할 때 크리스마스 캐롤을 틀어주면 참 평화롭다.


  코로나로 인해 학사일정이 변경된 적이 있다. 보통은 12월 말에 겨울방학식을 하여 1월 말에 개학을 한다. 그리고 2월에 보름 정도 학교를 다니다가 2월 중순에 종업식 및 졸업식을 하였다. 그런데 코로나 때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하여 2월에 학교 나오는 것을 하지 않고, 연결해서 계속 1월 중순까지 등교하다가 졸업식을 하였다. 그렇게 12월 말부터 1월 졸업식까지 나의 몸은 방학으로 기억하는데, 학교를 나가고 있으니 정말 죽을 맛이다. 날은 춥고, 아이들은 말도 안 듣고, 졸업식 준비에 바쁘다. 미칠 지경이다.


  요즘은 6학년 졸업식 때 요구하는 것도 많다. 졸업 관련 영상을 찍어서 졸업식 때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 담임들이 모여서 어떤 영상을 찍을지 의논을 한다. 괜찮은 곡을 하나 정하고, 각 반마다 해당 분량을 정해서 반별로 콘셉트를 정하여 촬영을 한다. 똘똘한 아이들에게 맡겨 놓으면, 도깨비방망이로 뚝딱하는 것처럼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담임의 손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안무, 동선, 소품 등을 담임이 다 짜고 아이들에게 안내하여 연습한다. 추운 날 학교 이곳저곳에서 시린 손을 비벼가며 촬영을 한다. 학년말 말 안 듣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끌고 나아간다.


  20년 가까이 교직생활을 하다 보니, 이제는 레임덕 현상이 익숙하다. 이 시기 즈음 되면 '아이들이 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겠구나.'라고 생각하며 큰 기대를 갖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아이들이 다시 내년 3월이 되면 바짝 긴장한 상태로 새 학년, 새 교실에 어색하게 들어선다. 올해 6학년들은 내년에 중학교 1학년이 되어 귀여운 병아리처럼, 한편으론 어리바리한 모습으로, 이등병처럼 중학교 교실에 앉아 있을 것이다.


출처: 블로그, 라온테이블

  학년말에 선생님들이 아이들 생활지도에 너무 많이 애를 쓰지 않기를 바란다. 12월에 학예회를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도,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너무 애를 쓰지 않기를 바란다. 학년말 레임덕 현상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모든 만물이 일 년을 주기로 변화하듯이, 아이들도 일 년을 주기로 변화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며 스트레스받지 않기를 바란다.


  봄에 잎눈에서 난 어린잎이 여름에는 무성하게 커지고, 가을에는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그것처럼 아이들도 3월에는 긴장하여 생활하고 점점 적응하여 난리를 부리다가 여름방학을 맞이한다. 다시 2학기가 시작되어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학년말이 된다. 아이들은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었다가 종업식을 맞이한다. 이듬해 아이들은 긴장한 얼굴로 새로운 교실에 앉아서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 새 학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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